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와 정치 공작?:
친노·친문계 인사들 진영 논리의 오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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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에게로 번지자 논란이 커졌다.
발단은 친노 방송인 김어준이 2월 말 ‘미투 운동은 지지하지만 젠더 문제가 복잡해 분열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그 뒤 얼마 안 돼 유명 친노 정치인들을 포함해 민주당 정치인들이 미투 폭로 대상이 됐다.
현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이자 현직 광역단체장(충남도지사) 안희정이 보좌관 성폭행 의혹 폭로 다음날 직위를 사퇴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던 민주당 중진 의원 민병두도 7년 전 노래방에서의 신체 접촉 관련 익명 폭로가 나오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서도 의원직에서 즉각 사퇴하겠다고 했다.
전 의원이자 ‘나꼼수’ 방송으로 유명한 정봉주도 서울시장 출마 준비 과정에서 익명의 폭로에 부딪혔다. 그는 혐의를 부인하며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13일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최초·지속 보도한 〈프레시안〉의 기자들을 고소했다.(피해호소인을 고소하지는 않았다.) 성추행 당일 행적에 관한 진술들이 완전히 엇갈리고 있어서 법정에서야 사실관계가 확인될 것 같다.
성 문제를 이용한 흑색 선전이나 음해 등 정치 공작이 없었던 일은 아니므로, 미투 운동을 이용한 허위사실 폭로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여성들이라고 해서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 진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어준의 주장은 (친문 진영의 분열을 막기 위해) 앞으로 미투 운동을 친노 vs. 비친노의 진영 논리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3월 12일 전직 노무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조기숙이 좋은 미투와 사이비 미투를 구분하고 나선 것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조기숙의 프레임대로라면, 노무현 정부의 반노동 정책에 노동자들이 저항한 것을 두고 친노·친문 인사들이 노동운동과 좌파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망하고 그 결과로 이명박근혜 정부가 등장했다고 호도해 온 것이 떠오른다.
미투를 음해하는 각종 음모론은 대부분 검증하기 어렵고 우연히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인과관계로 엮는 식이다.
분열?
그러나 미투는 압도적으로 음모가 아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친노 정치인들이 여성들이 겪는 성적 차별·괴롭힘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스스로 가해자 짓을 한 것이 그들을 믿었던 지지자들을 분노케하고 서로 분열시킨 것이다.
가령 안희정은 피해호소 여성이 검찰에서 조사받는 시간에, 소환되지도 않았는데 조사를 받겠다고 검찰을 찾아갔다. 권력형 성폭력(성적 갑질)인 사건의 성격상 안희정의 행동은 피해호소 여성을 압박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위력이나 위계의 존재를 부인하며 뻔뻔스럽게도 이제 ‘피해호소 여성보다 자신의 부인이 더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보수 우파의 방어를 바라는 계산된 행동으로 보인다. 폭로 직전까지도 미투를 지지하고 충남인권조례의 폐기를 막기 위해 행동하겠다고 한 사람의 실체가 이토록 위선적이라니.
이런 안희정과 그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자제돼야 할 일일까? 무책임하게도 민주당은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만을 생각하고 그를 제명해 버려, 진상 조사 후 징계를 내리는 책임은 피해 가고 있다.
설사 진실이 정봉주 편에 있는 것으로 판명될지라도 정봉주 본인을 포함한 나꼼수 멤버들도 ‘비키니 발언’ 등 여성 비하 언사를 가끔 해 왔던 점을 반성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수십만 명의 지지를 받는 그들이 마초 느낌 물씬한 대화를 방송에 내보낸 것은 무책임한 처사였다.
미투 운동은 더는 눈치 보거나 피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선언이다. 극소수 예외가 허위사실을 폭로한 것일지라도 전체적인 미투 운동에 진영논리를 들이대고 감별사 노릇을 하려는 것은 여성들에게 다시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당한 압박이다.
물론 사실관계를 다투는 경우에 개인들끼리의 모호한 감정이 수반된 관계 문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피해호소인을 존중하면서 사안의 경중과 정황 등 각종 증거들을 잘 따져 가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주관주의적 “피해자 중심주의”나 과잉 확장된 성폭력 개념, 무분별한 공개 폭로 방식, “2차가해” 논란 등의 문제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면 이 경험들을 균형있게 평가해야 한다.
