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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의 쟁점과 전망:
미·중의 “그레이트 게임”이 북·미 협상을 에워싸고 있다

6월 12일 오전, 전 세계의 시선은 싱가포르에 쏠린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매우 큰 이벤트가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정상회담을 지지율 제고에 이용하려고 시작 시각을 미국 동부 프라임 시간대에 맞췄다. 그는 싱가포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돼 부시와 오바마가 못 한 일을 해냈음을 부각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성사에 이르는 과정은 롤러코스터 같았다. 5월 24일 트럼프는 북한 고위 관리들의 담화를 핑계로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했었다.

이때 트럼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은 외교 문서치고는 너무 자기중심적이었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차관보였던 웬디 셔먼은 이렇게 비꼬았다. “이것은 1박 캠프에서 13살짜리가 쓴 이별 편지에 담길 만한 의식의 흐름과 같다.”

그러나 정상회담 전격 취소라는 변칙적인 행동으로 트럼프가 의도한 바는 명백했다. 북·미 실무 협상에서 북한의 양보가 있어야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메시지이자,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중국(그리고 러시아)와 밀착하는 꼴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그는 이것이 “게임”이라고 했다.

최선희, 김계관 등 북한 고위 관리들의 미국 비판 담화는 존 볼턴, 마이크 펜스 같은 미국 행정부 최고위직을 실명 비판했으나, 트럼프에 대한 비판은 절제했다. 즉, 북한은 불만은 드러냈으나 정상회담 자체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자, 김정은은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을 2차례나 만나면서 이를 견제하고자 했다.

트럼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문제는 북한 담화 그 자체라기보다는 바로 중국·러시아의 대북 관여였다. 특히, 중국 때문에 북한이 협상에서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뒤 태도가 돌변했다.”

중국, 러시아 모두 북한 같은 “불량 국가”가 핵무기를 포기하기를 바란다는 점은 트럼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국이 주도하는 판에 그들이 끼어들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트럼프가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하자, 북한은 신속하게 김계관 명의의 공개 답장을 보내 대화 재개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모종의 양보를 제시한 듯하다. 북한의 답장을 계기로 정상회담 추진이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트럼프 측도 단계적 접근 등 북한의 의견 일부를 수용한 듯하다.

무엇보다, 이 소동 전후로 명시적으로 바뀐 게 있다. 정상회담 취소 문제로 급하게 열린 5월 27일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과 김정은은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의 주체라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5월 초에 문재인은 시진핑에게 종전선언에서부터 중국과 협력한다고 약속한 바 있었는데, 이를 바꾼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 협상의 첫 단계에서 트럼프의 의도대로 중국을 테이블에서 배제한다고 남·북한이 공언한 셈이다. 중국으로선 아주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레이트 게임’의 한복판

북·미 정상회담이 전격 취소되고 바로 재추진되는 과정에서 이 회담을 둘러싼 문제가 드러났다. 〈노동자 연대〉가 강조해 왔듯이, 한반도 평화 협상에서 테이블에 누가 앉아서 무엇을 논의하느냐보다 그 테이블 바깥에서 벌어지는 변수들이 더 결정적이다. 특히, 미국, 중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벌이는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이 협상 테이블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조정자” 구실도 한계가 드러났다. 문재인의 1박 4일짜리 워싱턴 방문도 이틀 뒤 트럼프의 정상회담 취소 결정을 막지 못했다. 트럼프가 바로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는 큰 낭패를 봤을 것이다.

최근 미국, 중국이 벌이는 제국주의적 경쟁은 경제적·지정학적 측면 모두에서 점증하고 있다.

미국은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이름을 바꿨다. 이로써 일본·인도·호주를 아우르는 군사 협력을 주도해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중국의 해양 팽창을 막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미국이 단교 이래 처음으로 대만에 미군 해병대를 소규모나마 파견하기로 한 것도 꽤 시사적이다.

남중국해에서도 미국·중국의 전략 폭격기들이 잇달아 투입돼 무력시위를 했고, 조만간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의 항행의 자유 작전에 동참하고자 군함을 보내어 남중국해를 통과시킬 예정이다.

