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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못 한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 문재인이 이어받다

규제 완화는 이윤을 위한 '안전' 완화다 10월 30일 ‘국민연금 개혁! 사회안전망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 ⓒ조승진

정부 여당은 지난 9월 국회에서 정보통신융합법, 산업융합촉진법, 규제자유특구법(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켰다.

세 법률은 모두 해당 분야에서 안전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우선 허용·사후 규제’ 원칙이 담겨 있다. 이전에는 기업이 특별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려 할 경우 소비자에게 위험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받아야 해당 사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세 법은 새 제품의 안정성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아도 일단 허용하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규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소한의 안전성 입증 책임도 기업이 ‘스스로’ 안전성 검토를 마치면 일단 허용한다. 예컨대 자율(무인)주행차가 도로에 다닐 수 있게 하거나, 수소차에 들어가는 수소가스탱크와 수소연료 충전소의 안전성 검사도 해당 기업이 자체적으로 하도록 하는 식이다.

정보통신융합법의 경우 특히 원격의료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애플 등 스마트워치 제조사들은 손목시계를 통해 심전도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문제는 이 기술의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예컨대 누군가 심장 질환으로 통증을 느끼는 상황에서 시계가 원격으로 연결된 의사에게 기록을 보낸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시계가 오류로 ‘정상’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경우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를 권하지 않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노총 등 수많은 단체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원격의료에 반대해 온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이밖에도 원격의료를 본격 허용하는 추가 조처들도 추진하고 있다.

기업주용 종합선물세트

공공기관들에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를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조처도 정부 계획에 일부 포함돼 있다. 이는 공적으로 개발된 기술과 정보를 민간 기업에 헐값에 넘겨주는 특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기업들이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지만, 실제로는 이윤 ‘맞춤형’ 서비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보험사가 건강보험공단에 축적된 환자들의 정보를 취할 수 있다면 그 이익은 개별 가입자가 아니라 보험사에 돌아갈 것이다. 보험료를 추가로 받거나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융합촉진법의 경우 정부는 ‘음식 배달 로봇’, ‘자율주행(무인) 버스 운행’, ‘무인선 운행’, ‘지게차를 탑재한 트럭’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러나 이런 사업들은 충분한 안전성 확인 없이 상용화할 경우 모두 당장 인명 사고를 낳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기업주의 과실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책임도 묻지 않기로 했다. 정부 자신이 검증도 없이 허용해 놓은 마당에 과실을 찾아내면 책임져야 할 정부(와 담당자)가 문제를 찾으려 하기나 할까.

규제자유특구법에는 앞서 언급한 조처들을 실시할 수 있도록 다른 법률에 명시된 규제에 예외를 적용하는 조항들이 수십 개 나열돼 있다. 그 밖에도 병원들의 부대사업 범위를 무한정 늘려 주는 의료 영리화 조처, 전력산업의 부분 민영화, 가스·건축·도로·소방 등 안전과 직결된 규제 완화, 국·공유자산의 임대 매각 규제 완화 등 수많은 규제 완화 조처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야말로 기업주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문재인도 박근혜에 대한 대중의 증오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에는 이 법을 “적폐”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앞서 통과시킨 규제완화 법률 외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도 추가로 밀어붙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10월 5일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도 이를 재천명했다.

이런 조처들은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가 모두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기업주들의 경쟁력을 높여 주려는 시도다.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을 대가로 말이다.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도박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