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죽음에 이른 IT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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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와 괴롭힘으로 자살에 이른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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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만 지켰어도, 내 동생은 살아있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올 1월 3일, 에듀테크(온라인 교육 서비스) 기업인 에스티유니타스(ST Unitas)에서 살인적 장시간 노동과 직장상사에 의한 괴롭힘으로 결국 자살에 이른 웹디자이너 장민순 씨(36)의 언니가 4월 5일 에스티유니타스를 고발하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1년여 전 게임 개발업체 넷마블에서 노동자 3명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IT 기업의 장시간 노동관행이 도마에 올랐지만, 현실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다.
더 분통터지는 것은 민순 씨의 고된 노동을 보다 못한 언니가 작년 12월 2일, 노동부 강남지청에 근로감독을 청원했지만 근로감독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니는 ‘노동자의미래’(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를 찾아갔고, 결국 4월 5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와 함께 한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이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노동부는 장민순 씨가 목숨을 끊고 나서도 3개월 동안 아무 조처가 없다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이 열린 날에야 뒤늦게 근로감독에 나섰다.
에스티유니타스는 “망인의 사망 원인은 우울증”이라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집중된 야근
에스티유니타스는 최근 몇 년 간 급성장해 2016년 매출 4000억을 넘어선 온라인 교육 서비스 기업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 온라인 교육 서비스인 “공단기”로 유명하고 그 외에도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스카이에듀 등 60개 넘는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급성장 뒤에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이 있었다.
고 장민순 씨가 에스티유니타스에서 근무한 129주 중 12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한 주가 46주나 된다. 근로기준법상 일주일에 12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시키는 것은 불법이다.
심지어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한 날의 비중이 재직 기간의 18퍼센트다. 야근을 한 날은 당연히 이보다 더 많아 약 3분의 1이다.
IT 관련업의 특성상 이런 장시간 노동이 특정 기간에 집중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지난해 11월에는 3~4일에 하루 꼴로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다.
근로계약 자체가 위법이기도 했다. 2015년, 2016년 연봉계약서를 보면 월 연장근로시간이 69시간으로 명시돼 있다. 주당으로 환산하면 연장근로 16시간을 미리 박아 둔 것이다.
연봉 계약에 미리 연장근로를 포함시켜 계약하는 포괄임금제는 IT 관련 노동자 장시간 노동의 주요 원인이다. 연장근로를 당연히 여기게 만들고 실제 계약 내용보다 더 일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한 장민순 씨의 시급은 8천 원 남짓이었다.
우울증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경우 주당 40시간 이하 근무하는 경우에 비해 각종 건강·안전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우울증 위험은 2배 이상 높아진다. 1
고인은 2017년 4~6월 야근이 급증해 동료들에게 우울증 악화를 호소했다. 유족은 장민순 씨의 우울증이 입사 전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호전된 상태였다고 말한다.
장민순 씨는 휴직을 시켜 주지 않으면 퇴사를 하겠다고 하고 나서야 9월 한 달여 간 휴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휴직 후 돌아온 그에게 11월 에스티유니타스는 4명 분의 업무를 맡겼다. 약 두 달 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평적’ IT 기업 문화의 실상
‘핫한’ IT 기업들이 흔히 홍보하듯 에스티유니타스는 “수평적인 기업문화”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모든 사원은] 책임자(Director)로서 자신의 업무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며 서로 ‘○○님’이라고 부르는 수평적인 기업문화를 통해 자유롭게 협업하고 토론합니다.”
그러나 이런 홍보와 실제는 많이 달랐다.
지난해 8월 19일 토요일 새벽 0시 9분에 고인은 “민순님 ⋯ 월요일 점심 전까지 시안 확인이 가능할까요” 하는 문자를 받았다. “님”이라고 부르고 존댓말을 사용했을 뿐 주말 근무를 종용한 것이다.
이 날도 장민순 씨는 디자인 승인을 기다리느라 퇴근 시간을 훌쩍 넘어서까지 사무실에 남아야 했다(일명 “컨펌 대기”). 상사는 새벽에 문자를 보내 작업물을 되돌려 보내고 다시 작업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컨펌 까기”).
또한 에스티유니타스는 주말 시험 응원 이벤트 참여를 근무평점에 20퍼센트 반영했다. 사실상 반강제적 주말 근무였던 것이다.
반성문과도 같은 업무보고를 보면 고인이 받았을 심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부끄러운 하루”, “하나라도 더 나은 아웃풋(결과물)을 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잊은 채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였습니다.”
이런 노동조건 속에서 원래 우울증이 없던 건강한 노동자들조차 “자존감이 낮아지고, 이곳 말고 다른 회사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잠이 들 때마다 이대로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고인의 유족은 증언했다.
‘노동자의미래’ 박준도 정책기획팀장은 이렇게 지적한다. “수평적 기업 문화라는 것이 실제로는 ‘업무 지시는 내가 하고, 책임은 네가 져라’ 하는 것이다. 결국 신입들에게 무한 책임을 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자기 주도적 책임’이 현실에서는 과중한 책임을 지우고 그것을 해내라고 압박하는 기제로 사용된 것이다.
실제 온라인 취업 중개 사이트에 노동자들이 남긴 기업 평가를 보면 “특유의 은근한 책임미루기”, “2년차한테 팀장 맡기고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12월 1일, 장민순 씨는 언니에게 “일이 너무 많아⋯ 그동안 꾹 참았는데 ‘잠은 자면서 하냐? 머리가 맑을 때 일해야 한다’는 말에 폭발해 버렸어”라고 말하며 대성통곡하고 울다 지쳐 잠들었다고 한다.
작동하지 않은 근로기준법
언니는 다음 날인 12월 2일, 노동부 강남지청에 근로감독을 신청했다.
하지만 장민순 씨 언니의 청원에 대한 노동부 강남지청의 답변은 “2017년 근로감독 나가는 물량이 이미 끝났고 ⋯ 2018년 2월 이후에 다른 신고업체와 묶어서 근로감독을 나가겠다”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 노동부는 한 달 후 민순 씨가 목숨을 끊었을 때도 손 놓고 있다가 4월 기자회견이 열린 날에야 근로감독에 나섰다.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자임하는 정권이 들어섰지만 노동부의 근로감독은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너무 멀다.
정의당
결국 장민순 씨의 언니는 ‘노동자의미래’와 정의당을 찾아 갔다.
기자회견장에서 고인의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기자회견 자료는 여기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저처럼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잘못된 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제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무언가 바꿀 수 있는 시발점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 동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며 제가 바라는 모든 것입니다.”
유족은 에스티유니타스의 진정성 있는 사과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직장 내 야근 근절, 직장 내 업무 스트레스 야기환경 개선, 책임 있는 직장 상사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노동부는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에스티유니타스에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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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연구원, “근로시간이 근로자의 건강 및 사고에 미치는 영향 연구”, 51p, 2012-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