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기원 - 탐욕과 부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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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대 재벌의 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84.1퍼센트에 달한다. 이들이 쥐고 있는 자산도 1천70조 50억 원으로 GDP 대비 84퍼센트를 차지했다(2013년 기준, 정의당 박원석 의원). 30대 재벌그룹의 계열사 수는 2012년 기준 1천2백46개다. 소수의 기업이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막대한 부는 온갖 부패와 비리, 국가의 특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
적산불하와 원조 자금
해방 이후 적산[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 불하와 원조 자금은 재벌 탄생의 시초가 됐다.
해방 당시 적산은 국내 총자본금의 91퍼센트나 됐다. 한때 노동자들이 직접 적산을 관리했다. 그러나 이내 미군정이 무력으로 강탈했고 이승만은 정권과 결탁한 자들에게 적산을 불하했다.
이승만 정권은 자본가들이 적산을 인수할 수 있도록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고 상환기간도 10년이나 뒀다. 당시의 엄청난 인플레를 감안하면 거저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전쟁 중에도 적산불하는 계속됐다.
1950년대 미국의 원조 자금은 남한 예산의 1백 퍼센트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원조 자금으로 원조 물자를 사서 가공해 파는 자본가들이 등장했는데, 삼성의 모태가 된 제일제당과 삼양제당 같은 기업들이 원조 자금을 거의 독차지했다. 럭키(현재 LG), 두산 등의 기업도 원조차관을 받으며 성장했다.
한국전쟁도 재벌들에겐 돈벌이의 기회였다. 이병철은 1951년에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설립했고, 한국전쟁 통에 물자 부족과 물가 앙등을 이용해 급속하게 부를 쌓았다. 이 회사는 1952년에 17배나 성장했다. 정주영은 미군 막사 공사 등을 따내 막대한 돈을 벌었다. 당시 설립한 현대상운은 소금, 식료품, 양곡 등을 독점 운반하며 성장했다.
이승만 정권 말기인 1954년에 추진된 은행 민영화를 통해 은행들이 줄줄이 재벌들 손에 넘어갔다. 은행 민영화로 시중 은행 4곳의 주식의 절반 가량이 삼성의 소유가 됐다.
이승만은 삼성의 이병철에게 제일모직과 제일제당 같은 옛 일본기업들을 헐값에 매각했다. 이병철은 이승만에게 막대한 정치 자금을 제공해 이에 보답했다. 5·16 쿠데타 이후 설립된 부정축재처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정축재자 1호’ 이병철은 자유당 정부에 정치자금 4억 2천5백만 환을 제공했다.
정경유착
4·19 혁명으로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등 주요 자본가들은 부정축재자에 이름이 올라 민중에게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됐다. 그러나 장면 정권이 부정축재자들에게 부과한 벌금 1백96억 환을 낸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부정축재자가 공장을 건설해 그 주식으로 벌과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부정축재환수절차법을 공포해 부정축재와 불법정치자금 제공자에게 면죄부를 줬다.
박정희는 노동자와 민중을 혹독하게 탄압하고 쥐어짜면서 재벌들이 더욱 쉽게 돈을 벌 수 있도록 했다. 또한, 1960년대 당시 국내 은행의 금리가 25~30퍼센트였을 때 박정희 정부는 5~6퍼센트의 낮은 차관 금리로 외국 은행에서 돈을 꿔서 재벌에게 빌려 줬다. 그리고 수출하는 자본가들은 소득세를 절반만 내도 됐다.
삼성은 원조 달러를 이용해 생산한 밀가루, 설탕, 시멘트를 되팔아 폭리를 챙겼다. 박정희 정권은 전자공업진흥법을 제정해 삼성이 산요와 합작해 삼성전자를 설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66년 삼성과 박정희 정권이 막대한 검은 돈을 조성하고자 공모한 사카린 밀수 사건이 폭로돼, 대학생들은 “민족의 피를 빤 이병철을 즉각 구속하고 민족적 대죄를 진 악덕재벌의 재산을 몰수하라”고 요구했다.
박정희 경제 건설의 믿음직한 파트너로 선정된 현대건설도 이 시기 급속히 성장했다. 현대건설의 1966년 매출액은 전년도에 비해 1백73.6퍼센트 성장했고, 자본 총액은 1961년에 비해 29곱절이나 늘었다. 정주영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 단계부터 “충실한 자문역”이었고 박정희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주영에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하사”했다. 현대건설은 “단군 이래 최대 공사”라던 소양강 다목적댐 공사에도 불과 10분 만에 지명됐다.
박정희 정권은 불황의 조짐이 보이던 1972년에 기업과 사채권자와의 채권·채무 관계를 모두 무효화하고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하는 8·3조치를 취했다. 이를 통해 이자를 대폭 줄여서 사채시장에서 고리 단기 사채를 끌어다 써서 재무구조가 악화되던 재벌 기업들은 일순간에 숨통이 트였다.
