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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열풍:
투기에 그칠 것인가, 자본주의의 구원투수인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상화폐’라고도 잘못 알려짐)에 대한 투기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비트코인 시세는 지난 수개월 동안 급등락을 반복하면서도 대폭 치솟았는데, 12월 13일 오전 12시 기준 국내 시세가 1912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슷한 원리의 암호화폐들로도 번져, 몇 달 전까지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더리움’의 시세도 급등해서 67만 원을 넘었다.

한국의 비트코인 투기열풍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예컨대, 〈뉴욕 타임스〉는 한국이 투자 열기가 가장 뜨거운 시장이라고 보도했다.

“학생들은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마다 시세를 살펴보고 있고, 노동자들은 커피를 마시러 줄을 서는 동안에 비트코인 거래를 하고 있다.” 전 세계 거래량의 20퍼센트가량이 한국 계좌라고 하니 가공할 만한 수준이다.

최근 들어서는 여러 시중은행들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비트코인 가상계좌 관련 거래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트코인 규제에 별 관심이 없던 한국 정부도 뒤늦게 태도를 바꾸고 있다. 금융위원장 최종구는 비트코인 전면 거래 금지를 포함한 규제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뒤늦은 규제로 적잖은 노동자·청년들이 큰 손실을 볼 위험에 빠졌다. 비트코인 시세 하락으로 이런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기는 것에 대비해, 정부가 앞장서서 이들의 손해를 구제해 주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편, 바른정당 대표 유승민은 얼마 전 미국 선물시장에 비트코인이 등록된 것을 지적하면서 정부의 비트코인 규제 시도를 비방했다. 비트코인이 금융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금융시장 활성화에 눈이 멀어 비트코인 버블을 방치했다 터지면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 피해를 입을 것이다. 투기 자본들의 먹잇감이 된 비트코인을 가만히 놔두자는 주장이야말로 설득력이 없다.

‘탈집중화된 화폐 경제’?

그럼 대체 비트코인이 무엇이기에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일까?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주된 특징은 발행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이른바 ‘채굴’을 통해 발행되는데, 누구나 공식사이트에 접속해서 매우 복잡한 수학 문제를 컴퓨터 연산을 통해 해결하면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다.

발행 시점에 암호화돼 저장되며, 거래할 때도 거래 기록이 거래자들 외에 다른 비트코인 사용자들에게도 공유되기 때문에 거래 기록 또한 기본적으로 조작하기가 쉽지 않다(다만 비트코인을 저장하는 가상의 ‘지갑’ 자체를 훔치는 것은 가능하다). 별도의 암호화 체계가 있기 때문에 온라인 송금을 할 때도 기존 은행들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특징을 띠게 된다.(그래서 법망을 피하려는 은밀한 온라인 직거래에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의 통제 없이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에 의해서 발행되고, 기존 은행들과 관계없이 송금하는 등 관리될 수 있는 화폐인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채굴(발행)할 수 있고, 암호화된 직거래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속성 때문에, 오스트리아 학파 등 자유지상주의 경제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비트코인으로 ‘탈집중화된’ 화폐경제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상에 빠지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 클라우스 슈밥은 “어떤 중앙은행에 의해서도 규제되지 않고 감독받지 않기 때문에 통화정책에 대한 국가의 지배력이 감소”하고, “투명성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물론 ‘탈집중화된 화폐 경제’라는 생각이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09년에 터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관련 있을 것이다. 2009년 금융위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싼 이자로 화폐를 대거 공급해서 만든 부동산 버블 때문에 촉발됐다. 위기를 진정시킬 때도 ‘양적완화’ 정책 등으로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는데, 여기서 득을 본 것도 투기에 앞장서 막대한 이득을 취해 온 거대 은행과 부자들이었다.

