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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되면 한반도 긴장이 완화될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합의서 한 장 없이 실패로 끝났었다 ⓒ출처 백악관

트럼프는 대선 유세에서 수차례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해 왔다. 선거 운동용 책자에도 그와 찍은 사진이 몇 개 들어 있다. 7월 18일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건 좋은 일이다.”

일부 논평가들은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바이든이나 카멀라 해리스의 것과 대조하며 트럼프 당선이 한반도 정세를 바꿀 것이라고 전망한다.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한반도 긴장 완화가 북미정상회담의 우선적인 목표라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과거처럼 비핵화를 약속하고 의제로 삼는 회담이 아니라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의 위치에서 관계 개선과 긴장 완화, 그리고 군비통제 회담에는 응할 가능성은 높다는 것이다.”(정욱식, ‘트럼프, 대통령 되면 김정은 핵보유 지도자로 대우해주나’, 〈프레시안〉 7월 20일 자)

물론 대부분 그런 논평가들이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트럼프 지지로까지 나아가는 극소수가 있긴 하다.) 트럼프 정부하에서 한반도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며 염려하는 논자들도 많다.

하지만 바이든 4년이 준 실망감이 큰 탓에, 트럼프 당선이 바이든보다는 한반도 정세를 유화 국면으로 바꿀 것이라는 주장이 적잖이 나오는 듯하다. 그런 주장에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적대 일변도를 비판하는 맥락도 있다.

김정은을 “바보”로 만들었던 트럼프

그러나 트럼프의 말만 보고 상황을 피상적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물론 대북 억제력을 한 고리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해 온 바이든 정부를 기본적으로 계승하는 해리스는 전혀 대안이 못 된다.

그러나 트럼프가 북한의 핵 보유를 온전히 인정하고 그것이 한반도 긴장 완화로 이어지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과거 트럼프 정부 때를 돌아보자. 2018~19년 북미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렸다.

김정은 정권은 트럼프가 내민 손을 적극적으로 붙잡았다. 그 시기에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 오간 27통의 친서를 보면,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강력하고 걸출한 정치인,” “훌륭한 리더십, 정치적 감각, 그리고 결단력을 갖춘 강력한 지도자,” “각하를 향한 흔들림 없는 존경” 등 낯뜨거운 찬사를 쏟아냈다.

미국과의 대화·협상은 북한이 소련·동유럽 붕괴 이후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전략이다(최근에는 러시아·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기울었지만). 겉보기와 달리, 실제 북·미 관계의 역사를 보면 북한 정권은 사회주의적이거나 반제국주의적이기는커녕 일관된 반미주의자들도 아니었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자 주류 언론들은 “되돌릴 수 없는 한반도 평화 시대가 열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폐기”와 “선 비핵화, 후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사실 이 쟁점들은 이미 이전 25년간 북핵 협상에서 늘 쟁점이 됐고, 합의에 실패했던 문제들이었다.

게다가 정상 외교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대북 제재는 오히려 더 추가되고 강화됐다.

트럼프와의 마지막 세 번째 만남도 성과가 없자 김정은은 마지막 친서에 불만과 좌절감을 담아 이렇게 썼다. “각하께서 우리의 관계를 오직 당신에게만 득이 되는 디딤돌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를 주기만 하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는 바보로 보이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결국 북·미 대화의 교착, 계속되는 대북 압박은 남북한 간 긴장 고조로 이어졌고, 2019년 6월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대중국 견제는 초당적인 미국 국가의 전략

사실 트럼프가 재선한다면 어디로 튈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트럼프가 나름의 방식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확고하게 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미국에게 북한은 우선적 고려 사항이 아니다.

북·미 관계는 단지 두 나라 정상들 사이의 관계는 물론이고 두 국가 간 관계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더 크고 근본적인 제국주의적 갈등인 중국과의, 또한 러시아와의 경쟁·충돌 상황에 휘말리면서 결정되는 측면이 결정적이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 누구보다 호전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 종식하겠다거나 중동에서 새로운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중국과의 대결에 더 집중하기 위함이다.

