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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한부모 눈물 닦아주기에 턱없이 부족한 정부 대책

영아 유기·사망 사건이 잇따라 벌어져 사회적 우려가 커지자, 11월 16일 문재인 정부가 “미혼모 등 한부모 가족 보호를 위한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약간 개선된 점은 있다. 하지만 정부가 말한 “양육 환경 개선과 차별 해소”를 위한 “촘촘한 지원”이라고 보긴 힘들다. 필요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고, 기만적이거나 생색내기에 불과한 대책도 포함돼 있다.

불충분

이번 대책에서 청소년 산모의 임신·출산 의료비 지원(임신 1회에 120만 원) 대상이 만 18세 이하에서 만 19세 이하로 확대됐다. 청소년 미혼모의 절반이 19세이므로 이제라도 이런 조처가 들어간 것은 다행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만적이게도 지난해와 올해 청소년 산모의 의료비 지원 예산(6억 원)을 절반(3억 원)으로 줄였다. 예산 집행률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이는 사용 용도가 제한돼 있고, 국민건강보험 절차와 연관된 제도적 공백 탓이 크다. 그럼에도 정부는 제도 개선은커녕 매몰차게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이다.

이번에 지원 대상이 확대됐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청소년 미혼모는 가족과 단절되면서 제대로 된 산전·산후 관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부모가족지원법에 ‘청소년 미혼모’는 만 24세 이하로 돼 있는데, 이에 따라 청소년의 의료비 지원 대상이 더 확대되고 예산도 늘어나야 한다.

한부모가족복지시설 입소 기준이 조금 완화되고 입소 기간이 연장됐는데, 당장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는 한부모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10~20대 미혼모는 안정된 주거 공간이 없어 흔히 찜질방이나 모텔을 전전한다.

그러나 저소득 한부모 가구는 약 18만 가구에 달하지만, 한부모가족복지시설은 128곳으로 약 2300가구만 수용될 수 있다. 입소 경쟁이 치열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양질의 시설을 더 늘리고 입소 기준을 대폭 낮춰야 한다.

기만적

이번 대책에 들어간 양육비 지원 방안은 기만적이다. 지난 9월 24일 국회에서 통과된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의 내용을 최근 사태로 인한 새로운 지원 대책인양 집어넣었다. 기초생계수급자 한부모 가족에게 아동 양육비(18세 이하 자녀 1인당 월 20만 원)를 지급하는 것이나, 추가 아동 양육비(월 15만 원) 지원 대상을 만 24세에서 만 34세로 확대한 것이 그것이다.

물론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은 가난한 미혼모 등 한부모 가족의 생계에 약간이나마 보탬이 될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양육비 지원 대상이 협소하다. 양육비 지원은 중위소득 52퍼센트 이하(2인 가구 월 소득 151만 원) 한부모 가족만 받을 수 있다. 지급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서 한부모 가구(전체 151만 9000가구) 중 고작 11퍼센트만 지원을 받고 있다.

월급, 보험, 저축, 자동차, 부동산, 이전 파트너의 양육비, 자녀의 아르바이트 수익 등이 모두 소득으로 정산된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으면 양육비를 받을 수가 없다. 만약 양육비 지급 기준보다 1만 원이라도 소득이 늘어나면, 지원금이 바로 끊어진다.

그래서 한부모들이 자신의 월급을 고의로 삭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진다. 매번 가난을 증명하느라 전전긍긍하는 것도 수치스러워 일부러 지원을 포기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홀로 생계와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한부모 가족에게 양육비 지원은 절실하게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돼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한부모 가족이 늘고 있다. 따라서 소득 기준을 없애 모든 한부모 가족에게 양육비를 지원하고, 액수도 더 늘려야 한다.

립서비스

한편, 한부모 가족에게 가장 시급한 일자리·주거 문제·돌봄 서비스 지원 대책은 뚜렷하게 내놓은 것이 없거나 말뿐에 그친 것이 적잖다.

괜찮은 일자리는 절실한 문제다. 지난 10년 동안 양육 미혼모와 한부모 가족이 늘어나면서 스스로 일하며 자립하려는 욕구가 크게 증가했다. 미혼모 중 20~30대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임신·출산 과정에서 일을 그만둔 경우가 80퍼센트에 이른다. 사회적 편견과 양육 부담 때문에 직장을 유지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출산 후에도 양육 부담에 짓눌려 저임금 저질 일자리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부모 가족의 빈곤과 열악한 삶이 개선되려면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가 제공돼야 한다.

또한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아이돌봄 서비스가 뒷받침돼야 한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한부모가구 실태조사’를 보면 취업 한부모의 약 41퍼센트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근무한다. 비극적인 인천 ‘라면 형제’ 사건의 30대 엄마도 혼자 생계를 책임지며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걸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는 “본인 부담을 완화하는 아이돌봄 서비스 지원 확대”를 말로만 할 뿐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주거 지원을 위해 한부모 매입임대주택을 확대하겠다고도 했지만 구체적 계획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그간 제공한 수준을 보면 정말 꾀죄죄하다. 2018년에 145호, 2019년에 158호, 2020년에 189호만 제공했을 뿐이다.

최근 부동산 대란은 한부모 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한부모 가족을 위한 저렴한 공공 임대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되, 사회적 편견을 고려해 별도로 구분되는 주거 형태는 지양해야 한다.

실효성

한편,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영아 유기 예방’을 위해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보호출산제’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친모의 신상 정보를 국가 기관에 보관하고 출산·입양 등의 절차를 가명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면 신분 노출을 꺼리는 미혼모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런 조처가 도입돼도 영아 유기·살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양육 지원과 생계 지원, 여성의 낙태권 보장 등이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이다.

또, 정부는 내년 6월부터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미지급하면 운전면허를 정지하는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제재 강화” 방안도 내놓았다.

물론 합의한 양육비를 고의로 주지 않고 아이를 나 몰라라 하는 몰지각한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국가의 제재 강화 방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제재 조처는 양육비 소송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헤어진 전 파트너의 인적 사항을 파악해 접촉하고 소송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은 경제적·심적 부담이 크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또한 미혼모 등 한부모 가족의 빈곤과 불평등을 사회적 구조와 연관 짓지 않고, 양육을 개인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도 문제다.

‘양육비 채무자’의 무책임한 태도에 한부모 가족의 생계가 타격받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개인에 대한 제재 강화보다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미래와 현재의 노동자를 낳고 기르는 문제는 사회적 문제이므로 가족 형태와 무관하게 국가가 양육과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 미혼모 등 한부모 가족의 삶을 개선하려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복지 예산을 대폭 늘리고, 보편적 복지로서 양육 지원과 양질의 일자리와 공공·임대 주택 등을 제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