이런 상황은 트럼프 정부가 짧은 휴전 끝에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 2라운드를 선포한 것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 정부는 취임 이래 보호무역 정책으로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억제한다는 구상을 밀어붙여 왔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에서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자, 트럼프 정부는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 25퍼센트를 부과할 예정이며, 6월 15일 관세 부과 대상 품목을 발표한다. 공교롭게도 북·미 정상회담 사흘 뒤다.

북·미 정상회담은 이런 갈등이 높아지는 와중에 열리는 평화 협상이다. 이런 모순을 보며, 일부 정직한 관찰자들은 중장기적 전망을 놓고 우려하고 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한반도 탈냉전 프로세스가 아시아의 신냉전을 재촉하는 과정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의 분단·전쟁·정전이 세계 냉전이라는 구조적 힘의 발현이었다면, 아시아 신냉전의 출현은 한반도 탈냉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외교 정책에서 변덕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 북한을 상대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비난할 때나 반대로 “똑똑하고 품위 있다”고 칭찬할 때나, 그 속에 일관된 요소는 있었다. 바로 중국과 북한 간의 불화를 바란다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하면서 트럼프가 “[비핵화한] 북한이 언젠가는 경제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 눈에 띈다(물론 그 돈은 미국이 아니라 주변국들이 낸다고 했다). 5월 30일 주한미국대사대리 마크 내퍼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극단적인 적대관계에서 우방국으로 전환”해 경제적으로 성공한 베트남이 북한의 좋은 모델이라고 거론했다.

이런 언급은 인접한 중국의 영향력 제고를 염려하는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제안이다. 또한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 경제 재건에 박차를 가하려면, 북한으로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필수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게 일관되게 접근할지는 불확실하다. 존 볼턴처럼 북한 정권 교체를 원하는 인사들이 외교·안보 라인 핵심에 포진해 있는 데다가, 트럼프가 바로 그런 자들을 임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협상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다.

정상회담 이후가 문제다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트럼프 정부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앞으로 여러 차례 열릴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이는 여전히 핵심 쟁점들에서 양측의 의견 접근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6월 1일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뉴욕에서 김영철을 만난 후 김정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로서는 이란 핵 협정 이상의 성과물을 북한과의 협상에서 만들어 내야 하는 이해관계가 있다. 또한 미국 의회에 합의 비준안을 제출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 자체에 부정적인 미국 기성 정치권 다수도 만족할 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북한으로선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나 협상 초기부터 핵물질과 핵탄두를 대거 반출하라는 요구에 흔쾌히 응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비핵화와 체제 보장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에 합의하지 못한 채, 큰 틀의 상징적 약속만 내놓을 수 있다. 구체적 합의는 차후의 회담으로 넘기면서 말이다. 트럼프가 6월 12일에 김정은과 만나서 서명하는 일이 없을 수 있다고 말한 배경이다.

설사 구체적 합의에 이르더라도, 이행 과정에는 온갖 변수가 도사린다. 예컨대 북한 핵시설 사찰과 핵폐기 검증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과거에도 합의보다 합의 이행 검증 방식과 범위를 놓고 북핵 협상이 어그러진 적이 많았다.

여기에 종전선언을 더한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선언”이지 평화 체제로의 실질적인 이행을 담보하는 성격의 약속은 아니다. “종전 선언이 나와도 법적·제도적으로는 정전체제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정욱식 대표). 따라서 종전선언을 해도 평화 체제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정부 당국 간 협상으로 항구적 평화가 정착했으면 하는 대중의 바람과 무관하게,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평화 협상 테이블에 앉아도 자국 이해관계의 유불리부터 따진다. 종전선언 주체를 둘러싼 갈등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평화협정 협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설사 비핵화가 이뤄지고 평화협정이 맺어진다고 해도, 이는 경쟁국을 제압하려는 특정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반영됐거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일시적으로 조정된 산물일 것이다. 이에 근거한 평화는 근본에서 불안정하다.

5월 2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해 전 세계 군사비 지출 동향을 정리하면서, 전 세계 군사비 지출 흐름이 유럽·대서양에서 아시아·오세아니아·중동으로 뚜렷이 옮겨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군비를 늘리고 있고, 한국 같은 국가들도 이 경쟁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은 어느새 세계 10위의 군사비 지출 국가가 됐다.

한편에서 군비 증강에 열을 올리는 지배자들에게서 진정한 평화 정착을 이뤄 낼 능력과 의지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자 운동이 이런 현실을 인식하는 게 항구적 평화 정착의 출발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