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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아직도 역사를 이해 못 하는 자본주의 예찬자 후쿠야마

1989년에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를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최근 새 책을 냈다 ⓒ출처 fronteirasweb(플리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정체성》이라는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할 제목의 새 책을 출판했다. ([내용을 보기 전에는] 책이 무엇을 다룰지 알기 힘들다.) 이는 1992년과는 상당히 다른 일이다. 그때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후쿠야마는 그 전부터도 유명했다. 1989년 그는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H W 부시 정부의 국무부에서 정책기획국 부국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때 “역사는 끝나는가?” 하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냉전 시절에 소련에 맞서 미국이 승리한 것은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를 뜻하고, 따라서 역사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후쿠야마는 위대한 독일 철학자 헤겔을 따라서 역사를 경쟁 이데올로기들의 투쟁으로 이해했다. 그의 주장인즉,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항할 능력이 있는 최후의 진보적 사상 체계를 상징했으니 그것이 실패하면서 역사는 끝났다는 것이었다.

[후쿠야마가 그 논문을 발표한] 1989년 말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중부 유럽과 동유럽의 공산당 정권들이 몰락했고, 곧이어 소련 자체도 붕괴할 것이었다. 후쿠야마는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공들여 설파한 자본주의 승리론의 대변인으로 여겨졌다.

그런 평가는 아주 공정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유명한 구절에서 후쿠야마는 다음과 같이 자기 생각을 밝혔다. “역사의 종말은 매우 슬픈 시대가 될 것이다.” “그 시대는 경제적 계산의 지배를 받는 시대이고, 기술 문제, 환경에 대한 우려, 닳고 닳은 소비자들의 요구가 한없이 생겨나는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논문의 주장을 더 정교하게 설명한 책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에서 마르크스를 죽은 개 취급했다.

1992년에 나와 후쿠야마는 맨체스터 직공학교에서 그의 책을 두고 논쟁을 했다. 토론회에 약 200명이 참석했는데 누구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못해 이렇게 말했다. “맨체스터에서는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군요.”

그 뒤 수십 년 동안 여기저기에서 역사는 굳건히 살아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리고 후쿠야마는 마르크스에 관해 어조를 바꿨다. 1989년 그는 이렇게 썼었다. “분명히, 계급 문제는 서방에서 정말 성공적으로 해결됐다. ... 현대 미국의 평등주의는 마르크스가 상상했던 계급 없는 사회의 필수 요소를 성취했다.” 그러나 2016년에는 다른 생각을 내비쳤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설명하려 애쓰면서 〈파이낸셜 타임스〉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사회 계급은 ... 선진국과 신흥국들에 존재하는 수도 없이 많은 사회적 균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된 듯하다. 이는 세계화와 기술의 진보가 직접 낳은 결과이고, 세계화와 기술의 진보는 1945년 이래 미국이 창조한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촉진한 것이다.”

후쿠야마는 자신의 최근작을 홍보하려고 〈뉴스테이츠먼〉과 인터뷰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현재 국면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어떤 말들은 내 보기로 진실로 드러나고 있다. 마르크스는 ... 노동자들이 가난해지고 수요가 불충분해지는 과잉생산 위기를 말했다.”

그러나 후쿠야마는 여전히 1989년 논문에서 개진한 인식틀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역사가 헤겔이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추동된다고 주장한다. 이 투쟁은 이데올로기 투쟁뿐 아니라, 현재에는 정체성 정치로도 표현된다는 것이다.

후쿠야마가 헤겔을 이러저러하게 오해하는 면도 있지만, 사상을 결정적 요인으로 여기는 것은 둘의 공통된 오류이다. 마르크스는 오래 전에 그런 관점의 약점을 지적했다. 사회는 경제적 관계들의 구조와 생산 기술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이를 보지 못한다는 약점이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이데올로기 투쟁의 영역은 인간이 “갈등을 인식하게 되고 싸우는” 곳이다.

후쿠야마는 정치를 이데올로기 변화와 권력 쟁투로서 피상적으로 이해한다. 1989년에 그는 마르크스를 무시해도 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거짓되게도)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통치 정당성을 찾은 정권들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 뒤로 30년은 자본주의를 계급 착취와 주기적 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체제로 본 마르크스의 비판이 중요하다는 것이 거듭 드러나는 고통스러운 교육의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후쿠야마는 실패한 과학자처럼 뒤에 처져서는, 근본으로 달라지지 않는 [자신의] 이론적 틀에 마르크스를 양념처럼 가미할 뿐이다.

그는 [새 책에서] 정체성 정치에 주목한다. 한때 자신이 찬양하던 신자유주의가 일으킨 경제적 고통 탓에 일부 사람들이 예를 들어 이민자를 비난하도록 고무되는 현상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말이다. 현재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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