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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과 팔레스타인의 저항

중동 민중은 왜 ‘예루살렘 선언’에 분노하는가

트럼프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천명한 이후 중동과 북아프리카(이하 중동)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맹렬한 저항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이 실탄, 전투기, 탱크까지 동원해 이를 탄압하면서 12월 13일 현재까지 4명이 숨졌고, 6개월 신생아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했다.

팔레스타인 인근 국가인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에서는 수천~수만 명이 항의 행동을 벌이며 현지 경찰과 충돌했다. 시리아, 이라크, 예멘, 모로코, 알제리 등에서도 큰 시위가 벌어졌다.

이런 분노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지난 100년 동안 제국주의 열강이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원하고 숱한 전쟁을 벌이고 지원해 온 것을 봐야 한다.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용병 구실을 하는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은 ‘전리품’인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이번 예루살렘 선언은 이스라엘의 호전성을 부추길 것이다.

유럽 각국과 러시아는 트럼프를 비난하지만,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팔레스타인을 냉대하긴 마찬가지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여전히 이스라엘만을 국가로 인정한다(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러시아에게 이스라엘은 “중요한 파트너”(푸틴)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렇지 않다.

중동 지배자들의 반발도 사실은 자국 민중의 분노가 자신들에게도 향할 것을 우려해 그러는 것이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시리아 등 중동 국가들은 결정적 순간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탈을 편들거나 묵인했고, 심지어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을 직접 탄압하기도 했다.

중동 각국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피지배 민중과 지배자들 사이의 단절을 밝히 보여 주는 쟁점이다. 중동의 평범한 다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반면, 지배자들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더 중시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드세게 설칠수록 중동 지배자들에 대한 민중의 불만도 커질 것이다.

〈알자지라〉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 분노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라고 선언한 미국만 향하고 있지 않다. … 시위대는 아랍 지도자들이 입으로만 떠들고 행동은 안 한다고 여긴다. 이곳 사람들은 새로운 인티파다가 필요하고 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평화 프로세스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요구한다.”

12월 12일 한국에서 열린 트럼프 ‘예루살렘 선언’ 규탄 긴급 공동행동 ⓒ조승진

‘평화 프로세스’ 복원이 대안인가?

많은 지배자들은 트럼프를 비난하며 ‘두 국가 방안’을 전제로 한 ‘평화 프로세스’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도 이런 입장이다. 그러나 ‘평화 프로세스’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탈을 정당화하거나 묵인하는 구실만 해 왔다. ‘평화 프로세스’는 트럼프도 자신의 ‘예루살렘 선언’이 그 일환이라 말할 정도로 누더기다.

‘두 국가 방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국가를 건설한다는 방안으로, 유엔의 최초 분할안과도 비슷한 구상이다. 그러나 원래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이 공존하던 지역에 상대 민족을 식민지 삼겠다는 이념(시온주의)을 표방하는 국가(이스라엘)를 인정하는 일은 두고두고 계속될 분쟁의 씨앗이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수십 년 동안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두 국가 방안’은 사실상 이스라엘에 영토를 양도하라고, 피난 간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30년 전 미국은 인티파다로 불안정해진 중동을 진정시키려고 이스라엘을 협상장으로 끌고 나왔지만, 이스라엘의 폭력적 태도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이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권리나 국가를 인정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는 사실상 이스라엘 점령 아래 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극히 일부 영역에만 행정권을 행사한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그 안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아예 봉쇄당해 생필품 유입조차 막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의 기회를 만들어 줬으니 무장 투쟁을 포기하라’고 팔레스타인에 강요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것이 ‘평화 프로세스’의 본질이다. 진정한 대안은 시온주의를 거부하고, 유대인과 아랍인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비종교적인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제국주의 개입 이전의 팔레스타인이 정확히 그랬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처럼 불합리하고 위선적인 ‘평화 프로세스’에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갈등 관계에 있는 이란·시리아 등에 눈길을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동 내 파워 게임과 자국 지배에 유용한 카드로만 다룬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시리아 독재 정권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혁명을 지지하자 전투기로 난민촌을 공격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아랍 혁명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한동안 지원을 옥죄였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중동 전역에서 제국주의 질서 자체가 흔들릴 때 가능하다. 최근 이스라엘의 간담이 가장 서늘했을 때는 핵심 우방인 이집트에서 혁명이 터져 독재자 무바라크가 쫓겨났을 때였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역사적 지진”, “쓰나미” 같은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이스라엘은 2012년에 가자지구를 폭격했지만 금세 꼬리를 내리는 굴욕을 겪었다. 중동 민중이 또 들고 일어났고, 혁명이 요르단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반면 혁명의 기세가 퇴조한 2014년에는 50일 동안 마음껏 가자지구를 폭격하고 지상군까지 투입했다.

지금 터져 나오는 각지의 항의 행동은 ‘예루살렘 선언’과 이에 대한 중동 지배자들의 꾀죄죄한 대응에 대한 불만을 보여 준다. 미국의 중동 패권 정책이 계속되고,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이 도발할수록 그 불만은 더 커질 것이다.

‘평화 프로세스’로 민중의 불만을 달래는 척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불만이 다시금 혁명으로 발전해 모든 지배자들과 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할 때 비로소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체가 해방될 수 있고 진정한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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