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도 건재했고, 신자유주의도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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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월 7일 같은 주제로 진행한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표문이다.
최근 미국 바이든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자 국가독점자본주의가 도래하고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끝났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바이든은 올해 3월 가계에 대한 현금 지원 정책 등을 담은 1조 9000억 달러(2137조 5000억 원) 규모의 미국 재건 정책을 발표했다. 또, 2조 2500억 달러(2531조 2500억 원)의 일자리 계획과 1조 8000억 달러(2025조 원)의 가족 지원책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다 합치면 약 6조 달러로, 미국 GDP의 30퍼센트에 이른다.
바이든이 재정 확대 정책을 발표한 것은 지난 40년간 역대 미국 정부가 경제적 자유와 자유 시장을 옹호하며 신자유주의 정책들(자유무역 촉진, 민영화,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간섭 최소화, 복지 지출 감축 등)을 추진할 때와는 다른 듯하다. 예컨대, 오바마 정부는 2008~2009년 금융 공황 때 대규모 재정 확대 정책을 채택한 이후 금세 긴축 정책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 재정 정책들은 대부분 8~10년에 나눠서 쓰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지난 한 해만도 4조 달러를 지출한 것을 고려하면, 바이든 정부의 재정 지출 계획이 그리 엄청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지원이 코로나19와 장기 불황으로 피폐해진 대중의 삶을 구제하고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충분한 돈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든의 정책이 현재 자본주의가 처해 있는 심대한 위기에 대한 대응인 것은 사실이다. 국가의 지원과 개입이 없다면 경제는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질 공산이 큰 것이다.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은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그래프1).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같은 거대 IT 기업들과 대형 은행들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막대한 수익을 거뒀지만, 지난해 전체 미국 기업의 이윤은 (정부 지원을 제외하고 보면) 30퍼센트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미국 대기업 200곳이 이자도 벌지 못하는 ‘좀비 기업’이 됐다고 보도했다. 2019년 10월에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는 미국, 중국, 일본, 유로존 등 8개국 기업부채 총액 중 40퍼센트가 채무불이행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났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지적했듯이, 불평등 확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달래야 하는 것, 기후 위기 대처, 중국과의 경쟁도 국가 투자 증대의 요인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보고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성급한 일일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이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늘어나는 부채 부담을 마냥 눈감을 수 없다는 지배계급의 압박이 커질 것이다. 정부의 투자 확대는 경제를 부양하는 효과가 일시적으로 있을지라도, 경제 성장의 동인이 되는 이윤율을 끌어올릴 수는 없다. 그래서 조만간 재정 지출 삭감을 위해 복지를 줄이려는 지배계급의 공격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게다가 미국 외의 국가들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재정 지출 확대에 소극적이다.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인 독일을 보면, 향후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긴축재정을 운영할 계획임을 알 수 있다.(그래프2)
한때 신자유주의의 선봉이던 IMF조차 6년 전부터 신자유주의를 비판해 온 것도 신자유주의가 사라지고 있는 사례로 언급된다. 더 최근에 IMF는 재정을 풀 수 있는 국가들은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에 단서를 달았다. “여력이 되는 국가”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IMF는 아르헨티나처럼 외환 위기에 빠진 나라들에게는 여전히 긴축을 강요하고 있다.
여전한 문재인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
특히 한국은 신자유주의가 끝났다고 말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말 이후 신자유주의가 강화됐지만 매우 최근에 그 위세가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표방했고, 지난해에는 케인스주의 정책을 연상시키는 ‘한국판 뉴딜 정책’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집권 후 얼마 되지 않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이 폐기된 데서 보듯 소득주도성장은 말뿐이었다. 오히려 대표적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정책들을 포함하는 ‘혁신성장’에 자리를 내주었다. 2018년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시켰다. 최근에는 사회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동반할 공산이 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판 뉴딜에는 단기·저질 공공 일자리 창출 정책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더 강조된 것은 ‘디지털 뉴딜’을 위한 규제완화 정책이었다. 그린뉴딜 정책에도 재생에너지 육성을 민영화 방식으로 하겠다는 게 포함돼 있다.
