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자치정부가 분리 독립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70퍼센트 이상의 투표율에 90퍼센트가 넘게 독립 찬성에 표를 던졌다고 한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이후 1~2년에 걸쳐 독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쿠르드인들은 오랫동안 독립국가를 건설하려고 시도해 왔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이긴 연합국은 오스만제국을 분할하면서 쿠르드인들에게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했다(1920년 세브르 조약).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쿠르드인들은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네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들 국가는 하나같이 자국 내 쿠르드인들을 차별했고 정치적 자유를 억압했다. 쿠르드인들은 자신의 언어를 쓰고 옷을 입는다는 이유만으로 탄압받기도 한다. 그런 만큼 이번 국민투표는 이라크뿐 아니라 터키, 이라크, 시리아 등지 쿠르드인들의 독립 염원에 불을 댕길 것이다.

동시에, 그 국가 지배자들의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라크와 터키는 이미 군사적 대응까지 거론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 지배력 약화

이번 국민투표 강행은 무엇보다 중동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지배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지금 미국은 2003년 침공과 이후 점령으로 황폐화한 이라크에 안정적인 중앙정부를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쿠르드자치정부의 독립투표 실시는 이라크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더한층 격화해 이를 더 까다롭게 만들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점령을 앞장서서 지지해 온 세력(이라크 쿠르드)과 미국이 점령해서 세운 정부(이라크 중앙정부) 사이의 불화가 커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번 국민투표 실시를 “강력하게 반대”(국무부 논평)해 왔고 투표가 실시된 뒤에는 “심히 유감”이라고 불쾌함을 표시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도 모두 국민투표에 반대했다.

한편 이번 투표는 수년 동안 미국의 중동 지배가 흔들리고 있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 점령해서 안정적인 친미 정부를 세우겠다는 미국의 계획이 대실패로 끝나고, 2011년 아랍 혁명과 뒤이은 반혁명 속에 미국이 주도하던 기존 중동 질서가 약해졌다.

2014년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의 공세에 직면해 이라크 정부가 허무하게 제2의 도시 모술을 내줬던 것은 미국이 말한 “안정과 질서”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드러냈다. 이후 아이시스를 격퇴하는 과정에서도 미국은 자신의 현지 동맹 세력(이라크, 터키, 쿠르드)이 아이시스를 대적하기보다 자신들끼리의 대립에 더 열중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경쟁 제국주의 국가인 러시아는 바로 미국의 이런 약점을 파고 들어 중동에서 개입을 늘렸고, 미국도 이에 대응해 군대를 파견했다. 올해 6월 시리아에서 미국 전투기가 시리아 전투기를 격추시켰는데, 1999년 이래로 미국이 첫 공대공 전투를 벌인 것이다. 이 공격은 워싱턴의 정치적 검토 없이 벌어졌는데, 올해 트럼프가 현지 사령관들의 재량권을 대폭 늘린 결과였다.

‘이란 vs. 사우디아라비아’ 등 지역 강국들 간의 갈등도 다시금 불붙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정세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서, 미국의 중동 지배의 발판이자 하나같이 지독한 친미 국가들로 이뤄진 걸프협력회의(GCC)는 최근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으로 나뉘어 격하게 충돌하기도 했다.

아이시스는 그나마 약해지고 있지만 그것은 되레 새로운 분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아이시스가 차지했던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서부의 영향력을 놓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군,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최근 러시아와 부쩍 가까워진) 터키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 병력, 미국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군 사이의 충돌이 예견되는 상황이고, 이번 국민투표는 이를 더한층 날카롭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