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집 성추행 사건 유죄 판결을 둘러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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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둘러싼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이 사건을 두고 상반된 입장의 두 집단이 각각 거리 항의까지 벌일 예정이다.
애초 사건은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벌어졌다. 모임 중이던 남성 A씨가 그 식당에서 다른 모임을 하던 한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잡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 이 여성은 그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반면, A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결국 1심에서 A씨는 검찰의 구형(벌금 300만 원)보다 무거운 징역 6개월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런데 A씨 부인이 한 온라인 게시판에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면서 새 국면이 시작됐다. 청원에는 33만 명이 동참했고,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곧 항소심 재판이 열린다.
쟁점은 1심 재판부가 충분한 증거도 없이 유죄 판결을 내렸는지 여부다. 증거로 채택된 CCTV 영상으로는 두 사람이 잠시 스친 것은 확인되나, 추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목격자나 물증도 없다.
이처럼 피해자와 피고인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두 사람의 주장을 뒷받침할 다른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재판부는 피해 여성의 진술과 (추행 장면이 포착되지 않은) CCTV 영상을 증거로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판결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이번 판결이 ‘무죄 추정의 원칙’과 ‘증거주의’라는 민주적 사법 원리를 위배한 것이고, 이런 식이라면 여성이 ‘당했다’고 말만 해도 성폭력범이 될 수 있어 억울한 남성을 양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이 ‘자유심증주의’(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것)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고도 주장한다.
여기에는 피해 여성이 “꽃뱀”이라며 비방과 험담을 해대는 자들, 사법불평등에 정당하게 항의한 최근의 여성 시위들을 ‘억지 주장’으로 매도하고 여성 차별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이처럼 성차별적·보수적 동기의 온라인 여론 몰이와 피해 여성에 대한 부당한 비방과 험담에는 가차없이 반대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에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성차별주의자로 치부할 순 없을 것이다. 비록 성추행이 일어났을 확률이 십중팔구라서 개연성이 크다 해도, 진보적 사법 정의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일부 사람들은 ‘그 정도 증거면 충분하다’며 A씨의 유죄를 확신하거나, 이에 의문을 품는 것 자체를 “2차가해”로 매도한다.
판사의 양심이냐, 증거주의냐
오직 정황증거만이 존재하는 사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공정하고 성폭력 반대 운동에도 도움이 될지 고민하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재판부의 판결을 살펴보자.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그 내용이 자연스럽다는 점, 피해 여성이 손을 스친 것과 움켜잡힌 것을 착각할 만한 사정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피해 여성이 사건 직후 많은 남성들 앞에서 A씨에게 즉각 항의한 점(이는 CCTV 영상으로도 확인됨)이 유죄 판결의 근거로 제시됐다.
당연히 증거주의는 그저 물증주의로 협소하게 국한돼서는 안 된다. 물증이 남기 힘든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물증만으로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고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그간 수사기관과 법원이 종종 보수적 편견에 따라 피해자의 진술을 무시해 온 관행에 비춰 보면, 이번 사건의 재판부가 일관성·정합성 있는 피해자 진술을 적극 존중한 것은 진일보한 면이 있다.
또한 천차만별인 구체적 증거의 증명력을 미리 법률로 일률적으로 정하는 ‘법정증거주의’는 복잡미묘한 사건의 경우 그 진상을 판단하는 데서 부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자유심증주의를 전면 배척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연성만으로 유죄 결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추가 증거가 나올 때까지 불확실한 것을 개연성의 영역 안에 남겨두는 겸손한 태도가 미덕일 수 있다. 특히, 국가기구의 형벌권 행사는 전과가 남아 낙인 효과가 매우 크고, 피고인의 생계에도 지장을 주며, 그 가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피해자가 잘못 감지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법원 판결이 원인이 된 건 아니지만) 2016년 동아대 한 교수와 2017년 전북의 한 중학교 교사가 각각 학생 성추행 누명을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에서도 보듯, 성폭력 가해자 낙인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판결을 성토하는 집회 주최측에 따르면, 성폭력 누명을 호소해 온 박진성 시인과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저자 오세라비 씨 등도 이 집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형사상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나 판결에 합리적 의심이 있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집회 주최측이 불법촬영(‘몰카’) 항의운동을 두고 “혐오로 얼룩졌다”고 일축하는 등 여성 차별 반대 운동을 부당하게 비난하는 것은 이 집회의 성격을 의심케 한다. 이 시위가 성차별주의자들을 고무할지도 몰라 우려스럽다. 따라서 진정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이 집회에 참가하지 말아야 한다.
성 관련 사건에는 종종 인식의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증거의 확실성 공백이 있는 개개별 사건의 진위 여부를 두고 마치 전지전능한 신인 양 최종 심판을 내리는 데 확신을 드러내는 것이 차별에 저항하는 효과적인 실천은 아닐 것이다. 여성의 삶에서 성적 자기 결정권이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한 효과적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