문재인 정부는 또한 이전 정부들의 민영화 정책을 사실상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SR(수서발 KTX)과 코레일 통합을 공약했지만, 철도 경쟁 체제를 위해 공약을 폐기했다. 국유화한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넘기며 민영화했고, 아시아나항공이나 쌍용차 등은 매각을 추진 중이다.
심각한 위기 속에서 지난해 재정 지출을 늘리긴 했다. 하지만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매우 소극적인 수준이다(그래프3). 지난해 말에는, 장기적으로 재정적자를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통과시켰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국내외에서 일정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지적했듯이(‘신자유주의는 사라지지 않았고 지배자들에게 득이 된다’, 〈노동자 연대〉 367호),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지배계급에 득이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 비춰 이후를 전망하려면 자본주의가 발전해 온 양상과 그에 대처해 온 지배자들의 정책을 역사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신자유주의 등장의 배경
신자유주의는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1970년대 후반에 도입됐다. 1930년대 대불황 전까지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의 균형을 자연스럽게 유지해 준다는 교리가 주류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가의 경제 개입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 축적(특히 인수·합병을 통한)으로 기업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이렇게 형성된 거대 기업들이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며 국가와 밀접하게 결합되는 경향이 전개된 것이다. 20세기 초의 마르크스주의자 힐퍼딩·부하린·레닌 등은 이런 상황을 독점자본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라고 불렀다.(레닌은 또한 때로 ‘국가적 독점자본주의’나 ‘국가독점적 자본주의’라고도 불렀다. G. 하르다하, 《사회주의 경제이론》, 정명기 옮김, 한마당, 1990)
그러나 1930년대 대불황이 닥쳤을 때 각국 정부가 자유주의적으로 대처하자 불황은 더욱 악화했고, 기업 파산과 실업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자유주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1930년대 대불황에서 빠르게 회복한 나라 하나는 독일인데,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고 전쟁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재편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소련 경제도 급성장하고 있었는데, 소련도 국가가 주도해 자본 축적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일본도 전면적 국가자본주의의 사례인데, 지면 제약으로 설명은 생략하겠다.
미국에서는 1933년부터 루즈벨트 정부가 뉴딜 정책을 쓰며 경기 부양책을 썼다(훨씬 덜 전면적인 형태의 국가자본주의). 이는 일시적으로 효과를 내는 듯했지만, 1937년에는 다시 (더 심각한) 경제 침체로 빠져들었다.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로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던 케인스주의는 실제로는 별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진정한 경제 회복은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대규모 전쟁과 1950~1960년대 대규모 군비지출을 통해서야 가능했다.(관련 기사: ‘뉴딜 정책이 미국을 대불황에서 구했나?’, 이정구, 〈노동자 연대〉 320호)
제2차세계대전 이후 1950~1960년대까지 30년간 호황이 지속되자, 국가 개입이 위기를 피하게 해 준다는 생각이 유행했다. 바로 이런 생각이 오늘날에도 국가가 지출을 확대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에 연결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50~1960년대에는, 적자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케인스주의가 실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요국 각국 정부는 균형재정을 위해 애썼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자본이 대규모로 파괴돼 이윤율이 회복되고, 특히 군비 지출 증대로 막대한 양의 잉여가치가 군비 부문으로 누출되면서 이윤율 저하 경향이 상쇄됐기 때문에 장기 호황이 가능했던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상시적 군사 경제’, 최일붕, 《마르크스21》 32호를 보라)
물론 당시 정부들은 경제에 깊이 개입했는데, 케인스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임금 수준을 올리려 애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하는 데 힘썼다. 이 시기에 서구에서 의료, 교육, 보육, 공공주택, 연금 등의 복지가 확충된 것도 호황이라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제공할 여력이 있었던 데다, 숙련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려는 자본가 계급의 필요도 반영된 것이었다. 복지 확충은 당시의 노동력 부족 시대에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줄여 기업들이 임금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복지 비용의 대부분은 자본가 계급의 이윤에서 나오기보다는 노동계급의 고임금층에서 저임금층으로 흘러간 것이었다.