보수 진영
역겹게도 자유한국당 홍준표는 ‘미투 운동이 나를 겨냥한 줄 알았더니, 민주당과 좌파들만 걸리고 있다’고 했다. 진영 논리로는 이런 궤변을 반박하기 어렵다.
공개 폭로 후에 자신을 응원해 줄 주변 환경이 없는 보수 진영 피해자들은 나서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보수 권력자는 대개 더 큰 권력을 가졌으며 보복도 확실해, 설령 수사를 해도 별 바뀔 게 없다는 생각도 한몫할 것이다.
이 사회의 최고 기득권층을 대상으로 한 공개 폭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자연 리스트나 이건희 성매매 영상, 2013년 박근혜의 법무차관 김학의의 고위층 성접대 파티 등에 대한 폭로가 있었다. 하지만, 수사조차 되지 않거나 수사 결과 무혐의로 모두 묵살됐다.
이런 상황은 미투 운동의 방식, 즉 개인의 용기로 뒷받침되는 운동이 반드시 만나게 될 계급 사회의 벽을 보여 준다. 계급 구조의 상층일수록 저항이 거세다. 개인의 용기 있는 폭로와 응원만으로 이런 저항을 극복하기는 어렵다.
“나도 고발한다”는 공개 발언 운동이라는 특성상 미투 운동은 또한 불가피하게 언론 의존성이 크다. 그러므로 발언자나 폭로 대상이 유명인이라거나 하는 자극적 요소가 부족하면 힘을 받기 쉽지 않다.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헐리우드에서 시작된 건 단지 우연은 아닌 듯하다.
가령 언론이 유명인 안희정과 정봉주 등 유명인들의 의혹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사이에 서울의 모 여중학교에서 8년 전 일어난 교사의 지속적 성추행을 폭로한 일은 대부분의 언론에서 거의 일주일 가까이 지나서야 보도됐다. 피해 여성은 부모가 알게 되는 게 너무 미안하다며 8년을 가슴앓이 했는데도 말이다.
이런 점에서도 평범한 개인들의 용기에만 맡겨 놓으면 운동의 지속이나 목표 달성이 힘들어질 수 있다. 이윤택이나 안희정처럼 당장은 사과해 비난의 해일은 피해 놓고는 언론이 덜 주목하는 법적 다툼에서는 위력이나 위계가 없었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피해자 개인이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집단적 투쟁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 노동단체 같은 상시적 조직이 버팀목이 될 수 있다. 2000년 롯데호텔 노조는 파업 과정에서 남녀 노동자들이 함께 직장 내 성희롱 근절을 요구하며 집단 항의운동을 벌였다. 이런 일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힘을 갖춘 운동의 뒷받침을 받는 개인이어야 더 자신 있게 “No”라고 말할 수 있다. 노동계급 운동으로 계급 세력균형이 바뀌고, 노동계급 운동의 보호를 받으면서 더 많은 개인들이 이런 태도들을 보이면 새로운 관행들이 생겨나서 자리잡을 수 있다. 그래야 기득권층 안에서도 전과 다른 태도가 나타날 것이다. 사실 미투 운동도 어찌 보면 촛불 운동 여파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모든 남성이 성차별적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고, 성차별적 편견이 남아 있다고 해서 모두 그런 범죄 행위나 비행을 저지르는 건 아니다. 노동계급은 여성을 적대하고 차별해서 궁극적으로 얻을 게 없다. 남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과 대중운동 속에서 단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구조적으로 차별받는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하나의 단일체인 것은 아니다. 남성을 적대시하면서 모든 여성이 단일한 것처럼 가정하다가는 한두 명의 허위 폭로만 밝혀져도 모든 여성이 거짓말을 한다는 식의 편견이 힘을 얻는 것에 맞서기가 힘들어진다.
보통의 남녀가 단결하려면 남성 노동자들 일부의 태도 변화도 동반돼야 하는데, 그런 변화를 촉구하고 교육을 하는 것도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 노동단체처럼 조직된 운동이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남녀가 단결한 집단 행동은, 개인의 의식 개혁이나 입법 캠페인으로 이룰 수 없는 변화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요컨대, 지금 미투 운동이 악용되거나 과격해서 문제인 건 아니다. 미투 운동은 더 근원적이고 정치적이며 집단적이어야 한다. 미투 운동이 소기의 목적을 이루려면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저항하는 집단적 투쟁과 연관을 맺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