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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대지급제 도입 요구:
더 실질적인 한부모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양육은 국가의 책임이 돼야 한다 ⓒ출처 한국한부모연합

지난 3월 25일 ‘히트 앤 런 방지법’ 제정 촉구 국민청원에 21만여 명이 참가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 법은 국가가 아이를 혼자 키우는 한부모에게 양육비를 선지급한 뒤 비양육 부모에게 양육비를 받아내는 제도를 말한다. ‘양육비 대지급제’라고도 한다. 이는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었다.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 엄규숙은 국민청원에 답하며 “여성가족부는 지난 2월 대지급제를 포함한 ‘양육비 이행지원제도 실효성 확보 방안’ 연구용역을 시작”했고, “11월에 결과가 나오면 ...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재인도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져야 할 책무이자 아동의 권리”라며 한부모 가족을 위한 국가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한부모 단체들이 정부의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 검토를 크게 환영하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나쁜 경제 상황을 의식하며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한 여러 약속을 뒤집고 있는 문재인이 이 약속을 지킬지는 미지수다.

양육비 대지급제를 시행하면 국가가 선지급한 양육비를 비양육자한테서 받아내지 못했을 때 국가 예산으로 채워야 한다. 이 제도를 도입한 독일은 23%만 사후에 받아낼 뿐 나머지는 국가 예산으로 부담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돈이 들어가는 양육비 대지급제를 도입하지 않고 양육비 미지급자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을 수도 있다.

최근에 결성된 한부모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양육비 해결모임’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문재인의 공약 파기를 우려하며 양육비 대지급제 공약 이행을 강하게 촉구하기도 했다.

삼중고

한부모들은 대체로 홀로 생계·양육·가사를 모두 책임지는 삼중고에 시달린다. 특히 노동계급 한부모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2016년 한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가족(약 44만 가구)의 평균 소득은 190만 원이다. 정부지원대상인 저소득 한부모 가족이 전체 한부모의 47퍼센트를 차지했다.

한부모들은 혼자서 생계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또 양육도 병행해야 해서 시간제 등 저질 일자리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미혼모들의 처지는 여성 차별이 결합돼 더 열악하다. 미혼모들의 월평균 소득은 92만 원에 불과하고 이중 66만 원을 양육비로 쓴다. 직업이 없는 경우도 절반 이상이다.

주거 문제도 심각하다. 한부모 가족의 51퍼센트가 전·월세를 살고 있다. 보증금을 낼 돈도, 다달이 내야 할 월세도 한부모 가족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한부모 가족의 빈곤율이 증가하면서 ‘증평 세 모녀 사건’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되풀이돼 왔다.

양육비 대지급제

많은 사람들이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을 염원하는 이유는 비양육자가 약속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한부모와 자녀들의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양육비 대지급제는 한부모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는 데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양육비 대지급제로 한부모 가족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큰 한계가 있다.

한부모 가족 대부분이 겪는 빈곤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다. 비양육자가 가난한 노동계급인 경우, 단지 개인의 무책임함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것이다.

한부모 가족 중 양육비 소송을 하는 비율은 6.7퍼센트에 불과하다. 설문조사 결과, 양육을 맡은 한부모가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는 이유는 ‘이혼이나 결별 후 이전 파트너와 얽히기 싫어서’인 경우가 40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비양육자가 경제적 형편이 안 된다고 답한 경우도 25퍼센트나 된다.

양육비 대지급제를 도입해도 양육자가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때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한부모 중에는 이전 파트너와 얽히기 싫어서 양육비 신청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국가가 대신 지급할 양육비 규모는 비양육자들의 소득 수준에 따르므로 소액밖에 받을 수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비양육자가 무일푼이라면 이 제도는 한부모에게 아무런 도움도 못 될 것이다. 결국 한부모의 다수는 이런 대책으로는 빈곤을 극복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국가는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으로 양육을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복지를 대폭 확대하라는 요구를 회피할 수 있다.

한편 한부모 단체들과 일부 우파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 자격을 정지하거나 여권 발급을 제한하는 등 처벌을 대폭 강화하라고도 요구한다.

재산을 은닉하거나 고의로 양육비 지급 약속을 무시하는 일부 무책임한 비양육자들이 공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육비 해결모임’ 회원들은 양육비 지급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나쁜 아빠’들을 찾아가 망신을 주기도 한다.

양육비가 절박한 한부모들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양육비 미지급자를 범죄자 취급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국가의 무책임한 방치가 아닌 양육비를 떼먹는 개인들에게 주된 화살을 돌려 진정한 문제를 놓치기 때문이다.

국가는 한부모 복지를 대폭 확대하라

지배자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들을 출산·양육하는 노동력 재생산 업무를 개별 노동계급 가족에게 떠넘긴다. 또한 ‘생명 존중’ 운운하며 낙태를 금지하지만, 위선적이게도 빈곤 아동이나 한부모 지원 등 이미 태어난 ‘생명’을 지원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한국은 OECD 평균에 비춰 봐도 가족·양육 복지가 열악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제대로 복지를 확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 배신, 임금체계 개악으로 저임금 고착화하기 등 노동자 쥐어짜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동계급 한부모 가족은 한층 더한 고통에 내몰릴 것이다.

미래와 현재의 노동자들을 낳고 기르는 것은 사회적 문제이므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힘 없는 개인을 질타하기보다 더 실질적인 한부모 지원 대책을 내놓으라고 국가에 요구해야 한다. 한부모 가족에게 괜찮은 주택, 현실적인 양육비 등 실효성 있는 복지가 제공돼야 한다.


문재인의 인색한 한부모 양육비 인상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예산안에서 한부모 양육비 지원금을 인상했다.

내년부터 저소득 한부모의 자녀 양육비 지원금이 13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인상되고, 아동 연령 기준도 현재 만 14세에서 18세로 상향된다. 청소년 한부모 양육비는 18만 원에서 35만 원으로 인상된다.

문재인 정부는 한부모 가족을 위한 파격적인 복지 혜택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전보다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필요한 수준에 비춰 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 1인당 월평균 양육비 지출액은 64만 8000원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양육비 수급 기준도 불합리한 점이 많다. 한부모 가족 구성원의 월 평균 소득이 중위소득 52퍼센트 이하일 때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데, 한부모에 자녀 한 명으로 구성된 2인가구의 경우 그 액수가 151만 원이다.(2019년 기준)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급이 오르면(2019년 기준 월급 157만 원) 정부 지원금은 ‘그림의 떡’이 된다. 애초에 지급 기준이 너무 낮게 책정돼 생긴 문제다.

또한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받거나, 자녀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보험을 해약해 환급금을 받아도 소득으로 환산돼 양육비 지원 자격에서 탈락하기 십상이다. 많은 한부모들이 ‘우리는 평생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으로 가난하게 살라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다.

이렇게 저소득 한부모만 선별해서 지원하는 방식은 누가 더 가난한지 증명하는 경쟁을 하게 만든다. 비참하고 모욕적이다.

또한 선별 복지는 한부모들이 ‘세금 도둑’이라는 악의적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 미혼모를 비롯해 한부모 가족들은 사회적 냉대와 멸시 때문에 한부모 가족임을 티내지 않으려고 지원금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문재인은 “어떠한 형태의 가족이든 자녀를 안정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한부모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려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충분히 걷고 군사비를 줄여 가족· 양육 복지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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