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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의 일자리-임금 연동 교섭, 무엇을 보여 줬는가?

보건의료노조는 10월 24일 “2017년 초기업 산별교섭 및 노사정 협의를 통한 보건의료분야 양질의 일자리 창출 성과보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교섭 결과 10월 20일 현재 인력 확충 2227명, 비정규직 1만 999명 정규직화에 합의했다.(보건의료노조 산하 공공병원 74곳, 민간병원 21곳)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이번 합의가 산별교섭과 노사정 대타협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대통령 선거 직후인 5월 1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적정 인력 확보,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교섭을 연동”하는 교섭 방침을 확정한 바 있다.

병원 노동자들은 인력 부족이 노동조건 악화의 핵심 원인이라고 본다. 인력 부족이 만성화돼 노동조건이 계속 악화되고, 이 때문에 퇴직(이직)이 빈번해져 인력 부족이 해소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병상 수는 급격히 늘었지만 인력은 그만큼 늘지 않아,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의료서비스의 질도 악화됐다. 메르스 사태는 이런 의료 현실을 비극적으로 보여 줬다.

너무 부족한 인력 확충, 지켜질지도 미지수

그런데 이번 합의 결과는 보건의료노조 집행부가 내놓은 인력 확충 목표에 비춰 봐도 너무 부족하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전면 시행하는 데에만 최소 11만 5570명이 필요하다.

이번 합의가 제대로 이행될지도 불확실하다. 이번 합의 대부분이 공공의료기관에서 실행돼야 하는데(인력확충 2227명 중 1991명, 정규직화 1만 999명 중 1만 97명), 필요한 재정이 확보될지 불투명하다. 현재 시행되는 공공기관 ‘총액인건비제도’ 때문에 “기획재정부에서 [재원 확보의] 키를 쥐고 있는 상태”다(보건의료노조 보훈병원지부 소식지 24호). 정부가 제출한 2018년도 예산안에는 이를 위한 예산이 전혀 책정돼 있지 않다.

최악의 경우 정부는 필요 재원의 대부분을 자체 해결하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공공의료기관 사측은 합의 이행을 명분으로 임금 양보를 추가로 요구할 수도 있다.

인력 확충에 필요한 재정의 일부는 ‘간호등급제 상향’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간호 인력을 늘리면 병원의 간호등급이 상향돼 일부 재정을 건강보험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합의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보훈병원 사측은 간호등급제 상향을 “노력한다”는 수준에서 합의했고, 전남대병원은 “2019년 상반기까지” 단계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멀찍이 미뤄 뒀다.

정규직화의 경우, 합의의 근거가 되는 정부의 ‘공공병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환 가이드라인’은 일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관련기사 : ‘“신규채용, 별도 직군, 추후 논의” 공공병원 비정규직 ‘제대로’ 정규직화하라’). 전남대병원에서는 기간제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세부 합의 하겠다고 나중으로 미뤘고, 간접고용은 “불가피한 경우 [계약 기간을] 연장”하겠다고 못박았다. 그 수는 전체 노동자의 23퍼센트에 이른다.

민간병원 21곳에서는 인력 확충 236명, 정규직화 902명이 전부다. 이조차 공공병원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하다. 대개 간호등급 상향을 위해 “노력한다”거나 “2020년까지 전체 비정규직 비율을 10퍼센트로 제한한다”는 수준으로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2014년 기준 1000명 이상 민간 병원의 비정규직 비율은 25.5퍼센트)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 임금

보건의료노조 집행부는 일자리 대타협을 위해 임금 양보를 제안했다. 그러나 임금 양보는 조합원들의 바람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을 뿐 아니라 그다지 효과도 없었다.

본지가 보도해 온 것처럼 병원 노동자들에게 임금은 인력 부족 못지않은 불만 사항이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병원 노동자들의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해 왔다. 노동조합의 목표 중에서 임금인상(52퍼센트)이 가장 중요하다는 조합원 의견이 인력 확충(22.9퍼센트)보다 더 많기도 했다.(2015년)

2007년에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임금 인상분의 일부(3분의 1가량)를 정규직 전환 기금으로 내놓기로 했을 때 찬반투표에서 91퍼센트의 지지를 얻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올해에는 “정규직 임금을 덜 올려서라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노동조합 활동 방향에 응답자의 46.4퍼센트가 반대했다.

이번 산별합의에서도 보건의료노조 집행부가 강조했던 것과 달리,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임금 양보가 없었다. 가장 많이 양보한 곳이 전체 임금 인상분의 10퍼센트 안팎 수준에 그쳤다. 기층의 임금 불만이 압력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향후 정규직화를 위해 “임금 인상 자제”를 약속한 것은 앞으로 협상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사측은 올해 연말까지 계속될 세부 합의에서 이 약속을 추가 양보를 요구할 지렛대로 삼으려 할 수 있다.

이런 부당한 압력과 이간질에 맞서고, 불안정한 합의라도 몇 가지 개선책을 실질적으로 이행되게 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투쟁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조정기간 만료를 앞둔 시점에서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매년 하던 집중집회조차 열지 않은 것은 아쉽다. 파업에 돌입할 태세를 거의 보여 주지 않았으니 사측이 실질적인 압력을 별로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부별 파업전야제 집회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조합원들이 참가해 투쟁 잠재력을 보여 줬다. 실질적인 투쟁을 조직한다면, 인력과 임금 둘 다 개선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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