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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청와대 간담회 불참을 옹호하며:
힘의 기울기 극복은 투쟁으로만 가능하다

민주노총은 10월 24일 문재인의 노동계 초청 간담회에 불참했다. 그리고 청와대가 “진정성 있는 간담회보다 정치적 이벤트를 위한 만찬행사를 앞세우는 행보”를 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청와대가 일부 산별과 사업장을 선별 접촉해 만찬에 초청하는 방식을 반대했지만, 청와대는 이를 무시하고 강행했다.

민주노총의 불참을 두고 노동운동 안팎의 온건 개혁 진영에서는 불만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뚜렷한 명분 없이 대화의 물꼬를 틀 기회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가맹 조직인 보건의료노조도 민주노총의 불참 결정이 “매우 유감”스럽다며 “엄중한 내부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규직 양보를 압박하려는 정부의 만찬 이벤트를 거부한 민주노총의 결정이 옳다 건배하는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문재인 ⓒ출처 청와대

그러나 문재인의 노동계 초청 간담회는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 필요를 강조하고 노사정위 복귀를 압박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문성현 노사정위 위원장이 배석한 것이나, 하다못해 만찬 메뉴(‘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까지 청와대는 이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책임 있는 노정교섭”을 요구해 온 민주노총의 바람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청와대가 일부 산별과 사업장을 선별 접촉하고 초청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은 단지 “의전” 상의 문제(〈경향신문〉 10월 25일자 사설의 표현)가 아니다.

분란 조장하는 청와대

청와대는 만찬 초청 대상도 사회적 대화와 정규직 양보를 압박하기 위한 용도로 선정했다. 가령 청와대는 “SK 하이닉스 노조는 비정규직 협력업체 처우 개선의 모범 사례를 보여 주어 초청”했다고 설명했다.

SK 하이닉스 노사 합의(2015년)는 이른바 “임금 공유제”로 알려졌다. 임금 인상분의 10퍼센트를 떼어 협력업체 노동자의 임금 인상과 복지에 쓰기로 한 것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노사정위는 이 사례를 적극 띄우며 노동개악을 정당화하고 정규직 양보를 압박하는 데 이용했다.

문재인 청와대는 또한, 민주노총의 반대를 거슬러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 가운데 오로지 보건의료노조만을 초청 대상으로 확정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사회적 대타협”에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만찬 당일 오전 보건의료노조는 일자리 대타협을 위한 “임금 인상 자제” 방침을 재확인했다(기자회견). 만찬 참석이 불발된 이후에는 성명을 내어, “이[만찬] 자리를 빌어 …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함께 나누고자 계획”했었다고 밝혔다.

본지가 이미 다뤘듯이(‘노사정위와 개혁 전도사’, 223호), 문재인 정부가 노사정위 재가동을 위해 노동운동 내부를 선별 접촉하고 내분을 일으키는 등 헤집기를 불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성현 노사정위 위원장은 지난 9월 13일 전기련(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에 만남을 제의했다가, 전기련 측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전제로 만나자’고 하자 만남 추진을 취소했다. 이것은 노사정위가 전기련 만남을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문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노사정위 재가동 분위기 조성에 이용하려 했음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전기련은 내부 분란을 겪었다.

청와대는 사회적 대화가 마치 약자를 위한 강자의 양보를 요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자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수 있도록 또는 청년 실업자들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규직이 도와 달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교·강사를 정규직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문재인 정부 자신이었다. 그리고 문성현 노사정위 위원장은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전기련의 주장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다. 기간제 교사도 사회적 대화 자리에서 양보할 태세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년 동안 차별받아 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바람은 지나친 욕심이 된다. 이것이 ‘사회적 대화’의 논리다.

노동자 투쟁은 비록 순간일지라도 진실을 밝히 드러낸다. 전기련에 이어 이 진실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지하철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었다.

청와대는 서울지하철 비정규직 정규직화 모델을 모범 사례로 선정(해 서울지하철노조를 만찬 대상에 선정)했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규직화 방안을 노사 합의로 떠넘긴 결과, 지하철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은 가로막힐 위험에 처했다(본지 225호 기사 ‘서울지하철노조 집행회의 결과는 철회돼야 한다’ 참고). 노동자들은 서울시가 ‘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에 책임을 지라고 촉구하고 있다(서울교통공사 업무직협의체 10월 24일 성명).

정부 책임 회피하는 알리바이

아마도 문재인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사회적 합의로 결정한 이후 그 탄력을 이용해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10월 22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면서, “사회적 갈등 현안들을 해결하는 다양한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이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 과정은 사회적 대화가 공약을 파기하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유용한 알리바이이고, 그에 반대하는 운동을 마비시킬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문재인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문제를 사이드 스텝으로 피하면서, 이를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 또는 타협 문제로 치환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취임 이후 노동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처들부터 시행하라고 누누이 촉구했다. 장시간 노동을 정당화하는 행정해석 폐기나 공무원노조·전교조 합법화, 한상균 위원장 석방과 이영주 사무총장 수배해제 등이 그런 사례다.

이런 요구는 완전히 정당하다. 또,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비판해 온 것도 옳다.

물론 힘의 기울기는 단지 노사정 대화냐 노정 대화냐 또는 1 대 2(노 대 정부·사측)냐 1 대 1(노 대 정)이냐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국가를 운영하고 주요 정책을 결정해 온 자들과 그들에게 빼앗기고 피해를 입어 온 사람들이 대화 테이블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기는 힘들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처들이라도 우선 시행하도록 압박하는 힘도, 정부가 노동자들의 진정한 요구에 귀 기울이도록 만드는 힘도 모두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에서만 나올 수 있다.

트럼프 방한 반대 문제를 회피해선 안 된다

노사정위 재가동이 청와대가 내놓고 강조한 만찬의 목적이었다면, 드러내지 않은 은밀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2주 뒤 바로 그 만찬 장소에 트럼프가 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문재인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만찬을 베풀고 존중과 개혁 의지를 보여 줌으로써 지정학적 전선(한반도 관련 대외정책)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신을 눈 감도록 만들고 싶을 것이다.

문재인의 노동 분야 정책은 양보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상당한 반면, 지정학적 전선에서의 후퇴는 훨씬 선명하고 따라서 실망과 이반도 크다. 문재인은 이런 불균형을 이용해, 지정학적 문제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트럼프 방한 반대 집회에 조직 노동자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조승진

그러나 청와대의 트럼프 환영과 협력은 우파를 고무하고, 이것은 국내 정치의 지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동조합 운동은 노동조건 같은 경제적 쟁점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는 매우 협소한 접근법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적폐 청산뿐 아니라 트럼프(제국주의의 상징) 방한 반대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조합원들이 트럼프 방한 반대 집회에 참가하도록 조직하는 데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민주노총 내 온건파들은 주로 정규직 투쟁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경제주의(조합주의)’를 비판해 왔다. 그 비판이 진지한 것이었는지는 그들이 트럼프 방한 반대에 조합원들을 동참시키고자 얼마나 실질적 노력을 기울이느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민주노총 좌파의 다수는 제국주의 문제를 경시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기 (정치)단체 차원에서는 단순히 선전으로 때우면서 말이다. 노동조합 속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자 애써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트럼프 방한 반대와 한반도 평화 운동에 많이 참가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얻어 일터의 경제 투쟁도 더 잘하게 되는 상호 작용의 고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