1977년 현대 계열인 한국도시개발은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한다”며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지어 고위 관료와 국회의원, 신문사 간부들에게 한 채씩 상납했다.
특혜와 상납
1986년 전두환 정권이 실시한 ‘부실기업 정리’로 재벌들은 더욱 몸집을 불렸다. 인수하는 기업에는 특별자금 4천6백억 원이 저금리, 장기상환으로 주어졌다. 원리금 4조 2천억 원은 상환유예됐고, 은행 부채 1조 원은 갚지 않아도 됐다. 온갖 세금 면제 혜택도 주어졌다. 이렇게 퍼부어진 특혜 9조 원은 1988년 전국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성취한 임금 인상액의 1.3배가 넘는다(《감추어진 독점재벌의 역사》).
전두환은 삼성에 율곡사업과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의 특혜를 주며 정치자금 2백20억 원을 받았다. 정주영은 ‘올림픽추진위원장’과 ‘일해재단’ 이사장직을 하면서 2백억 원을 뇌물로 전두환에 갖다 바쳤다. 정주영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평화의 댐 건설 공사를 따내는 등 온갖 특혜를 누렸다. 구인회의 아들 구자경도 1백억 원이 넘는 기부금과 30억 원의 일해재단 성금을 전두환에게 바쳤다. 전두환 정권은 1987년 제3나프타분해센터를 럭키에 낙점했다.
1980년 화학섬유기업이던 선경(현재 SK)은 자신의 몸집의 5배나 되던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다. 선경의 최종현과 노태우의 커넥션 덕분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후 노태우와 사돈지간이 된 선경은 1992년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특혜 시비로 불만이 확산되자 자진 반납했다. 이후 1994년 김영삼 정권은 한국이동통신 민영화를 추진했고 사업자 선정 전권을 전경련에 넘겼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최종현은 손쉽게 한국이동통신을 품에 안았다. 법적으로 부동산과 주식 처분 등으로 매입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도 체신부는 선경이 신청한 ‘자구노력 유예’를 인정했다. 선경은 사실상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집어 삼켰다.(현재 SK텔레콤)
국영기업 두 곳의 민영화로 선경은 순식간에 한국 4대 재벌이 될 수 있었다.
한편, 노태우 정권은 정치 자금 1조 7천억여 원을 마련했다. 이병철에 뒤이어 이건희는 2백 50억 원을 노태우 정권에 헌납했다. 삼성의 역대 정권에 대한 불법정치자금은 드러난 것만 해도 8백60억 원에 달한다(2005년 참여연대).
‘금수저’ 재벌 2,3세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서 어마어마한 부를 소유하고 있다.
1987년 이병철은 당시 자산총액 11조 원이었던 그룹을 단돈 1백50억 원의 세금만 물고 이건희한테 넘겼다. 이재용은 이건희로부터 “편법증여”받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60억 원으로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삼성의 이재용, 이서현, 이부진 3남매는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주식자산만 2조 원이 늘었다.
SK 최태원은 자신이 지분 1백 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사인 워커힐호텔과 SKC&C가 보유 중인 SK(주) 주식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SK(주)의 대주주로 등극했다.
진짜 주인
재벌들은 노동자들 없이는 단 하나의 공장도, 부품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부와 그에 따른 명예는 재벌에게 돌아갔다.
세계 1위라는 삼성 반도체에서 노동자들은 백혈병 등 산업재해로 고통 받아야 했다. 이건희가 프랑스 스키장 3곳을 통째로 빌려 즐기는 동안 노동자들은 도청과 사찰, 감시에 시달리며 노조 결성조차 가로막혔다. 2013년 폭로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은 삼성의 노동자 탄압 실상을 드러냈다.
1973년 세계 조선소 건설 사상 최단시일인 27개월 만에 완공된 현대조선소의 명성이 있기까지 노동자 6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노동자는 “최고 40시간까지 잠 한 숨 못 자고 일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1989년 현대중공업 노동자 테러에는 식칼, 쇠파이프까지 등장했다. 1990년 현대중공업 노동자 파업에는 경찰을 1만 5천여 명이나 동원해 파업을 파괴했다..
1980년대 말, 3저 호황으로 현대는 61퍼센트, 삼성은 46퍼센트, 럭키금성은 1백 퍼센트나 성장했지만 기업들은 “임금을 올릴 여유가 없다”며 쥐어짜기를 멈추지 않았다. 10대 재벌들은 2008년 경제 위기 시기에도 자산과 매출액 증가율이 10.93퍼센트와 7.69퍼센트를 기록했는데 이는 평균 경제성장률 2퍼센트를 웃도는 수치다.
그런데도 이 자들은 뻔뻔하게 고통 분담이라며 “노동개혁” 운운하고 있다. 부정부패와 노동자 탄압으로 부를 쌓은 재벌들이야 말로 경제 위기의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