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투기는 자본주의가 부추긴 거대한 도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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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광풍이 불던 코인 시장이 급락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코인인 비트코인의 가격이 5월에만 약 40퍼센트 떨어졌다. 월간 낙폭으로 10년 만에 최대다. 다른 코인들(이른바 ‘알트코인’)도 하락세에 들어섰다.
테슬라 사장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 결제수단에 비트코인을 추가한 것을 중단한다’고 선언한 데 이어, 중국이 비트코인 거래는 물론 ‘채굴’까지 금지하고, 미국도 코인 관련 규정을 강화하는 등 정부 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코인 가격이 급락하면서 한때 주식 시장 거래 규모를 앞질렀던 코인 거래 대금도 줄어들고 있다. 6월 1일 국내 4대 코인 거래소의 거래 대금은 10조 원이 채 안 됐다. 4월에 하루 평균 22조 원이던 것에서 반토막이 난 것이다.
이처럼 코인 투기 광풍과 가격 급락으로, 투자 중독 증상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며 상담·의료기관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1~3월 비트코인과 주식투자 중독 관련 상담은 136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코인 투기 광풍 속에 사기 사건도 급증했다. 예컨대, 한 코인거래소가 ‘투자액의 3배를 단기에 수익으로 돌려 주겠다’며 6만 9000여 명에게서 3조 8500억 원을 모았지만 원금마저 날린 사건, 코인 발행자가 코인을 한 번에 팔아 치우고 수십억 원을 챙겨 잠적한 사건, 코인거래소가 예치금을 ‘먹튀’한 사건, 코인 발행 회사가 직원을 동원해 거래량과 시세를 조작한 사건 등이 발생했다.
심지어 일부 유명 기업들도 이런 사기 행각에 뛰어든 듯하다. ‘한글과 컴퓨터’로 유명한 한컴그룹이 싱가포르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아로와나 토큰’을 발행해 시세차익을 얻으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럼에도 각국 정부는 코인 시장을 완전히 규제하는 데는 머뭇거리고 있다. 코인 시장과 관련 기술들을 미래 신사업으로 키울 것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인은 다시 떠오를 것인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코인 가격이 급락하자, 앞으로 코인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여전히 코인의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들은 ‘탈집중화된 대안적 화폐가 될 것’이라고 보거나, ‘비트코인의 기술 기반인 블록체인의 미래 가치’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상당 부분은 오해에 기반한 것이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은 어떤 재화(예컨대 금)를 교환수단으로 쓰자는 자연스런 합의 덕분에 화폐가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도 과거의 금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별 가치 없는 지폐가 교환수단으로 통용되는 마당에 코인 같은 디지털 정보가 화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일반화된 상품 생산 체제’이고, 이 체제는 ‘일반적 등가물’인 단일한 가치 척도를 필요로 한다. 이 등가물은 수많은 상품 사이의 교환을 원활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그것을 무한히 축적해야 한다는 압력을 강화한다. 전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자들이 일정한 재화를 축적하는 것에 만족했다면, 자본가들은 무한한 이윤 축적 욕구에 내몰리고 이를 위해 더 많은 재화를 상품으로서 생산하려 들게 된다.
그리고 이런 안정적 가치 척도의 등장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국가이다. 예컨대, 금본위제에서도 중앙은행들은 금의 순도·무게 보증뿐 아니라 다양한 통화·환율 안정 기법을 동원해 화폐 가치를 관리했다. 화폐제도의 확립은 애초부터 국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코인 가격의 급등락에 국가의 ‘보증’이나 규제가 크게 작용한다는 점도 코인들이 국정화폐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반증한다.
혹자는 신기술을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코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당초 코인들의 기반 기술이라는 ‘블록체인’이 그렇게 대단한 기술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블록체인의 보안 역량 등은 과장된 면이 크고 이미 금융계에서 상용화된 전자서명보다 낫다고 하기 어렵다.
탈집중화와 데이터 위변조 방지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데이터 처리 속도가 느려져서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할 때는 활용하지 못하는 등 기술적 한계도 많다고 한다. 예컨대, 현재 비트코인 거래 처리 수수료는 건당 2만~3만 원가량 되고, 비트코인의 거래처리 시간은 짧게 잡아도 30분이나 된다. 이런 비트코인이 기존의 금융 거래를 대체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순전한 몽상이다.
사실 지금 코인 투기에 뛰어든 사람들 대부분도 코인 시장이 도박판이라고 생각하지, 화폐 제도 개혁이나 미래 기술을 위한 ‘건전한 투자’의 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럴 듯하게 제시된 환상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코인 도박에 뛰어들게 만드는 근거가 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돈도 없고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도 없는 노동자들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코인 도박판에 빨려 들어가는 일은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