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내적 모순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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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종언은 매우 슬픈 시기가 될 것이다. 인정 투쟁, 순전히 추상적인 목표에 목숨까지 바치려 드는 헌신성, 대담함·용기·상상력·이상주의를 자아내는 세계적 이데올로기 투쟁은 사라지고 경제적 타산, 끝없는 기술적 문제 해결, 환경에 대한 우려, 세련된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이를 대신할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유명한 책 《역사의 종말》에서 이렇게 썼다. 이 책은 1989년에 출판됐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기 직전이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스탈린주의 지배 체제의 붕괴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후쿠야마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 말 그대로 역사의 종말이다. 즉, 인류의 이데올로기적 진화가 종착역에 다다르고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인류를 지배하는 최종 형태로 보편화된 것이다.”
글쎄,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딱히 확실한 승리를 거둔 것 같지는 않다. 최근의 세계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푸틴의 핵전쟁 위협 이후 세계는 지나치게 흥미로워지고 있는 감이 있다. 그런 만큼 후쿠야마는 해명해야 할 게 많다. 그런 그가 최근에 내놓은 해명이 바로 지난주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린 긴 글이다. 푸틴을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가들이 어째서 이토록 수세적인 처지에 놓였을까? 1989년 이후 20년 동안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는데도 말이다.
후쿠야마의 해명에는 변변찮은 데가 있다. 그는 이런 불평을 한다. “자유주의에 적대적인 우파와 좌파가 공히 과학과 전문성을 불신한다.” 좌파가 그러는 사례로 후쿠야마는 주로 비판적 역사가 미셸 푸코를 든다. 그러나 푸코에 관한 후쿠야마의 서술은 그가 푸코의 저작을 한 줄도 읽어 보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그는 이렇게 썼다.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세계에서 살아 봤을 때 가장 소중하게 여겨진다.” 중부·동부 유럽의 옛 스탈린주의 국가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유럽에서 가장 우익적인 정부가 들어선 나라는 [중부 유럽의—역자] 헝가리와 폴란드다.
그러나 후쿠야마의 글을 관통하는 더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가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것이다. 이 주제는 2016년 11월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린 글에서 더 뚜렷하게 제시된다. 그 글에서 후쿠야마는 당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의—캘리니코스]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무자비한 경쟁이 벌어지는 세계시장에 대응하려고 기업들은 공정을 아웃소싱 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려 했으며, 그러면서 선진국의 노동계급은 일자리를 잃었다. 이 장기적인 과정은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몇 년 후에 일어난 유로존 위기로 더 악화됐다.
“두 경우 모두에서 특권층이 짜 놓은 시스템은 ⋯ 외부 충격에 의해 극적으로 붕괴했다. 그 실패의 비용은 특권층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더 무겁게 부과됐다. 그 후 진정한 문제는 왜 2016년에 포퓰리즘이 부상했느냐가 아니라, 왜 2016년이 돼서야 부상했느냐이다.”
이번 글에서 후쿠야마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 지속 불가능한 극단”으로까지 밀어붙였다고 매우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후쿠야마는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자기 무덤을 판 다른 중요한 방식을 언급하지 않는다. 바로 미국의 조지 W 부시와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인 재앙적인 전쟁이다. 어쩌면 그것은 정치경제학자 윌 데이비스가 지적했듯이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촉구한 네오콘 집단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를 후쿠야마가 지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또, 후쿠야마는 갈수록 양극화되는 세계 정치의 중요한 역설 하나를 직시하지 않는다. 후쿠야마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즐겨 비난하는 두 권위주의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모두 서방 주도의 세계시장에 참여하면서 힘을 키웠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유럽에 각각 제조업 제품과 에너지를 수출하면서 성장했다. 또한 현재 모두가 린치라도 가할 듯이 비난하고 있는 러시아 올리가르히는 런던의 부촌에 저택을 보유하고 있고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국제 자본주의의 일부이지 낯선 외부인이 아니다.
처음에 후쿠야마는 독일의 대철학자 헤겔의 추종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에 내재된 모순이라는 헤겔의 핵심 사상을 후쿠야마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내적 모순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조야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투쟁이 아니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