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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이미지 변화를 계기로:
북한 사회의 성격을 살펴본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면서 중도·진보계 친정부 언론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미지를 새로 색칠해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우파 언론에서는 그는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트러블 메이커’, ‘핵무장 폭군’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우파들은 공식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심기가 불편하다. “모두가 ‘집단 망각증’에라도 걸린 것 같다.” 우파는 김정은이 3대째 권력을 세습하는 독재자이고, 김정은 치하의 북한은 주민을 강압으로 통치하고 수탈하는 봉건 왕조이자 전체주의 체제라고 비난한다.

우파의 북한 비판은 위선적이다. 똑같은 비판을 남한으로 돌려도 그들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우파 언론과 삼성·현대·LG 같은 재벌 중에 세습 기업이 아닌 곳을 찾기가 어렵다. 또한 우파들은 평양의 마천루와 평양 바깥의 궁핍을 대조하지만, 이런 불평등은 남한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도 모두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어쨌든 올해 들어 남북 관계가 개선되자 김정은에 대한 평가가 일부 바뀌었다. 4월 남북 정상회담 직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는 김정은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잇달아 내놓았다.

여기에는 정부·여당 인사들의 (180도 달라진) 김정은 칭찬도 한몫했다. “솔직담백하고 예의 바르더라”, “노련하고 능수능란하다”, “남에 대한 배려도 보이는 지도자.”

결론부터 말하면, 김정은은 북한 인민을 억압하고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지배자다. 그리고 이 점에서 남·북한 지배자들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은 “싸우는 형제”일 뿐이다.

체제의 동역학

진보·좌파 진영의 일각에는 국유화된 경제 체제나 이데올로기(또는 헌법)에 주목하며 왜곡됐어도 북한을 사회주의 사회로 보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전면적으로 국유화된 경제 체제를 곧 사회주의로 보는 것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개념과는 아무 관계 없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권력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파리 코뮌을 크게 찬양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 국가 건설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했다. 북한에서는 산업을 국가가 소유·통제하지만, 그 국가를 통제하는 건 북한 노동계급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유리된 국가 관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언제나 사회 체제의 유기적 일부이자 능동적 요소였다. 그래서 말년에 엥겔스는 국가의 경제 통제나 국가 생산을 사회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산업을 통제한 북한 관료는 여느 자본주의 국가의 관료와 마찬가지로 자본 축적에 열을 올려 왔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가하는 압력에 대처하는 북한 관료의 대응 방식이었다.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경제적 경쟁 때문에, 북한 관료는 제한된 자원을 중공업에 집중 투자해 자본 축적을 이뤄 왔다.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착취는 압력에 비례해서 증대했다.

이런 경쟁의 논리는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인 ‘축적을 위한 축적, 경쟁을 위한 경쟁’이다. 즉, 북한 노동자들은 경쟁적 축적 시스템에 종속됐다.

북한 헌법은 “근로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적시해 놓았다(8조). 하지만 북한 노동계급은 권력을 갖기는커녕 민주적 권리와 노동기본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그들은 생산수단, 생산물, 생산방식 모두에서 소외돼 있다.

북한 노동계급의 다수는 여전히 굶주림과 궁핍을 겪는다. 10월 9일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 주민 1000만 명 이상(북한 인구의 약 40퍼센트)이 영양실조 상태라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북한 관료는 핵무기개발에 주력하고, 이를 위해 중공업 생산수단을 계속 축적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언급한 대로 북한은 ‘한편에서는 부의 축적이, 다른 한편에서는 빈곤의 축적’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북한은 남한과 꼭 마찬가지로, 더도 덜도 없이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사회다.

수령론 같은 북한의 일부 부차적 특징이 아니라, 체제의 동역학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시장화?

최근 학계는 터무니없이 북한의 ‘시장화’에 주목한다. 시장화가 진전되면서 북한이 시장 자본주의로 변모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김정은이 북한판 덩샤오핑이 돼,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그들은 시장화가 북한의 위기를 해결할 대안이고 북한을 국제 질서(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 안착시킬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학계의 북한 ‘시장화’ 주장은 현실보다 크게 과장돼 있어 보인다. 1990년대 이래 북한 경제는 장기간 위기를 겪었다. 그 와중에 많은 주민들이 살아 남으려고 장마당 거래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자금을 확보한 사람들인 돈주까지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돈주들의 일부는 서비스 업체를 경영하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시장 자본주의로 변모하고 있다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다. 생산 부문을 포함한 북한 경제 전체로 보면, 국가가 직접 통제하거나 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역이 여전히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북한에서 국가기구의 주도로 제한적 개혁이 시도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당국은 20여 곳의 경제특구를 지정하고 해외 투자 유치에 나섰다.

개별 국영 기업들한테 기업 활동 자율성을 꽤 부여하는 조처도 내렸다. 이렇게 내부 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과거 유고슬라비아 같은 일부 동구권 국가도 시도했던 일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조심스런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진전될 수 있을지, 그리고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더구나 지금의 대외 환경이 북한에 불리하다.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경제 재건에 필요한 투자를 외부에서 끌어오기가 어렵다. 경제특구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세계경제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각국의 보호무역 추세가 강화된다는 점도 경제의 빗장을 풀고자 타진하는 북한에게 불리한 요인이다.

북한 관료로서는 국가자본주의에서 시장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설사 성공 가능성이 있어 보여도)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 각 국영 부문을 통제하는 관료들(지배계급이다)의 이해관계 충돌로 내분에 휩싸일 수 있고, 그 와중에 아래로부터 저항이 벌어질 틈이 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중국은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직후 마오쩌둥 측근(4인방)이 숙청되는 등 관료들의 격렬한 내분을 치르고 나서야 전면적인 개혁·개방 노선을 시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내분의 재연을 배경으로 1989년 톈안먼 항쟁까지 일어났다.

설사 시장 개혁·개방이 진전되더라도, 시장화는 북한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다. 북한 노동계급의 처지에서 보면, 북한 경제의 무게중심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옆으로 게걸음 치는 일일 뿐이다. 과거 국가 통제 경제에서 신자유주의로 전환된 남한의 경험에 비춰 봐도,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또 다른 고통이었다.

북한 노동계급이 스스로 일어서서 계급 착취·억압 구조를 무너뜨릴 때, 노동자들과 인민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진정한 사회주의적 사회를 건설하기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은 북한 한 나라에 국한돼서는 성공할 수 없다. 국제적인 혁명적 변혁 과정의 일부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장기화된 북한 체제의 모순과 위기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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