이처럼 국가가 관리하는 화폐 체제에 대한 불신과 함께 미국 달러화가 앞으로도 세계 본위화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커지면서 최근까지도 온갖 다양한 대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부는 자체적으로 가치를 갖고 있는(그래서 중앙은행들이 맘대로 조절할 수 없는) 금을 본위화폐로 하는 금본위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비트코인이라는 아이디어는 처음에 ‘온라인화한 금’으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듯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대중적인 투기 대상이 된 것은 바로 국가의 ‘보증’ 덕분이다. 유럽 국가들이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생기자 비트코인 투자 붐은 커지기 시작했고, 반대로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대대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하자 2014년 초에 한차례 대폭락하며 잠잠해진 바가 있다.(때마침 해킹으로 인한 비트코인 분실 사태가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4월 일본 정부가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는 법률을 통과시키자, 비트코인 수요가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국가의 관리 방향에 따라 시세가 이토록 빠르게 급락하는 것을 보면,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는 완전히 투기라는 것이 너무나도 명확한 상황이다.

자본주의의 구원투수인가

이처럼 비트코인이 투기에 민감하다는 점을 보더라도 ‘암호화폐’는 안정적인 화폐로 기능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자면, 자본주의는 ‘일반화된 상품 생산 체제’이고, 화폐는 본질적으로 ‘일반적 등가물’이다. 겉보기에 매우 이질적인 상품들이 교환된다는 것은 상품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하며, 또한 상품들이 서로 비교된다는 것은 상품들 안에 공통의 가치가 있다는 점(익히 알려졌듯이 마르크스는 이를 사회적 필요 노동량이라고 봤다)을 전제한다. 즉, “동질성이 없는 교환은 있을 수 없으며, 동질성 또한 양적인 비교가능성 없이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상품의 가치는 분명 객관적 실체이기는 하지만, 그 가치에는 자연적 요소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직접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따라서 상품 생산의 확대·발전은 ‘일반화된 등가물’인 화폐의 등장을 필요로 하며, 반대로 화폐의 등장은 상품 생산의 확대·발전(‘일반화된 상품 생산 체제’)을 가속화한다.

그런데 상품 교환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려면 화폐가 안정적으로 가치척도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비트코인처럼 급등락하는 투기 대상은 결코 제대로 된 가치척도 기능을 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암호화폐는 비밀 거래나 소량의 온라인 거래를 위한 상품권처럼 쓰일 수는 있을지언정, ‘일반적 등가물’이라는 화폐의 본질적 속성을 지니기 곤란할 것이다.

물론 비트코인에 사용된 암호 기법(블록체인)은 기존 은행들이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며, 아니면 국가 기구가 직접 비트코인을 관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신기술이 ‘중앙집권적 화폐 체제’에 흡수되는 것뿐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의 지적처럼 “자본주의는 블록체인 기술을 무시하고 있지 않다. 사실은 다른 혁신들처럼, 이를 통제하에 두고 싶어 한다.” “비트코인이 정부에 세금을 지불하는 통화로 인정을 받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불환지폐와 [고정적인] 가격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여전히 정부는 [화폐경제의 영역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화폐라는 특수한 상품은 단지 시장을 통해서 관리될 수 없고, 반드시 자본주의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가치의 생산과 유통, 더 나아가 자본의 축적이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화폐의 생산과 유통 역시 끊임없이 원활히 진행돼야 한다. 일반적 등가물이 있어야 일반화된 상품 유통이 가능하므로, 자본주의 하에서 모든 경제 활동은 화폐를 매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상품을 순전히 시장에 맡겼다가는 오히려 화폐 유통에 차질이 생겨 자본주의 경제 전반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 기구는 반드시 화폐 관리를 위한 정책을 펴며 ‘탈집중화’되게 놔두지 않는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 등가물’로서 금이 부상하고 금본위제가 확립되는 데에 자본주의 국가가 큰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금본위제에서도 화폐 가치는 시장에 내맡겨진 게 아니었다. 중앙은행들은 통화량을 조절하며 화폐 가치를 안정시키는 다양한 방법들을 구사했다.(베리 아이켄그린의 《글로벌라이징 캐피탈》을 참고하시오.)

따라서 비트코인 같은 신기술로 화폐 제도를 개혁하면, 자본주의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몽상적인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