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로 뒤집힌 안희정 2심 판결:
성차별 항의운동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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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를 촉발한 서지현 검사의 1심 승리에 이어, ‘권력형 성폭력’의 대표 사례인 안희정도 항소심에서 실형 3년 6개월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의 부당함을 바로잡은 마땅한 결과다.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2부, 재판장 홍동기)는 안희정에게 제기된 10건의 성폭력 혐의(위력에 의한 간음 4건, 강제추행 5건, 위력에 의한 추행 1건) 중 강제추행 1건만 제외하고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안희정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것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사용자나 상급자에게 당하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제대로 인정받길 바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판결에 기뻐하고 있다. 방청석에서도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민주노총도 “일하는 여성을 위한 판결”이라며 환영 논평을 냈다.
이 사건은 ‘권력형 성폭력’의 대표 사례였다. 사건 당시 안희정은 연임을 한 충남도지사로 유력 대권 주자였다. 즉 막강한 권력자이자, 피해자를 언제든 자르거나 불이익 줄 수 있는 사용자였다. 피해자의 평판과 직업 전망, 생계가 안희정의 손에 달려 있었다.
1심 판결 직후 본지가 지적했듯, 이런 위계 관계 하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직접적 위협이나 직접적 물리력 행사가 없더라도 사용자나 상급자의 거절하고 싶은 성적인 요구를 적극 거절하지 못할 수 있다.
같은 이유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은 피해를 당한 뒤에도 티내지 않으려 애쓸 수 있다. 이를 ‘피해자답지 않다’고 비난한다면,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을 인정받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게다가 이런 일은 은밀하게 벌어지기 일쑤여서 물증이 남기 어렵고, 상급자 눈치를 봐야 하는 주변 동료들의 증언을 받아내기도 쉽지 않다.(관련 기사: ‘안희정 성폭력 무죄 판결 비판: 가해자가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라면 피해자가 두려워했음직하다’)
그런데도 1심 재판부는 이런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를 무시한 채 위력과 위력의 행사를 매우 편협하게 해석해 적용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을 인정하고도 피해자가 일상 업무를 잘 수행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답지 않다”며 그 진술을 부당하게 배척한 반면, 안희정의 결정적인 말 바꾸기는 추궁하지 않았다. 안희정에게만 너그럽고 피해자에게는 부당하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 편파적으로 판결한 것이다.
그래서 여성단체들과 본지를 비롯한 상당수 좌파들, 민주노총 등은 1심 판결을 강력히 규탄했다.
이번 2심 판결에는 그간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항의운동 측의 문제제기가 대부분 반영됐다.
재판부는 이 재판의 핵심 쟁점인 위력 해석과 피해자 진술 신빙성 문제에서 모두 1심의 판단을 뒤집고,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안희정이 수행비서였던 피해자를 간음·추행하는 데 위력이 작용했다고 인정했다. 또한 피해자의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고도 판단했다. 반면, 안희정의 진술 번복(애초에 “합의에 의한 관계라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라고 밝혔다가 말 바꿈)은 그 신빙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안희정 유죄 판결은 커다란 여성 차별 반대 정서와 그것을 대변한 운동의 승리다. 지난해 내내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 여성운동인 불법촬영 항의시위가 일어난 가운데, 안희정 1심 무죄 판결 항의 집회에도 2만 명이 모여 분노를 표현했다. 2심 재판부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의식했을 법하다.
이번 판결이 ‘권력형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 특히 직장 내 성폭력과 성희롱에 맞서 싸우려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