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반도 불안정의 원인과 대응에 관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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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북·미 정상회담 개최 합의로 많은 진보·좌파들도 (각자 이유는 다소 다르지만) 회담에 기대를 거는 듯하다.
그런 기대감은 흔히 평화 운동의 구실이 “남·북·미 당국이 이 길을 끝까지 가도록 뒷받침하고 감시하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기층 운동이 협상 당사국들에게 “합의를 확고하고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데 주력하자는 것이다.
정의당은 아예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적극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동상이몽일 수밖에 없다. 협상 당사자인 문재인 정부는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에 충실하고자 하며, 정부의 대북 정책에는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남북 교류·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정상회담이 결정됐음에도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군축 같은 조처는 입에 담지도 않고 있다. 미국과의 공조를 위해, 한국이 일방적으로 대북 제재를 완화할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남북 화해를 바라는 여론을 의식한 듯, 정부가 한미연합훈련에서 주요 훈련과 미국의 전략 무기 전개 여부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층 운동이 당국 간 대화와는 별개로 독자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외교 협상을 응원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가들이 미국의 패권 정책과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력 문제에 항의하는 데 나서도록 고무하기 어려울 것이다.
쌍중단
진보진영이 더 나아가 아예 문재인 정부와 협치를 하게 된다면, 자칫 국회에서 군비 증강과 한·미 공조 강화 계획이 반영된 정부 예산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노동자 운동과 평화 운동의 활동가들이 정부 당국 간 대화에 환상을 품는 것은 한반도 불안정 문제를 제국주의 세계 체제에서 뚝 떼어 내어 다루는 것과도 관련 있다.
이런 문제는 평화 운동 내에서 특정 요구나 슬로건으로 드러날 때가 종종 있다. 많은 기층 운동 세력들이 남·북, 미국, 일본 같은 당사국들에게 적대적 군사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중국에게는 군사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 군비 경쟁의 한 축이 중국인데도 말이다.
이것이 이른바 ‘쌍중단’류 요구의 맹점 하나다. 이는 한반도 불안정 문제가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간 갈등의 한복판에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군사주의를 자본주의에서 따로 떼어 내어 다루고 세계자본주의 내의 불균등 발전을 고려하지 않다 보니, 일부 평화주의자들은 북한 핵무기 대 미국 핵무기의 대립을 비슷한 수준의 대립인 듯 본다. 그러나 북한 핵무기는 미국의 핵무기에 견줄 만한 것이 못 된다.
또한 “남한이든 북한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군사행동을 단행한다면 한반도에서의 비극은 이를 도발한 국가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지지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북한의 핵무기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 핵무기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데서 효과적이지 않은 수단임도 분명하다.
제국주의를 아는 사람들은 북핵 문제를 30년 가까이 지속된 미국과 그 동맹국들(남한 포함)의 군사적 압박이라는 맥락 속에서 본다.
이 점에서 ‘누구든 군사행동을 하는 쪽이 책임 있다’는 주장은 문제적이다. 만약 북한이 미국의 약속 불이행이나 협박에 반발해 먼저 핵실험을 단행한다면? 그때는 무조건 북한이 긴장 고조의 주된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인가?
제국주의로 말미암은 지정학적 분쟁에서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잘못된 출발점이다. 이런 접근법은 한반도 긴장 고조의 주범이 제국주의 강대국임을 흐리게 만들어 기층 운동을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 제국주의와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력에 항의하는 독립적인 한반도 평화 운동의 기초를 닦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세력인 노동계급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 건설을 지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