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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공동전선:
공동 행동을 중시해야 한다

대중 운동을 건설하기를 원하는 혁명적 좌파라면 공동전선을 구축해 이전까지 혁명적 좌파를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애써야 한다. 혁명적이지 않은 대중을 끌어당기려는 것이므로 공동전선은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요구를 내놓아야 한다. 또한 선전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대중 운동을 구축하려는 것이므로 당면한 요구를 내놓아야 한다.

천대받는 사람들의 대중 운동은 참가자들에게 싸울 자신을 주므로 그 자체로도 좋은 것이다. 싸울 자신이 있을수록 대중이 좌파적 주장에 더 개방적이 된다는 점도 혁명적 좌파에 유리하다.

그러나 대중 운동이 일어난다고 해서 이전까지 혁명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던 참가자들이 자동으로 동의하게 되지는 않는다. 혁명적 좌파의 전술들이 개혁주의자들보다 더 효과적임이 대중에게 입증될 때만 그런 효과가 날 수 있다.

더욱이 공동전선 안에서 혁명적 좌파들과 협력 관계에 있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어느 수준 이하로 대중의 급진화를 통제하려 든다. 이 때문에 공동전선은 협력(대중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의 장인 동시에 정치적 쟁투(급진화의 방향과 정도를 놓고)가 벌어지는 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동전선은 “서로의 차이일랑 깨끗이 잊고 무조건 대동단결하자”는 전술이 아니다. 공동전선 안에서 혁명적 좌파는 개혁주의자·중간주의자들이 말대로 행동하도록 압박하고, 필요하면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이렇듯, 혁명적 좌파는 공동전선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어떤 경우에도 그 안에 용해되거나(즉, 혁명적 좌파가 개혁주의 지도자들과 정치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 개혁주의 단체에 종속돼 독자적 주장이나 비판의 자유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경험

공동전선 전술은 지배자들이 공세에 나서고 노동계급이 방어하는 처지에 있는 상황에서 제안됐다. 그런 상황에서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단결하자는 정서가 광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917년 2월 혁명으로 차르가 타도된 러시아에서 8월 말 우익 군장성(코르닐로프)이 차르 체제 부활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개혁주의자 총리 케렌스키가 이끄는 임시정부뿐 아니라 노동자 운동이 통째로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임시정부는 그 직전까지 자신이 탄압하던 볼셰비키에 협력을 구했고, 볼셰비키는 신속히 수락한다. (당시 상황 전개에 대한 더 상세한 서술은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0] 코르닐로프 쿠데타: 쿠데타를 저지한 노동자들의 단결은 어떻게 가능했나’를 보시오.) 그러나 이것은 아량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술회한다.

“도처에서 혁명을 지키기 위한 위원회가 생겨났고, 볼셰비키는 그 안에서 소수파였다. 그럼에도 그 위원회들에서 지도적 구실을 한 것은 볼셰비키였다. 대중의 혁명적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합의에서는 가장 일관되고 대담한 혁명적 정당이 언제나 가장 돋보이기 마련이다. 볼셰비키는 최일선에서 움직였고,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정당들] 소속 노동자·병사들과 볼셰비키 사이의 장벽을 허물었고 그들을 자신의 영향력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때 핵심은 임시정부를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우익 쿠데타에 맞서는 것이었다. 레닌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우익 쿠데타에 맞서는] 이런 상황일지라도 우리가 케렌스키 정부를 지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일은 무원칙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코르닐로프에 맞서서 안 싸울 것인가? 당연히 싸울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같은 것이 아니고, 그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지금 일부 볼셰비키들은 “화해주의”에 빠지고 사태에 휩쓸려 그만 그 경계를 넘어가고 있다. 우리는 [코르닐로프에 맞서] 싸우지만 케렌스키는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케렌스키의 약점을 들춰 내야 한다. 케렌스키에 맞서는 투쟁의 방법을 바꾼 것인데, (코르닐로프에 맞서 싸우는) 대중을 향해 케렌스키의 약점과 우유부단함을 설명하는 것이다.”

볼셰비키는 우익 쿠데타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저항을 성공적으로 조직했고, 그 결과 쿠데타를 물리쳤다. 노동자 조직들을 지켜낸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를 통해 볼셰비키가 러시아 노동자들 다수의 신망과 지지를 얻은 것이 더 중요했다. 두 달 뒤 볼셰비키는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의 지지 속에 정치 권력을 잡게 된다(10월 혁명).

몇 년 후 레닌과 트로츠키는 이 경험을 일반화해서 공동전선 전술이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 3,4차 대회에 소개한다. 그들이 주되게 염두에 두고 있던 나라는 독일이었다.

1921년 3월 혁명적 좌파인 독일공산당은 완전히 무모한 봉기를 일으킨 결과, 당원이 절반 이상 탈당하고 기층 노동자들과의 연계가 크게 약해졌다. 독일공산당이 다시금 세력을 회복하는 데서 핵심 정책은 공동전선이었다.

독일공산당은 공공부문 파업 금지 같은 정부 조처에 맞서 사민당과 독일노총에 공동 행동을 제안했다. 그 제안은 거절당했다. 하지만 당시에 파업에 나선 철도 노동자 등 기층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공산당이 가장 일관되게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려는 세력으로 보였다.

