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열린 2017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이주노동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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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도권 : 이주노동자 차별을 즉각 멈춰라!
임준형
UN이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하루 앞둔 12월 17일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2017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수도권 이주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이주노조,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경기이주공대위가 공동주최했다.
혹한의 추위에도 네팔,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과 여러 노동운동 단체 등에서 약 200여 명이 참가했다.
문재인은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주노동자 차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올해에도 이주노동자들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이 잇따랐다.
지난 8월 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 이동 금지 때문에 네팔 이주노동자 두 명이 연이어 자살했다. 5월에는 경북 군위의 돼지농장에서 이주노동자 두 명이 안전 장비를 지급받지 못한 채 정화조를 청소하다가 질식사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가 살해됐는데, 가해자는 미등록 체류자였던 피해자를 단속이 있다는 거짓말로 유인해 성폭행하려다가 실패하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야만적인 단속·추방 과정에서 부상당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고용허가제, 단속·추방을 중단하라고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올해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집회 후 정부청사까지 행진도 벌였다.
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정부의 위선적인 정책을 비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이 나라에서 일해서 돈을 번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돈 달라는 것이 아니다. 왜 사장이 잘못하고, 한국 정부가 잘못된 법을 만들어 놓고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가?”
정부가 올해 2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숙식비 강제 공제지침 폐기도 주된 요구였다. 이 지침 시행으로 통상임금의 20퍼센트까지 공제할 수 있게 됐다. 이주노동자의 사전 동의를 구하도록 했지만, 고용해 주지 않으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의 이주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씨는 이 지침 때문에 이주노동들의 임금 손실이 커졌다고 폭로했다.
“요새 고용주가 약 25~30만 원의 숙박비를 공공연하게 떼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화장실도 없는 비닐하우스, 컨테이너에 거주하게 하면서 35만 원씩 떼기도 한다. 겨울에 난방이 없는 경우도 있다. … [기존에도 숙식비 명목으로 월급에서 공제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숙식비 지침은 지금까지 해 온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는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집회가 열리기 이틀 전이었던 15일 부산에서는 컨테이너 숙소에서 잠을 자던 베트남 노동자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는 컨테이너에서 최근 지속된 강추위를 막으려고 전열기를 과도하게 사용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정부는 숙식비 지침을 폐기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시설을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 이날 집회에서는 어렸을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크리스틴 박 씨가 발언하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 정부가 노동자들을 해외로 파견해 그들이 송금한 돈으로 경제 발전을 해 놓고도 이주민을 차별하는 위선을 비판했다.
“한국이 해외로 송출한 다른 20만 명의 한국인처럼 나의 이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됐다. ... 남한은 현재 입양기관을 통해 해외로 입양한 아기 한 명당 2억 원을 벌고 있다. 작년에도 260명의 한국 아기들이 해외로 입양됐다. … 우리들 중 대부분은 한국에 돌아와서 사는 동안 그런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 대부분 한국에 ‘외국인’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는 F-4비자는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한다. 우리는 서비스 업종에서는 일할 수 없다. 그래서 ‘지하’에서 일한다.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임금 강탈과 차별을 받는다.
“한국 출신 이주민 그리고 한국에 있는 이주민 모두 인권이 있다! 차별을 끝내라!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해달라!”
이처럼 이주민들이 차별 받는 현실에도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공약한 이주민 처우 개선 약속에서 후퇴하고 있다. 11월에 발표한 ‘제3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 초안에서 올해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거나 단속·추방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최근 일자리위원회와 외국인력정책실무위원회 회의에서는 “내국인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제국주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정책은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을 강화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이것은 정부와 사용자의 책임을 가리고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므로 전체 노동계급에게 해롭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이주민 차별에 반대하며 단결을 강화하고 연대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일자리위원회,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 결정
12월 12일 열린 제4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건설산업 일자리 개선 대책’ 중 하나로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 강화가 결정됐다.
정부가 “건설 현장의 불법·편법 근절 대책”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위선이다. 이런 대책은 건설 현장에 판치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안전 조처 위반 등 진정한 불법·편법을 바로 잡는 대책은 외면하고 오히려 그 피해자인 이주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2017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수도권 이주노동자대회’에서 연대사를 한 최종진 민주노총위원장 위원장 직무대행은 일자리위원회에서 정부가 이런 안건을 의결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은 “단속 강화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심각한 안전 문제를 유발할 수 있으며,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이동 제한 등으로 미등록 체류를 양산한다”며 “12월 12일 제4차 일자리위원회에 참석해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기간을 늘리고 단속 인원을 늘린다는 반인권적인 내용을 반대하고 폐기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단속 정책을 정당화하고 실업과 저임금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 이주노동자들은 너무 열악해 내국인들이 일하지 않으려 하는 곳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워 한국 경제에 기여해 온 사람들이다. 단속이 아니라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가 필요하다.
[이 기사는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 건설 현장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 폐기 요구” 기사의 내용을 보완한 것입니다.]
대구경북권 대회 : “노동자는 하나다!”
김지태
12월 17일 대구에서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연대회의'가 주최한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는 130여 명이 참가했고 대다수가 이주노동자들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대구 성서공단노조의 조합원이었다. 그리고 경산이주노동자센터,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이주여성인권센터,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등과 교류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상당수 참가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금속노조 경산지부, 노동자연대와 철도, 건설, 전교조 등의 조합원 등 한국인 노동자와 활동가들도 참가했다.
집회 발언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스리랑카 출신의 한 이주노동자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끔찍한 처지를 폭로했다.
"제 주변의 여성 노동자들은 더럽고 열악한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는데 사장이 숙식비라며 1인당 30만 원씩 매달 수백만 원을 떼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직장 이동의 자유가 없어 너무 답답합니다."
베트남에서 온 지 10년이 됐다는 한 여성 노동자는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문제를 제기했다.
"미등록 처지가 되면 다쳐도 사장들이 산재 신청을 내주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도 진료를 제대로 못 받습니다. 더구나 건강보험에서 제외돼 치료비도 엄청납니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보험 가입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어렵다면 차라리 미등록 노동자들을 모두 합법화해야 합니다!"
참가자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발언자들은 모두 하나 같이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쳤다.
"우리는 피부색, 나라, 종교가 달라도 모두 같은 노동자입니다.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단결해야 합니다."
집회 후 참가자들은 대구 도심을 행진하며, “달라도 평등하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고용허가제 폐지하라”라고 외쳤다.
부산울산경남권 대회 : “부당한 요구에 맞서 함께 싸우자”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을 맞아 부산에서도 “평등과 인권을 향한 2017년 부산·울산·경남 이주노동자 한마당”이 열렸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2층 강당에 각 지역 이주노동자 70여 명과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녹산노동자희망찾기, 희망웅상, 울산이주민센터, 가톨릭노동상담소, 민주노총 부산본부, 일반노조, 노동자연대 등 100여 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고용허가제와 숙식비 공제 지침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난여름 밀양 깻잎 밭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자며 숙식비를 떼이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것에 항의해 투쟁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사업주가 부당한 요구를 할 때 함께 싸우자는 주장도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준비한 연극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강압적인 사업주의 언사 등을 잘 표현해 많은 참가자들이 공감하며 보았다. 연극 중 지난 8월 “건강 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네팔 이주노동자를 추모하는 장면에서는 참가자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Workers, unite! 노동자는 하나다!”를 외치며 각 국의 언어로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며 대회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