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와 개혁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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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노동부가 2대지침(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지침)을 폐기했다. ‘사회적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대화 복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양대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압박한 것이다.
노동법을 무시하고 노조도 무시하는 일방적 밀어붙이기는 분명 문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침의 내용 자체가 문제였다. 가령 성과급제나 임금피크제(연공급 폐지) 도입 같은 임금체계 개편은 임금삭감과 경쟁 강화를 부른다. 그러므로 ‘사용자 맘대로’ 취업규칙 변경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에게는 큰 문제다.
따라서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정부가 본질적으로 유사한 의제를 사회적 대화 테이블로 가져와 추진하려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개악을 완전히 폐기하고 노동적폐를 청산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했다면, 문재인과 그 정책 브레인들은 노동자 내 격차 해소를 이유로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얻어 내려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나 ‘노동자 내 격차’나 그게 그거다.
차이가 있다면, 문재인 정부에게는 손뼉을 마주쳐 소리를 내 줄 노동운동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헤집기
사회적 대화 추진에 가장 열을 내고 있는 것은 문성현 노사정위 위원장이다. 노동운동 출신이어서 노동운동 내 끈이 많고 속사정을 훤히 아는 그는 노사정위 재가동을 위해 심지어 노동운동 진영을 헤집어 놓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 민주노총은 문성현 씨의 행보를 “정도를 벗어”난 것이자 민주노총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9월 20일 성명). 민주노총과 협의도 하지 않은 채 한상균 위원장을 면회하고 산하 산별조직과 지역본부를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번 임원 선거에서 노사정위 복귀를 쟁점화하고 영향을 미치려는 “불순한 의도”도 의심된다고 했다.
민주노총 성명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노사정위 복귀를 유보하고 있는 민주노총 집행부를 포위·압박하기 위해 문성현 씨가 사용하고 있는 또 다른 수단이 있다. 그것은 비정규직 이용인 듯하다. 최근 노사정위 측은 전기련(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에 만남을 제안했다.
그러나 전기련 측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전제로 하려 하자 만남 제안을 취소했다. 민주노총이 대변하지 않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적 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듯하다. 그럼으로써 노사정위 재가동의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것일 게다. 하지만 목적 성취가 어려울 듯하자 카드를 버린 듯하다.
이 과정에서 노사정위 측 담당자는 전기련의 공문에 사회적 합의체 관련 언급이 있는 것이 당황스럽다며 전제를 취소하라는 은근한 압박으로 들릴 수 있는 말도 했다고 알려졌다. 위 민주노총 성명의 지적을 적용하자면, 전기련 내부로부터 ‘특정한 결정을 끌어내려’는 불순한 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전기련이 기간제교사 문제를 이해당사자 간 다툼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교육 현장에 비정규직을 양산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학교비정규직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절반을 차지한다. 교육 현장에 이처럼 많은 비정규직이 있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대표적인 ‘노동 적폐’다. 이 문제를 당사자(기간제교사, 정규직교사, 임용대기자, 임용고시생, 학부모) 간 이해관계 타협으로 풀어야 한다는 문성현 씨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을 면하게 해 주는 것일 뿐이다.
측면 지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 복귀에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노동운동 내에는 노사정위 재가동과 사회적 대화 추진을 측면 지원하는 단체와 개인들이 많이 있다.
최근 노동자대투쟁 30년 기념 정의당 토론회에서는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 촉구 주장이 많이 나왔다. 또,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그 친화적 인사들은 대표적인 중층적 사회적 대화기구 추진론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도 사회적 대화와 노사정위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는 단체의 하나다.
문성현 씨는 노사정위 위원장에 위촉되고 나서, 노동계 우선 접촉 대상의 하나로 지난 9월 12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문성현 씨는 비정규직 교사·강사 문제를 사회적 합의기구에서의 숙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노사정위는 바로 다음 날인 13일 전기련에 만남을 제안했다.)
그 이틀 후인 9월 14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는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학교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제안했다. 그는 “절실하지 않은 당사자가 없었”다며 사회적 합의가 필수라고 했다. “기간제 교사와 강사, 현직교사와 발령대기교사, 임용고시생, 교육대 및 사범대생, 학부모까지 이해당사자와 함께 정부와 전문가”가 토론과 숙의 과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성급했다”고 주장했다. 마치 정부는 정규직화를 하려 했는데 이해당사자 갈등에 부딪혀 좌절한 것처럼 현실을 거꾸로 세운 느낌이다. 애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서 비정규직 교사·강사를 제외한 것이 정부였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이것은 전환심의위 ‘정규직 제로’ 결정을 문재인 정부의 “공약 파기”라고 규탄한 이남신 상임활동가 자신의 사흘 전 주장과도 모순된 것이었다.(교육부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 결정 강력 규탄 기자회견)
투쟁을 통한 변화인가, 현상 유지 속의 나눔인가?
문재인 정부는 “성급”했기는커녕 해결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해당사자 갈등으로 치닫도록 내몰며 뒷짐지고 구경했다.
이남신 상임활동가처럼 “정규직 교사 중심의 강고한 기득권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는 것을 앞세우면, 마치 비정규직 교사·강사 문제의 책임이 정규직 교사에게 있는 것처럼 호도될 수 있다. 이런 호도는 정부와 기업들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비용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데 거듭 이용됐다.
그렇다고 사회적 대화를 포함한 모종의 협상 자리에서 비정규직의 염원이 제대로 반영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바람은 요즈음 흔히 비현실적인 이상론으로 치부된다.
투쟁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전망에 기초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현 상황을 전제로 이해당사자들 간의 타협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면, 이미 오랫동안 차별을 겪어 온 희생자들에게조차 현실론이라는 이름으로 양보가 강요되기 마련이다.
민주노총 추천으로 교육부 정규직 전환심의위원이 된 이남신 상임활동가가 심의위에서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화 요구를 대변해 주기보다 그것의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했던 것도 그런 논리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교사 정원을 한정 없이 늘리기 어려운 … 교육부 고충 사안[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거나, “절절하게 [기간제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분들의 목소리도 도외시할 수 없다”면서, 전기련 대표단에게 “일정한 타협안”, “현실적 대안”을 거듭 물었다.
주어진 현 상황을 전제로 보는 관점은, 문재인 개혁의 불충분함과 공약 파기에 맞서 싸우려 하기보다 그의 개혁이 성공하도록 뒷받침하자는 생각과 맞물려 있는 듯하다.
사회적 대화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교사·강사의 요구를 외면한 전교조의 결정을 비판한다. 물론 일리 있는 지적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정규직 노조 비판을 정규직 양보를 압박하는 용도로 사용하려 한다. 이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금속노조나 기아차지부 사례를 보면, 양보 추진(“나눔과 연대”)은 비정규직을 노조로 받아주지 않거나 심지어 분리시킨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얼마든지 채택할 수 있는 방안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양보는 진정한 연대 회복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다.
사회적 대화기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모두 노동계급에 속하는데도)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할 것을 강요한다. 둘의 조건은 마치 시소처럼 움직인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정부와 기업주에 맞서 이해관계가 동일한 집단으로 단결하기를 강요한다. 양보가 아니라 투쟁 연대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