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트럼프의 개입 아래 격화하는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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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합의를 흔들고, 사우디의 야심찬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이 이란을 겨냥해 각종 군사적 외교적 모험에 나서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미 불안정하던 중동 질서가 계속 요동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는 11월 초 레바논 총리를 소환해 사임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해 헤즈볼라에 대한 내전을 종용할 수 있다는 관측 때문에 레바논인들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는 상황이다.
앞서 6월에도 사우디는 카타르를 비난하며 주변국들의 단교 공세를 이끌었다. 또한 연합군을 구성해 2년여 동안 예멘 내전에도 개입하고 있다.
사우디가 이처럼 공격적 외교에 나서는 것은 숙적 이란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미국의 중동 패권이 확고하던 시절에 사우디는 이란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점령이 재앙으로 끝나고, 아랍 혁명이 터져 나오고 이후 반혁명이 충돌하면서 기존 중동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사우디는 중동의 다른 친미 국가들과의 공조가 예전 같지 않은 데다, 저유가로 경제 상황마저 빠르게 악화하고 있어 위기감이 크다.
이란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점령 실패의 가장 큰 수혜자다. 미국이 이라크에 세운 정부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미국의 구상이 크게 틀어진 것을 보여 준다. 이라크의 친이란 세력은 최근 이라크에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이하 아이시스)를 공격할 때에도 최전선에 활약했다.
카타르가 사우디 등의 단교에 직면했을 때도 이란은 식량을 공수하며 카타르를 지원했다. 터키의 지원도 받은 카타르는 사우디 등의 요구를 거절하고서도 버틸 수 있었다. 단교 소동으로 카타르는 오히려 이란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시리아는 이란의 커진 영향력을 보여 주는 동시에 사우디의 위기 의식을 크게 부채질하는 곳일 것이다. 사우디는 시리아 정권 교체를 위해 반군의 일부를 지원한 반면, 이란은 시리아 정권을 지키려고 자국의 혁명수비대,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군사적 정치적 역량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 2015년 러시아가 시리아 정권을 지키는 데 적극 가세하면서 시리아 정권은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 기회를 이용해 이란이 시리아에서 군사시설을 짓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반면, 사우디는 기대한 만큼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 오바마는 이란과 핵합의에 나섰다.
아이시스가 군사적으로 몰락하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기존 국가를 보존한 채(아사드 개인의 거취는 열어 두더라도) 내전을 끝내자고 합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대두하고 있다.
설령 그런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중동의 불안정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기존 제국주의 질서가 흔들리는 한 지정학적 성취를 거두지 못한 사우디가 또 다른 도박에 나서거나 자신감 붙은 이란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려 할 것이다.
트럼프의 중동 정책과 미국 내 우려
많은 미국 지배자들은 트럼프가 일관된 중동 정책을 갖고 있는 것인지 우려한다. 당장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 사이에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다.
사우디의 카타르 단교 사태 때 트럼프는 트윗을 날리며 사우디를 지원했지만 국무장관 틸러슨과 국방장관 매티스는 카타르를 주요한 동맹으로 추켜세우며 사우디의 자제를 당부했다. 카타르에는 핵심적 미군 기지가 있고, 사우디의 외교 압박이 오히려 이란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합의도 파기하려 하지만, 틸러슨과 매티스는 핵합의를 유지하는 상태로 이란을 견제해야 한다고 본다. 핵합의를 파기하면 중동 개입을 늘려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사우디에서 빈살만이 부상하는 것에 트럼프가 힘을 실어주는 것에도 우려가 크다. 전 왕세자 빈나예프는 CIA한테 ‘반테러리즘 공로상’까지 받을 정도로 수년 동안 손발을 잘 맞춰온 인물이었다. 반면 미국 지배자들 일부는 그를 밀어낸 빈살만이 예멘, 카타르, 레바논에서 성공이 불투명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단지 트럼프가 럭비공 같아서가 아니다.
미국 지배자들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데 군사적, 외교적 역량을 집중하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2000년대 동안 중동에 집중시킨 역량을 분산시키고자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터키, 사우디, 이집트 등 주요 동맹국들이 멀어질까 우려한다.
이 국가들은 미국이 원거리에서 중동 석유를 지배하는 데서 기둥 구실을 한다. 그런데 이들은 미국이 아랍 혁명 진압에 충분히 개입하지 않은 것에 불만이 있고, 역내에서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각자 대응하면서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미국 지배자들은 아시아와 중동에서 동시에 대응하기에는 힘이 부치기 때문에 트럼프를 우려하면서도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중동에서 몸값 높이는 러시아
러시아는 미국의 중동 패권이 흔들리는 틈을 이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를 군사적으로 지원할 뿐 아니라, 시리아 정권을 무너뜨리려 한 이스라엘과 사우디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10월에는 사우디 국왕이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해서 시리아 상황을 논의했고 러시아산 무기도 수 조 원어치 구매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의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지난 1년 동안 푸틴을 네 번이나 만났다.
2016년에 터키와 이스라엘이 이전 몇 년 간 불편했던 관계를 청산하고 외교를 정상화할 때도 러시아가 중간에 있었다. 터키와 이스라엘은 둘 다 미국의 주요 군사 동맹인데 말이다.
2013년 이집트에서 군부 정권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오바마와 마찰을 빚자 재빨리 이집트에도 손을 내밀었다.
최근 러시아 푸틴은 미국 트럼프뿐 아니라 사우디, 시리아, 이란, 터키의 정상들과 잇따라 만나며 시리아에서 기존 국가를 보존한 채 내전을 끝내자는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이런 구상이 실제로 관철된다면 중동에서 러시아의 위상은 더한층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세습 독재자 아사드에 맞서 2011년 시작된 혁명은 쓰디쓴 패배를 겪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리아인들의 참상(사망자 50만 명, 난민 500만 명 추정)에서 보듯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는 평범한 사람들이 전혀 반길 것이 못 된다. 러시아의 개입은 오랫동안 미국 제국주의 아래에서 신음한 사람들을 장기판의 졸로 삼아 더 큰 갈등과 비극을 낳을 뿐이다.
미국도 러시아도 모두 제국주의 국가로 중동에서 손을 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