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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현대차 1공장 신차 투쟁 평가:
외주화에 제동을 걸어 온 전통이 깨진 뼈아픈 후퇴

개정판은 본문의 일부를 수정·보완했다.

현대차가 소형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코나’를 출시하면서 빠르게 판매를 늘리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일명 ‘정의선 차’(부회장 정의선이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의미에서)로 불리는 이 신차를 야심 차게 내놓아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소형SUV 차종의 경쟁이 심화되는 데다 초기부터 품질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사측이 인건비를 절감하고 수익성을 높이려고 노동강도를 크게 올린 탓에 불량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적은 인력으로 빠른 생산 속도를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은 깊은 불만을 토하고 있다. 일부 라인에서는 기층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저항(특근 거부)이 벌어지기도 했다.(본지 219호 기사 ‘노동강도 강화에 맞서 저항한 현대차 1공장 노동자들’을 보시오.)

문제는 사측의 강경한 공격에 맞서 1공장 노조 사업부위원회의 지도부가 굴복했다는 점이다. 6월 19일 1공장 사업부위원회 지도부는 애초 요구한 인력의 절반가량만을 충원하고, 일부 공정을 외주화하기로 합의했다. 현대차지부 박유기 집행부는 “현대자동차의 경영 환경이 어두운 상황”에서 갈등이 장기화되면 “결국 조합원들의 고용 문제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며 이런 합의를 재촉했다.

사측은 몇 분기째 계속된 수익성 악화, 특히 사드 배치 때문에 중국 판매가 급감하는 등 상반기 실적이 부진하고, 1공장에서 생산하던 기존 차종의 판매가 저조한 것 등을 이유로 노동자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노조의 저항으로 신차가 제때 나오지 못하면 1공장을 비롯해 전 직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며 조건 후퇴를 강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타협은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압박은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사측이 현재의 판매 부진을 타개해 보려고 신차 생산에 사활을 걸었던 만큼, 오히려 1공장 사업부위원회가 단호하게 투쟁을 이끌었다면 예정된 날짜에 신차를 출고해야 하는 사측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합의 직전에 사측이 생산 라인에 강제로 신차를 투입한 데 항의해 대의원들이 몇 시간 동안 라인을 멈춰 세웠는데, 언론들이 앞다퉈 관련 소식을 속보로 보도할 정도로 업계 안팎의 이목을 끌었다. 그만큼 사측은 똥줄이 탔다.

이때 1공장 사업부위원회 지도부는 실적 부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또 그 위기론이 얼마나 과장돼 있는지, 표준 맨아워 도입(노동강도 강화)과 외주-모듈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사측의 주장이 왜 잘못됐는지, 무엇보다 그동안의 1공장 물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신차 생산을 둘러싼 지형이 어떻게 투쟁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정치적 주장을 내놓으며 노동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굳건하게 투쟁을 이끌었어야 했다.

외주화

피할 수도 있었을 1공장 지도부의 타협이 특별히 뼈아픈 이유는 지난해 말 선거에서 “신차 투쟁 승리”를 강조하면서 당선한 투사들이 그 투쟁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1공장 사업부위원회 박성락 대표는 좌파 활동가 조직인 ‘현대차공동행동’ 소속으로 지난해 말 선거에서 외주화와 비정규직 해고 저지, 인력 충원 등을 위해 사측에 맞서겠다고 약속하며 당선했다. 그는 2010년에 외주화로 빼앗긴 공정을 일부 되찾았던 1공장 투쟁의 경험 등을 상기시켰고, 당선 이후 ‘단 한 명의 외주화, 조건 후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투쟁적 입장을 표명했다. 1공장 사업부위원회 부대표와 총무, 그리고 몇몇 대의원들도 ‘현대차공동행동’ 소속이었다. [‘현대차공동행동’은 노동당, 노건투 등 좌파단체 회원들과 전투적 조합원들이 포함된 현대자동차 내 좌파 활동가 조직이다.]

외주화는 현대차 사측이 2000년대 이래로 야금야금 확대해 왔는데, 1공장은 좌파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이를 비교적 잘 막고 싸워 왔던 곳이다. 이런 투쟁적 전통을 지켜 줄 거라고 기대를 모았던 지도부가 외주화를 수용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흔히 사용자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외주화는 불가항력적인 대세’라며 노동자들을 협박한다. 대체로 이 협박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사측에 굴복해 합의함으로써 용인되고 확대돼 왔다. 그럴 때마다 불가피하게 일부에 대해서만, 이번에만 외주화를 하겠다는 논리가 등장한다. 하지만 매우 일부분일지라도 작은 구멍이 뚫리면 사용자들은 그것을 다른 부분에서 외주화를 확대하는 지렛대로 삼을 수 있었다. 불필요한 타협은 미끄러운 비탈길이다.

이 점에서, 현대차 1공장의 투사들에게 지워진 책임은 해당 공장을 넘어서는 문제였다. ‘현대차공동행동’의 한 활동가는 1공장 지도부가 외주화를 수용한 것을 두고 “그나마 외주화에 제동을 걸어 온 둑이 무너진 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장 사측은 바로 옆의 2공장에서 다차종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1공장 합의를 들어 외주화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현장의 투사들은 야금야금 치고 들어오는 외주화, 그리고 일시적인 ‘대체 업무’라는 이름으로, 산업 실습생이나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업무라는 이름으로 곳곳에서 시도되는 비정규직 투입을 그냥 보아넘겨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조건 후퇴를 압박하는 사용자의 공격이 이어지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원칙을 지키며 굳건하게 투쟁을 건설하려는 투사들의 존재가 중요하다. 특히, 노동자들을 위축시키는 온갖 ‘위기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결집시키고 단결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

이번 투쟁에서는 일부 대의원들(‘현대차공동행동’ 소속 대의원들도 포함)이 사측 관계자들과 부적절하게 회식을 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노조 교섭위원들이 사측 관계자들과 회식하는 것을 때때로 관행처럼 여겨 온 것이 어떻게 투쟁 전선을 흐트러뜨리고 노동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현대차공동행동’과 ‘노건투’는 소속 회원들이 이번 부적절한 합의에 책임이 있는 만큼, 최근 이 투쟁을 평가하는 토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평가는 노동조합 투쟁에 관한 것이므로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노력을 지지하며, ‘현대차공동행동’과 ‘노건투’가 원칙 있게 평가하고 좌파다운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길 바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좌파 운동 전체에도 이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