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로 다국적기업의 공장 이전이 쉬워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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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도 여전히 우리는 세계화로 자본은 손쉽게 공장을 이전할 수 있는 반면, 노동자들은 안정적 지위를 잃고 힘이 약화됐다는 주장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한국GM의 군산 공장 폐쇄 결정을 보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무기력의 저변에도 이런 견해가 깔려 있다.
최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소장은 이렇게 주장했다. “GM의 철수 압박은 다국적기업의 전형적인 레짐쇼핑이다. 세계화의 날개를 단 다국적기업들은 생산 거점을 생산 비용이 적게 드는 국가로 이동[시켜 왔다.]”
SBS TV 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도 GM이 “저임금”을 쫓아 해외에 진출했다가 철수하기를 반복하는 ‘먹튀’의 달인이라고 묘사했다.
이런 말들은 GM이 얼마나 피도 눈물도 없는지를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된 공포를 주고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아래에서 세계화에 대한 흔한 오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ⅰ) 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금융 자본(또는 상품 자본조차)은 상대적으로 그러기 쉽다. 그러나 생산 자본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막대한 생산 설비를 뜯어서 하루아침에 옮기는 마술을 부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원료·보조설비와 안정적 노동력을 공급받고, 유통·판매망을 구축하고, 금융 지원을 받고, 이 모든 것들을 위한 정부 지원을 받는 등의 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 GM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GM은 가차없이 호주에서 철수했지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GM은 호주에서 69년간 생산을 지속했고, 공장 철수를 발표한 뒤로 실제 이행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지금 GM이 한국에서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기려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군산 공장 폐쇄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과잉생산과 수익성 하락에 직면해 생산량을 줄이고, 미국·중국을 중심으로 수익성 높은 SUV, 픽업트럭 등을 생산하는 전략 재편의 일환이다.
ⅱ) 다국적기업들이 저임금을 쫓아 이동한다?
자본가들은 임금을 낮추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자본 투자의 핵심 기준은 아니다. 전 세계 투자가 선진국과 신흥국 중 일부에만 몰린다는 단순한 사실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의 해외 투자는 현지에서 생산해 현지에서 판매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그 지역의 산업화 정도, 판매 시장의 크기, 수익성 수준에 달려 있는 것이다.
GM은 2013년 이후 유럽과 호주뿐 아니라 인건비가 낮은 남미 일부 국가, 동아시아, 러시아 등지에서 철수와 설비 감축을 추진했다.
GM은 중국을 중시하는데, 이것도 저임금 때문이 아니라 현지 판매 시장의 크기 때문이다. 중국·인도 등은 자동차 관세가 높아 현지 생산의 유인이 더 크기도 하다.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으로 몰리는 이유다. 더구나 그러는 동안 중국 노동자들도 조직력을 키워 왔고, 저항을 통해 임금도 상승시켰다.
ⅲ) 노동자들이 저항할 힘이 약화됐다?
세계화의 효과를 과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노동자들 스스로 싸울 힘이 있다고 보지 않고, 한국GM 사태도 정부의 협상력에 열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화가 만든 진정한 효과 하나는 여러 나라의 공장들을 연결하는 세계적 생산 네트워크다. 이 속에서 어느 한 나라 공장의 노동자 투쟁이 다른 나라 공장의 생산에 미치는 파장도 커졌다. 한국GM은 전통적으로 반조립 제품을 생산해 우즈베키스탄, 멕시코, 러시아, 브라질, 중국, 인도 등지에 수출해 왔는데, 한국에서 생산이 멈추면 나른 나라에서의 생산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
더구나 자동차 산업의 노조 조직은 건재하다. 그래서 기업주들이 언제나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GM은 전체 노동자들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기보다 각 공장들 사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경합을 부추겨 갈등을 조장하는 식의 공격을 발전시켜 왔다.
물론 적잖은 노동자들은 세계화의 효과에 대한 과장된 말을 믿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GM의 사업 재편 전략 때문에 한국GM은 쓸모 없는 공장이 돼 버리는 게 아니냐고 걱정할 수 있다. 결국 GM은 한국에서 철수할 수 있고 노동자들이 이를 거스르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GM의 유일한 관심사는 이윤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담시켜 대가를 치르게 하려 한다. 한국GM ‘정상화‘를 통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군산 공장 국유기업화와 고용·조건을 지키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
군산 공장 폐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고,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GM이 설사 한국에서 철수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그 기간에 노동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들이 그랬듯이 공장 점거 파업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