공산당은 퇴짜에도 불구하고 거듭거듭 공동 대응을 주장했다. 우익에 대한 공동대응, 물가인상에 반대하는 공동 투쟁, 국가나 공장위원회가 기간 산업을 몰수하라는 공동 행동 등이 그것이었다. 공산당의 호소는 형식적으로는 사민당 지도자들을 향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기층 사민당원들을 향했다.

사민당 지도부는 공동대응을 거절했다. 하지만 지역의 공산당 조직들은 기층 사민당원들을 공동 대응으로 끌어들였고 공산당원은 1921년 중반 4만 명에서 1922년 말 22만 명으로 당세를 회복할 수 있었다.

만능은 아니다

공동전선 전술이 성공과 성장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전술이지만 역으로 혁명적 좌파가 개혁주의자·중간주의자와의 공동 대응에 발목이 잡힐 위험도 있다. 1923년 10월 독일은 역사상 가장 뼈아픈 사례의 하나다.

당시 프랑스 군대의 라인지방 점령과 유례없는 인플레 등의 충격으로 심대한 정치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노동자 투쟁이 새로 치솟았고, 노동자 평의회들이 다시 활력을 얻었고, 사민당은 더 분명하게 좌파와 우파로 내분하고 있었다. 상황이 빠르게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지배자들은 “법과 질서를 회복”한다며 노동자 운동이 투쟁적이고 강력한 작센주에 군대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대응해 사실상 봉기로 이어질 전국적인 총파업을 지시하고 선언해야 했고, 그를 위한 조직이 실제로 가능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은 봉기를 부담스러워한 사민당 좌파와 이 문제에서 공조하려 했고, 사민당 좌파 지도부가 이를 거부하자 그만 공산당은 총파업을 취소하고 만다. 독일 전역에서 혁명가들이 기다리고 있던 총파업 지시·선언이 불발하면서 혁명 전체가 불발됐고, 혁명적 좌파의 가장 강력한 근거지이던 작센주는 조직적인 저항도 제대로 못하고 군대에 점령당한다. 결국 5년 동안 지속된 독일 혁명은 돌이킬 수 없이 패배한다.

모든 연대체가 공동전선은 아니다

혁명적 좌파는 다양한 사안에 대응하면서, 혁명적이지 않은 다른 단체들과 공동으로 대응하려고 연대체를 꾸리는 경우가 많다. 앞선 역사적 경험에 비춰 보면, 모든 연대체가 공동전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즉각적인 대중 행동이 벌어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 쟁점의 경우에도, 입장을 정하고 정치적 주장을 내놓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언론의 주목을 더 많이 받으려고 전혀 혁명적이지 않은 단체들까지 최대한 많이 모아서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다. 이런 연대체는 매우 온건한 단체(주로 엔지오)들이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연대체도 그 나름으로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 공동전선은 아닐 것이다. 혁명적 좌파가 개혁주의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실천에서 입증해 보일 대중 운동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언론사 기자들의 주목을 끄는 일은 개혁주의자들의 닳고 닳은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급진좌파끼리 또는 혁명적 좌파끼리의 연대체도 공동전선이 아니다. 공동전선의 취지 자체가, 즉각적인 요구는 지지하지만 혁명적 정치는 아직 받아들이지 않는 노동운동 활동가와 단체를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대체를 공동전선과 혼동하는 것은 혁명적 좌파의 운신의 폭을 오히려 줄이고, 불필요하게 타협하라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때로는 정반대로 초좌파적 압력도 만만치 않다.

반대로, 공동전선과 선전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선전주의)도 피해야 한다. 공동전선은 대중 운동을 최대한 크게 건설하기 위한 것인 만큼, 부차적 차이를 강조하며 운동 건설을 방해하는 행위는 전선 안에서 삼가야 할 것이다. 사드 배치 반대 운동 건설을 위한 연대체에서 북핵 반대를 똑같이 중요한 요구로 제출하자거나, 여성이나 성소수자의 조건 개선을 추구하는 연대체 안에서 느닷없이 ‘성폭력 2차가해’를 들먹이며 특정 단체를 배제하려는 것이 그런 경우다.

맺음말

현재 정세는 1917년 8월 우익 쿠데타에 직면한 러시아 상황처럼 노동계급이 심각한 반동에 직면해 있지 않다. 하지만 장기화하고 있는 경제 침체를 벗어나려고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그 압박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소수자 차별을 강화하는 전략을 지속하고 있다.

혁명적 좌파는 이런 상황에 맞게 공동전선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예컨대, 최근 여성차별에 대한 청년층의 높은 문제의식을 반영해 정의당 등 개혁주의 정당들은 공동 활동에도 열의가 있는 듯하므로 그들과 공동 활동을 건설하려 애쓸 만하다.

공동전선이 아닌 것과 공동전선인 것을 구분하고, 개혁주의 단체들과 지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중의 정서를 세심하게 저울질하고 그런 저울질이 도박을 걸기 위한 준비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클라라 체트킨).

그렇게 구축된 공동전선은 혁명적 좌파가 단독으로는 규합하기 어려운 규모로 대중을 결집해, 그들의 자신감을 고무하고 그들에게 혁명적 유용함을 입증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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