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관련 근기법 개악 기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조삼모사로 온존시키려는 집권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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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민주당은 그럴듯한 말들로 노동시간 단축 약속을 거듭해 왔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전면 이행”하겠다는 게 문재인의 공약이었다. 노동계를 초청한 청와대 만찬에서도 문재인은 노동시간 단축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집권 여당이 조삼모사 방식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온존시키려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문재인은 “국회 입법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행정해석 폐기를 미뤄 왔고, 그러는 사이 여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악을 시도한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이하 환노위)에서 민주당(간사 한정애 의원)이 야당 간사들과 합의한 개악안의 핵심은 주52시간 상한제를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휴일 연장근로에 중복할증 수당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격차 해소 주장의 위선
주 40시간 노동과 주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으로 주 52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하고 주 68시간 노동을 허용해 왔다. 이 파렴치한 행정해석의 목적은 휴일에도 중복할증 수당을 주지 않고 노동자들을 싼 품삯으로 오랜 시간 부려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을 포함해 환노위 여야 간사가 합의한 개악안은 방법만 다를 뿐, 노동적폐인 행정해석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조삼모사로 온존시키려는 것이다.
게다가 주 52시간 상한제를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중복할증 수당마저 주지 않으면,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계속 열악한 노동조건에 내몰리게 된다. 집권 여당이 노동조건의 바닥을 끌어올려 격차를 해소하는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집권 여당의 진정한 관심사는 사용자들의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다. 환노위 위원장인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개악안의 취지를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간을 주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10월에 기업인들은 홍영표 환노위 위원장을 만나 “기업 규모별 단계적 적용”을 요구했고, 홍위원장은 “중복할증 불가” 입장을 밝히며 화답한 바 있다.
정부와 여당은 격차 해소 운운하며 대기업 노동자들의 양보를 요구해 왔는데, 그것이 누구를 위한 양보인지 이번 개악안 소동으로 밝히 드러났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개악안이 노골적인 사용자 편들기라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잘못된 행정해석을 한순간에 바로잡으면 기업이 지게 될 부담이 걱정된다고 한다. … 부당한 법 적용으로 십수 년간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해 온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되지 않는지 묻고 싶다.”
노사정 대화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악안 처리는 어제인 28일 일단 무산됐다. 그러나 홍영표 위원장을 비롯한 집권 여당의 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선, 정기국회 폐회 전에 환노위 소위가 열릴 수 있다. 건설노조는 건설근로자법을 우선 다루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뒷전으로 미룬 채 근로기준법 개악을 재시도할 수도 있다.
게다가 홍영표 위원장은 행정해석이 폐기되거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 이후 재논의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기업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다.
민주당은 내분으로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개악 방향을 거둬들인 것은 결코 아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가 제시한 것은 기껏해야 “숙려 기간”이다.
또, 민주당 내에서 대안으로 나오고 있는 ‘보상휴가제’나 ‘주52시간 상한제에 대한 한시적 면벌 조항’ 등도 주 52시간 상한제 즉각 시행과 휴일 연장근로의 온전한 수당 지급을 피하는 방안들일 뿐이다.
정부와 민주당은 노동시간 문제를 노사정 대화로 풀자며 대타협을 요구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는 과제는 민주노총 새 임원진의 몫이 될 수 있다. 노동운동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로 사실상 임금을 삭감하고 근무시간을 유연화하는 방안들에 타협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