이는 바이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전략이 아니다. 비록 바이든은 길어지는 두 전쟁 상황에 발목이 붙잡혀 있지만 말이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동맹 정책을 비난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지만, 트럼프도 집권기에 대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정책을 완전히 뒤집지는 않았다. 미국에게 유럽과 일본은 너무도 중요한 동맹이다.

트럼프 집권기인 2019년 8월 한국 자유주의자들과 좌파 속에서 미국이 일본을 “패싱”하고 있다는 주장이 봇물을 이뤘을 때도 트럼프 정부는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를 발표해 일본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규정했다.

트럼프는 이듬해 “인도-태평양판 나토”를 표방하며 대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인도, 일본, 호주가 참여한 안보협력체인 ‘쿼드’를 출범시켰다.

당시 트럼프 정부는 한미연합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이는 북한의 요구보다는 한국의 안보를 미국이 혼자서 책임질 수 없다는 트럼프의 평소 소신과 더 관련 있는 결정이었다. 당시 미군은 명시적으로 대규모 훈련만 자제했을 뿐 사실 작은 규모로 쪼갠 훈련은 계속 진행했다.

북핵 문제는 여전히 일본(그리고 한국) 같은 동맹국들이 미국 제국주의와 밀착하고 군사력을 늘리는 데에 유용한 쟁점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북핵에 대해 유화적이기만 할 수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2017년에만 해도 트럼프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응해 “화염과 분노,” “핵버튼” 운운하며 한반도 긴장을 매우 끌어올렸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트럼프가 첫 임기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는 최근 발간된 자신의 회고록에서, 당시 트럼프가 백악관 회의에서 “북한군이 열병식을 할 때 북한군 전체를 제거하면 어떨까?” 하고 말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북한에 “화염”을 위협한 것이나 그러다 갑자기 온탕으로 바뀌어 손을 내밀었던 것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냉탕과 온탕 번갈기는 동아시아 정세를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에 맞게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두 가지 상반된 방식의 대응이었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적 갈등 속에서, 하물며 중국에 인접해 있는 한반도가 혼자 동떨어져서 평화로울 수 있다는 전망은 공상에 해당하는 관점이다.

한반도에 일시적인 긴장 완화 국면이 온다 해도 그것은 찰나에 불과한 ‘공포의 균형’이지 진정한 평화는 전혀 아닐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균형이 결정적으로 깨지는 순간 벌어질 지도 모를 미국과 중국 사이의 충돌은 어쩌면 두 국가 사이에 한정되는 국지전이 아닐 것이다.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가 휘말릴 수밖에 없는 제3차세계대전 급 갈등이 될 수도 있다.

재선된 트럼프가 북·미 대화를 재개한다 해도 그 대화는 이런 더 넓은 제국주의적 갈등 구조 속에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강대국들이 형성하는 자본주의 세계 질서이자 시스템이다. 이 문제는 각국 지배계급 간 대화나 협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운동을 기층에서 꾸준히 건설해 나가야만 한다.

일부 스탈린주의자들은 트럼프 당선 시 북·미 대화에 희망을 걸며 미국인들이 트럼프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강화된 핵전력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만나면 한반도 정세에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트럼프 당선이 한반도 평화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은 기껏해야 일시적 전망이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당선이 한반도 긴장 완화로 이어진다 해도 트럼프의 당선이 낳을 세계적 극우의 부상은 나 몰라라 해도 될까?

트럼프가 당선한다면 전 세계의 극우와 파시스트들이 자신감을 얻어 활개칠 것이다. 여성의 권리가 공격받고, 난민, 이주민, 흑인, 성소수자 등 차별받는 사람들이 희생양으로 내몰릴 것이다.

동아시아, 심지어 북미 관계 중심으로 트럼프 지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협소하고 이기적인 관점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자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필수적인 국제주의와 완전히 대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