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 예고:
한반도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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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평양에서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공동선언과 남·북한 간 군사분야 이행 합의를 설명하면서 낙관론을 펼쳤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간의 대화가 재개될 여건이 조성됐다고 생각합니다.”
“[군사분야 합의는] 남북 간에 있어서,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종전하는 데서 더 나아가 미래의 전쟁의 가능성까지 원천적으로 없애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익들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헐뜯기 바쁘다. 자유한국당은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처 없이 남한만 무장해제를 약속한 꼴이라고 아우성이다. 〈조선일보〉는 지면에 지도까지 그려 가면서, 서해상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 문제에서 남측이 35킬로미터나 더 양보했다고 성을 냈다. 우파들의 호전적 본성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한반도는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휴전선을 경계로 재래식 병력이 고도로 밀집된 지역이다. 그래서 남한·미군과 북한군 사이의 우발적 충돌이 확전으로 번질 위험성이 상존한다. 그런데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덮어놓고 반대하는 우익이 정말 꼴사납다.
사실상 남북 종전선언?
반면, 이번 평양공동선언이 “사실상 남북 종전선언”이라는 격찬이 자유주의 언론들의 지면을 도배했다. 그러나 평양 정상회담의 합의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고 미래의 전쟁을 항구적으로 막는 조처가 될지는 의문이다.
사실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 수준의 남북 간 합의는 이전에도 있었다. 특히, 1991~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그 부속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남·북한이 맺은 역대 합의들 중에 가장 진전된 합의로 남아 있다. 그 합의에는 이번 평양 합의의 핵심이 다 담겨 있는 데다가, 심지어 더 진전된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결국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휴지 조각이 돼 버렸다. 제국주의 간 경쟁과 미국의 한반도 관여 때문에 남북 간 합의가 지켜지기 어려웠다.
이번에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결국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대화가 다시 진전될 수 있느냐로 관심이 모인다.
당장은 험악한 분위기가 걷히고 대화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는 듯한 그림이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10월에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가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평양으로 갈 듯하다.
상응 조치
그러나 그 속을 찬찬히 살펴보면 북·미 대화의 앞길에 여전히 온갖 장애물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주류 지배자들 다수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9월 1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설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거의 없었다고 혹평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시설 목록이나 비핵화 시간표를 미국한테 여전히 넘기지 않았음을 문제 삼았다.
9월 25일 미국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 민주당 간사인 에드워드 마키는 트럼프가 북핵 문제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말하는 것은 미국을 전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시선을 트럼프 정부 안으로 좁혀도 사정은 복잡하다. 9월 23일자 〈뉴욕 타임스〉의 사설은 북한과의 합의를 원하는 트럼프와 합의 자체에 의문을 갖는 강경파 참모들 사이에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트럼프가 신임하는 참모들이 트럼프와는 다소 다른 생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예컨대 9월 24일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나 해스펠은 북한 정권이 자신의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보는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을 내비쳤다. CIA를 비롯한 미국 정보기관들은 미국 언론들에 북한이 여전히 핵 활동을 지속한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협상 테이블 위에서 각론을 논의하는 과정은 탄탄대로이기 힘들다. 9월 19일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북·미 합의 이행의 순서, 비핵화에 관한 서로 다른 규정 등이 계속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북한의 비핵화 조처(영변핵시설 폐쇄 등)에 관한 미국의 “상응 조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가 쟁점이다. 9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상응 조치”로서 종전선언, 인도적 지원, 평양 미국 연락사무소 설치, 북·미 간 경제시찰단 교환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이런 조처에 트럼프 정부가 얼마나 동의할지는 불확실하다. 이 와중에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북한의 비핵화 전까지 대북 제재는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트럼프 정부 안팎에서 북·미 대화에 관한 회의론이 자꾸 고개를 드는 것은, 미국 지배자들이 북한을 상대하는 문제를 제국주의 간 경쟁의 맥락 속에서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도 예외가 아니다. 9월 25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트럼프는 “국익 우선”을 강조하며 극우적 실체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국제적으로 우익들을 크게 고무시킬 연설이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이란, 중국 등에 맹공을 퍼부었다.(국제 핵확산 문제에서 지금 이란을 주된 타깃으로 삼는다는 점이 트럼프가 북한과는 대화를 지속하려는 동기 중 하나일 것이다.) 트럼프가 일조하는 국제 정세의 불안정이 한반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울에 답방하더라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를 위한 협상은 앞으로 계속 ‘가다’와 ‘서다’를 반복할 공산이 크다.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진보 진영 내에서는 9월 평양공동선언을 남북이 민족 공조(“우리민족끼리”)로 이뤄 낸 성과라고 평가하는 견해가 많다. 특히, 비핵화 문제에서도 남북이 공통된 입장을 냈다는 점을 높이 산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다음 발언은 이런 기대와는 사뭇 다른 점을 보여 준다. “북한이 취해야 되는 [비핵화] 조치들은 … 불가역적 조치[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이 취하는 조치는 군사훈련 중단[인데],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습니다. 종전선언[도] …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습니다. 설령 제재를 완화하[더라도] ... [북한이] 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입니다.”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만, 미국의 세계 전략하고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난 후에도 …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에 일관되게 진지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듯이, 문재인 정부도 제국주의 문제에서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노동자 운동은 문재인 정부와는 (경제·민생만이 아니라 남북관계·평화 문제에서도) 독립적이어야 하며, 미래에 한반도 상황이 다시 급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