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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 교섭’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가?
양보 후에도 매각과 감원으로 고통받고 있는 복스홀(영국 GM) 노동자들

한국GM은 군산공장 폐쇄, 비정규직 해고, 희망퇴직에다, 노동조건 악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임·단협에서 인건비를 연간 3000억~4000억 원 절감하는 양보를 얻어 내려 한다.

‘평생 죽어라 일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원통하지만 일자리를 잃느니 차라리 조건 악화를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노동자들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GM에 앞서 공장 폐쇄나 철수 위협을 겪으며 노동조건 양보를 택한 바 있는 다른 나라 GM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의 경험은 노동조건양보가 결코 고통의 끝이 아님을 보여 준다. 영국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공장 노동자들은 한 사례다.

GM을 붙잡기 위한 양보 교섭

2012년 영국 최대 노조 유나이트(Unite)의 지도부는 GM의 유럽 일부 공장 폐쇄 위협에 직면해, GM을 붙잡기 위한 ‘양보 교섭’에 나섰다. GM이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공장에 신차(아스트라) 배정을 약속하는 대신 노동조합이 임금 동결, 각종 수당 삭감, 2교대에서 3교대로 전환 등을 수용한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이를 “영국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그 뒤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공장 노동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노동조건 악화를 감내한 덕분에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GM은 복스홀 노동자들의 양보에 화답하지 않았다. 2017년 8월 GM은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공장을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푸조시트로엥그룹(PSA)에 매각했다. 복스홀을 인수한 PSA는 그해 10월 400여 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엘즈미어포트 공장 노동자의 4분의 1에 가까운 규모였다.

2012년 양보교섭에 나섰던 유나이트 지도부는 이번에도 대규모 인원 감축을 받아들였다. 그 3개월 뒤인 올해 1월에도 PSA는 250명 추가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2000명가량 일하던 엘즈미어포트 공장은 이제 1200명으로 줄어들게 됐다.

엘즈미어포트 공장은 2021년까지 아스트라를 생산할 예정이지만, 그 뒤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엘즈미어포트 공장의 새 주인이 된 PSA는 생산 비용이 프랑스보다 높다며 엘즈미어포트 공장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복스홀 노동자들은 얼마 안 가 더 잘려 나가거나, 생산 지속을 대가로 또 다른 양보를 강요받게 될 수 있다.

복스홀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악화를 감내했지만 인력 감축 압박을 받고 있다

바닥을 향한 경쟁

PSA는 GM으로부터 복스홀(영국)과 함께 오펠(독일)도 인수했다. 그러면서 GM 못지않게 노동자들 ‘경쟁시키기’에 나섰다.

PSA는 생산하는 차량 모델들의 크기가 비슷해 영국·독일·프랑스 공장 어디에든 물량을 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고 있다. 물량을 배치받고 싶으면 더 적은 노동자가 더 많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엘즈미어포트 공장의 비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PSA는 영국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노동자의 4분의 1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독일 금속노조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합의할 수 있었다(2017년 12월).

그 합의의 핵심은 독일 금속노조가 오펠 노동자들을 ‘자발적’으로 퇴직시키기로 한 PSA의 방침을 받아들인 것으로, 합의안에는 ‘조기 퇴직 지원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이제 독일에서도 ‘사오정’(사오십대에 정리해고 당한다는 뜻)이라는 말이 유행할지도 모른다.

항간에는 감원 규모가 4000~6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가 돈다. 얄궂게도 엘즈미어포트 공장과 마찬가지로 오펠 노동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것은 프랑스 자동차 기업이 영국과 독일 노동자들에게 가한 횡포가 아니었다. PSA는 복스홀과 오펠을 인수한 지 몇 개월 만인 올해 1월 프랑스 공장에서도 22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마크롱이 도입한 ‘쉬운 해고’ 제도는 PSA에 날개를 달아 줬다.

부메랑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공장 노동자들의 경험은 노동조건 양보로는 결코 일자리를 지킬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양보 교섭은 다른 나라 공장의 노동자 조건에 악영향을 미치고, 부메랑이 돼 돌아와 자신들의 조건을 재차 위협한다.

세계적 자동차기업들은 각국 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교하면서 생산을 이전할 수 있다고 위협해 노동조건을 하락시켜 왔다. 바닥을 향한 경쟁이다.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저항할 때만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2012년 이후 영국 복스홀 노동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려준 영국 사회주의 언론인 사이먼 바스케터와 취재를 도와 준 김종환 〈노동자 연대〉 기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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