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사회서비스 강화 약속: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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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광역지자체 17곳에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해, 어린이집, 요양시설 등 국공립 사회서비스 시설을 사회서비스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 나라 사회서비스 시설의 대다수가 민간 소유이다. 예를 들어, 보육 시설 중 국공립 비중은 7퍼센트, 요양기관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국공립 시설조차 대부분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서비스의 90퍼센트 이상이 민간에 의해 소유·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사회서비스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겠다는 산업적 목표에 따라, 시장 확대 방향으로 사회서비스 확대를 추진해 왔다. 시장 경쟁이 서비스 효율과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반면 정부는 사회서비스 제공 주체가 아니라, 재정 지원이나 소극적인 관리를 하는 것으로 책임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시장의 효율’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리 사업자들이 수익 추구를 목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악화로 나쁜 일자리가 양산됐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대표적인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이는 서비스 질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또한 돈 되는 분야에만 민간 사업자들이 몰리는 공급 불균형 문제도 발생했고, 수익 확대를 위해 민간 사업자들이 온갖 불법·부당행위까지 하면서 노동자들의 조건과 서비스 질의 악화가 심화했다.
그래서 “국공립 어린이집에 가려고 출생신고와 함께 대기 신청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민간 시설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바란다. 이런 상황은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서비스공단을 통해 기존 국공립 사회서비스 시설을 직접 운영할 뿐 아니라,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해 국공립 시설을 새로 만들고 민간 시설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국공립 비중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예를 들어,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이용아동 수 기준으로 40퍼센트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 공약은 또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공약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 공약 중 34만 개는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만드는 것이고, 이 중 17만 개는 사회서비스공단이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지난해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대선 공약을 반영해 사회서비스공단 추진 계획을 발표했고,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도 포함돼,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이 실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실제 사회서비스공단 공약이 실행됐다면, 사회서비스 질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효과를 냈을 것이다. 물론 상당수 시설들이 여전히 민간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민간 시설들의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비중이 확대된 국공립 시설들이 사회서비스의 기준 구실을 하면서 민간 사회서비스의 질과 그곳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책임 회피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사회서비스공단 공약은 준비 단계에서부터 후퇴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제시한 사회서비스 관련 법안은 사회서비스공단이 아니라 ‘사회서비스진흥원’으로 바꿔 설립하려 한다는 게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명칭만 바꾸는 게 아니다. 정부가 극구 ‘공단’이라는 명칭을 거부한 것은 사회서비스를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점을 피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5월 4일 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회서비스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보면, 결국 사회서비스공단이 아니라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하는 것으로 후퇴했다.
내용도 명칭을 따라 후퇴했다. 공공 시설 확충을 위한 계획과 이에 걸맞는 예산이 제시되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계획을 보면, 앞으로 5년간 공공 시설 1837곳을 신축하는 것을 포함해 시설 3400곳을 직영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 7만 4163개를 만든다. 전국에 어린이집만 4만 3000곳이 넘는 상황에서 사회서비스원이 직영하는 시설이 3400곳밖에 안 될 뿐 아니라, 애초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으로 일자리 17만 개를 늘린다는 계획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또, 사회서비스원의 사업 종류와 범위 등을 지자체 재량에 맡기는 것으로 돼 있어, 지자체의 재정 부족 등을 이유로 계획보다도 못한 결과가 나올 공산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사회서비스원 소속 시설들을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려 한 것이다. 남인순 의원 법안에서는 독립채산제가 빠졌지만, 여전히 다른 공공기관들과 마찬가지로 ‘경영 평가’를 실시한다고 돼 있어서 사회서비스원이 수익성 위주로 운영이 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서비스원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 모든 문제가 정부가 재정 지원을 최소화하려 하면서 생기는 것들이다.
게다가 보육, 요양 등 민간 사업자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예를 들어,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등 51개 단체는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는 사회서비스공단에 반대하기 위해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했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 역시 공공 시설 확대가 “민간 복지서비스 시장의 질서와 기능을 훼손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도 민간 사업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우수한” 민간 위탁 사업자에게는 공공 시설을 계속 위탁할 수 있다고 열어두기도 했다. 이런 압박들 때문에 법안 처리 과정에서 사회서비스원은 누더기가 될 공산도 크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확대되고 있는 노동자 투쟁을 더욱 강화해야만 질 좋은 공공 서비스 확대와 노동조건 개선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