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슈퍼 갑질’은 자본의 생리
〈노동자 연대〉 구독
이번에는 한진그룹 총수 일가다. 한진그룹 회장 조양호의 막내(조현민)가 벌인 ‘물벼락 난동’이 세상에 알려졌다. 뒤이어 조양호의 처(이명희)가 한 폭언도 폭로됐다. 이미 큰딸(조현아)의 ‘땅콩 회항’과 큰아들(조원태)의 70대 여성 폭행 등이 있었다. 구제불능의 ‘재벌 갑질 가족’이다.
그런데 재벌의 ‘슈퍼 갑질’은 비단 한진그룹만의 얘기가 아니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평범한 사람들을 모욕하거나 짓밟는 행위를 하다 사회적 지탄을 받은 재벌들이 수두룩하다. 안하무인, 분노조절장애, 특권 의식에 걸핏하면 사람 무릎 꿇리기, ‘맷값’ 폭행, 돈을 써 사람을 납치·감금·협박하기 등.
이 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나쁜 짓을 저질러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소시오패스다.
이런 재벌의 횡포, 탐욕, 부정부패에 대중의 분노가 엄청나다. 반기업 정서는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의 반기업 정서는 특히 높다.
‘금수저’ 출신 재벌 3세들이 문제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한겨레〉에 실리곤 한다. 창업주나 2세대들에 비해 특권 의식이 강해서라는 것이다. 피상적 관찰이다.
제국주의와 독재 정권
한국 재벌은 처음부터 제국주의·독재 정권과 유착됐다.
재벌의 본원적 자본 축적은 일제의 적산이었다.
해방 직후 일제가 남긴 적산은 당시 국내 총자본금의 91퍼센트였다. 초기에 적산은 노동자들이 관리했다(노동자 자주관리 운동). 그러나 미 군정은 이를 총칼로 강탈했다. 남한을 확실하게 자본주의 체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미 군정은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은 적산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넘겨 줬다. 이승만 정권은 은행 돈을 빌려주면서까지 자신들과 결탁해 있는 자들에게 적산을 헐값에 불하했다. 거의 장물 배분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이 덕분에 일제 시대부터 장사를 하던 자들 ― 삼성 이병철은 정미소와 양조업, 현대 정주영은 쌀가게, 럭키금성(LG, GS의 전신) 구인회는 포목상을 했다 ― 이 이제 노동자들을 고용해 이윤을 뽑아내는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자본 축적)에 박차를 가했다. 이를 위해 부정 축재자로 잡아들였던 자본가들도 풀어 줬다. 은행 돈을 거저 대출해 줬다. 해외 차관도 몰아 줬다. 국영기업도 넘겨 줬다. 대한항공을 10년 분할 지불 조건으로 한진에 준 것도 이때(1969년)였다.
재벌 형성에서 단연 중요했던 것은 노동자 착취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부정·부패한 ‘재벌 갑질’은 재벌 3세와 4세의 일탈이 아니다. 이미 재벌 형성 초기부터 있었다.
‘재벌 갑질’이 한국만의 특수성(예외주의)도 아니다. 한국 재벌의 지배 구조(‘경영 세습’ 등)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더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도 매우 무자비하다. 오래전에 서구 지배자들은 농민을 토지에서 쫓아내고(인클로저), 20세기에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며 수많은 사람을 살육했다. 그래서 카를 마르크스는 일찍이 자본주의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나타났다고 했다.
자본가는 ‘살아 숨 쉬는’ 자본이다. 자본의 생명은 축적이다. 축적을 위한 경쟁은 자본가들의 행동과 심리를 결정한다. 탐욕, 이기심, 이윤 추구 등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그래서 횡포와 무자비함은 자본가들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서 요구되는 ‘자질’이다.
사실, 해외에 ‘재벌 갑질’이 없다는 주장은 트럼프를 무시하는 것이다.
요컨대, ‘재벌 갑질’은 이윤 지상주의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재벌 갑질’에 대한 매우 마땅한 반감이 자본주의 체제를 향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