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잠정합의를 거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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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현대중공업지부 임단협 찬반투표에서 조합원들(조선·해양플랜트 부문)이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켰다.
투표 결과는 낮은 임금, 상여금 분할 지급(최저임금 인상 회피용), 성과급 차등 지급 등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 줬다. [관련 기사: 본지 234호 ‘현대중공업 임단협 잠정합의 ─ “이거 받으려고 2년을 싸운 게 아닙니다. 부결시켜야 합니다”’]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킨 조선·해양플랜트 부문은 전체 조합원의 81퍼센트를 차지한다. 찬반투표를 분사화된 기업별로 따로 한 결과, 나머지 부문(일렉트릭, 건설기계, 로보틱스)에서는 가결됐다. 그러나 두 번째로 조합원 수가 많은 일렉트릭(전체의 11.9퍼센트)에서도 반대가 42.3퍼센트나 나왔다.
조선·해양플랜트 부문과 분할 기업별 투표 결과를 다 합치면, 투표자의 과반 이상인 52.6퍼센트가 잠정합의안에 반대한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은 지난 2년간 구조조정으로 고통을 당해 왔고 임단협 체결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 과반 이상이 반대표를 던진 것은 낮은 임금 인상과 여러 개악안을 순순히 받을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여기에는 일부 대의원과 활동가들의 부결 선동이 한 몫을 했다. 일부는 유인물을 내서 출근·점심 홍보전을 했다. 조선 부문의 한 노조 분과장은 조합원들을 모아 부결을 호소하는 설명회를 하기도 했다.
이간질에 맞서기
이번 잠정합의는 분리 교섭이 노동자들의 단결을 해칠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줬다.
사측은 기업별 성과급 차등 지급으로 노동자들 사이에 성과 경쟁을 부추기고 분열을 조장하려 했다. 상대적으로 수익이 낮은 조선·해양플랜트 부문의 성과급은 다른 부문에 비해 매우 낮게 책정됐다. 조선·해양플랜트 부문 노동자들의 불만이 크게 터져 나온 이유다.
일렉트릭은 이번에 상대적으로 성과급이 높았지만, 노동자들은 앞으로 일감이 줄어 구조조정이 확대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일렉트릭의 일부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지부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기업 분할 직후 현대중공업지부가 하나의 노조를 강조하며 통합 교섭을 요구했던 것은 옳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중공업지부 지도부는 사측이 통합 교섭을 거부하자 분리 교섭을 추진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마침내 차등 성과급 지급을 합의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하나의 노조로 단결하려고 금속노조에 가입했던 취지를 떠올려 보면 아쉬운 후퇴였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사용자들은 어떻게든 노동자들을 갈라치기 해 투쟁력을 약화시키려 한다. 조선업 사용자들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해 온 것도 이런 효과를 냈다. 사측은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기업 분할을 근거로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잠정합의 부결은 사용자들의 조건 하락 강요와 분열 조장을 거부하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조선·해양플랜트 부문이 만만찮게 투쟁을 건설해 나가는 것이다.
이 부문은 현대중공업지부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그동안의 투쟁에서도 주력 부대였다. 따라서 조선·해양플랜트 투쟁은 나머지 분할 기업 노동자들도 투쟁으로 이끌 수 있는 중심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현대중공업(조선·해양플랜트 부문) 노동자들이 성과급 수준을 높이고 상여금 분할 지급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면, 그것은 분할 기업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해 나가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번에는 분할 기업의 성과급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일렉트릭 사장이 올해 발주 물량이 감소될 수 있다고 노동자들을 압박한 것, 건설기계에서도 매각설이 끊이지 않고 있고 수출 감소로 강제 휴업을 했던 것 등을 보면 말이다. 조선·해양플랜트 부문의 저임금은 다른 부문의 임금을 억제하는 압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찬반투표 이후 노조 지도부는 잠정합의가 부결된 조선·해양플랜트 부문의 재교섭을 요구하고 집중 투쟁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노동조합 투사들은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지금의 기회를 이용해 투쟁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