장기 호황기에 정부는 공공 기반시설도 크게 확대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장기 호황기에 국가 개입이 진보적이었다는 오해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시기에 국가 개입은 호황 상황에 맞춰 자본 축적과 이윤 증대를 더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군비 지출 확대로도 이윤율 하락은 결국 피할 수 없었고 1970년대 초부터 새로운 위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장기 호황기에 기업의 규모는 더욱 커져서 이제 일국을 넘어서서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다국적기업들이 진화했고, 이런 변화는 개별 국가가 경제를 관리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1970년대 경기 침체가 시작되자 각국 정부들은 케인스주의 정책을 실제로 사용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케인스주의 정책들은 (경제는 회복시키지 못하면서) 인플레이션만 일으켰다.
그러자 1976년경부터 지배계급의 대다수는 국가 개입이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보기 시작했다. 국가 간섭은 특히 자유로운 투자를 가로막아 이윤 확대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들이 힘을 얻으며 지배계급 다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복귀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였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윤 회복을 위한 새로운 정책들을 요구했다. 시장 개방, 복지 삭감, 비효율적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규제 완화, 민영화, 법인세 인하 등을 추구했다. 이런 신자유주의 파동에는 노동자 운동에 대한 공격과 노동 착취 강화가 동반됐다. 덕분에 1980~1990년대 이윤율이 부분적으로 상승했다. 게다가 1989~1991년 옛 소련 등 동구권이 몰락하며 시장경제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 확산했다.
신자유주의의 위기
그러나 신자유주의 덕분에 이윤(율)을 회복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정부는 망하기에는 너무 커져 버린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경제에 개입해야 했다.(대마불사)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표방한 이데올로기와 달리 실제 정부의 정책 일관성은 없었다.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시기에도 경제 위기가 닥치면 국가의 재정 지출은 크게 늘었다. 특히, 2008~2009년 공황과 팬데믹이 닥친 지난해 경기침체 상황에서 국가가 나서서 기업들을 살리자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두드러졌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자들 내에서도 신자유주의가 경제를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확신도 줄어들고 있다. 반면 경제도 살리지 못한 채 착취만 강화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커지자, 일부 지배자들은 이런 불만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프랑스나 영국 같은 일부 나라에서는 정부 탄압이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앞서 설명했듯이 이런저런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불황기에 자본가들의 이윤(율)을 회복시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가령 트럼프 등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이용해 보호무역 정책들과, 이주민을 속죄양 삼는 선동을 강화해 왔고 신자유주의 정책 중 자유무역은 다소 공격했지만, 법인세 감세, 민영화, 규제완화 등과 같은 정책을 계속 추진했다.
바이든은 트럼프보다는 자유무역을 강조하지만, 더 공격적인 확장 재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의 위기에 대처해 케인스주의가 대안이 되지 못했듯이, 바이든의 정책도 경제를 살리지는 못할 것이다. 이윤율 회복을 위해서는 자본의 대량 파괴(대규모 산업구조조정과 대규모 인수·합병 등을 통한)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늘어나는 부채 위기 속에 노동자들의 임금과 일자리, 복지 등을 공격해야 한다는 자본가 계급의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급에게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환영할 만하다. 노동자들은 국가가 나서서 일자리, 임금, 복지 확대 등을 하라고 요구하고, 부도 기업은 국유화해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라고 요구하며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 개입이 늘어나면 경제가 회복되고 자본주의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는 장기적인 이윤율 하락이라는 체제적·구조적 문제로 지속적 침체를 겪고 있다.(그래프4) 국가 개입을 강화한다고 해서 추세적으로 낮아지는 이윤율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이윤 체제를 유지하는 한 결국 노동자들을 공격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기가 불가능하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진정한 대안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 강화를 통해 국가와 자본을 공격하는 것이어야 하지, 국가를 이용해 사회 체제와 구조를 재편하려 헛되이 애쓰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