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 확대 저지! ― “보완책” 꼼수를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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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정의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이 커다란 반발을 사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친기업 우경화 행보에 대한 분노의 초점으로 부상했다.
11월 10일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6만여 명이 광화문 인근을 가득 메우고 분노와 투지를 보여 준 데 이어, 17일 한국노총 노동자대회도 수만 명이 참가해 정부를 규탄했다. 21일 민주노총의 파업·총력투쟁에서도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가 핵심 요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주노총 지도자들 내 일부에서 ‘지금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에 참가할 때가 아니다’ 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전체 노동자를 향한 공격
탄력근로제 확대가 노동자들에게 뜻하는 바는 ‘노동시간 늘리고 임금 깎고 노동강도 올리기’로 요약할 수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6개월 혹은 1년으로 늘어나면, 노동자들은 각각 3개월, 6개월 연속 주당 최대 64시간을 일하게 될 수 있다. 아직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는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주당 80시간 노동까지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육체·정신 건강이 피폐해지고 여가·정치활동의 여유를 갖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연장근무 수당을 못 받기 때문에 임금 손실도 크다. 시급 1만 원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단위 기간이 6개월로 늘어나면 평균 78만 원, 1년으로 늘어나면 156만 원의 임금이 깎인다.(양대 노총)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일정 기간은 임금 수준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생계를 꾸려 나가기가 불안정해지는 문제도 생긴다.
사용자들이 유연하게 인력·시간을 배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노동강도 강화, 교대제 개악, 저임금·단기 비정규직 확대로도 이어진다.
특히 무노조·중소영세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현행법상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려면 노조와의 합의(과반 노조나 노동자 대표)가 필요한데, 노조의 보호막이 없으면 공격을 막아 내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취약 계층을 위한다’던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유노조·대기업 노동자들이라고 안전한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노총이나 정의당 일각에서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피해를 두드러지게 강조하지만, 상황이 그렇지만은 않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협상력이 강한 조직 노동자들도 겨냥하고 있다. 예컨대, 금속노조의 주축인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 업계나 현대중공업 사측이 탄력근로제 확대를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철도 등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이미 탄력근로제가 도입·시행되고 있다. 올 들어서도 공공기관 곳곳에서 교대제 개악, 탄력근로제 도입 시도가 이어졌다.
정부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로 더 많은 공공기관과 민간부문에서 제도 활용도를 높이고자 한다. 재계는 아예 노조와 합의 없이 개별 노동자 동의만으로 탄력근로제를 시행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자고까지 주장한다.
요컨대, 탄력근로 확대 공격은 노동자 일부만이 아니라 모두를 향하고 있다. 경기 불황 시기에 기업주들의 비용 부담을 줄여 주고 노동자들을 더 효과적으로 쥐어짤 수 있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보완책”이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한편, 노동계와의 타협을 끌어내기 위한 술책으로 꼼수 방안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민주당 원내대표 홍영표가 말한 시기 조절이 그중 하나다. 홍영표는 최근 “내년 2월까지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경사노위 논의를 기다려 보고 안 되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대화 모양새를 취해 ‘일방 추진’이라는 비난을 피하고 민주노총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탄력근로제 확대라는 입장에는 전혀 변함이 없는데다 시한을 못박고 합의를 압박하는 것이어서 진정으로 대화하겠다는 자세가 결코 아니다.
게다가 ‘연내 법 개악 강행’이라는 정부 방침이나 여야정 합의가 공식 변경된 것도 아니므로 연내 처리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기간 연장과 함께 “보완책”들도 내놓고 있다. 노동부 장관 이재갑이나 홍영표의 말을 종합해 보면, 정부·여당은 탄력근로를 확대하는 대신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보장, 일정 단위 기간(주·월 단위)의 노동시간 상한선 설정, 일정 시간 이상의 초과 노동에 대한 수당 보전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은 노동자들이 겪을 고통을 진정으로 경감시키지 못한다. 예컨대,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도입하더라도 하루 12시간 이상 초과 노동이 허용된다. 만성과로 인정 기준인 12주 연속 주당 60시간 초과 노동을 규제할 수도 없다.
노동시간 상한선이나 일정 시간 이상의 연장수당 보전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 뻔하다. 탄력근로제 확대의 목적 자체가 노동시간 늘리고 임금 깎는 데 있기 때문에 설사 도입하더라도 생색내기 수준에 그칠 것이다. 사용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시늉만 하다 말 공산도 크다. 일부 언론들조차 “정부가 구속력 있는 임금 보전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고 지적할 정도다.
탄력근로제 확대를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제기되는데, 이는 장시간 노동에 놓인 노동자들의 고통을 방치하는 효과만 낼 것이다. 지금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업종은 건설, 조선업 시운전, 방송·영화, IT 등 장시간 노동 문제가 이미 심각한 부문이다.
결국 정부는 이런 꼼수 방안들로 노동계를 사회적 대화로 묶어두어 투쟁을 자제시키고 탄력근로제 확대를 관철하려 한다.
사회적 대화 활용론의 위험성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면서도 사회적 대화를 중요한 ‘개입’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일부 중앙집행위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탄력근로제 개악 대응 방침으로 사회적 대화기구 활용을 포함했다.
정부가 강경하게 개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이런 태도는 헛되게 시간만 버리면서 노동자들의 투지를 흐트러뜨리는 악효과를 낼 수 있다. 더구나 불필요한 양보책을 조율하는 것으로 나아갈 위험마저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 집행부 일각에서는 “사용자의 시간 이익”과 “노동자의 소득·건강권 확보”가 균형(타협)을 이뤄야 한다거나, 하루 12시간 초과 노동 규제, 임금 보전 방안 등의 양보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1년 단위 기간의 탄력근로제가 정착돼 있는 유럽, 일본, 미국 등의 경험은 보완책이 노동자들의 고통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예컨대, 독일 금속노조 등은 1일 10시간 노동 상한, 일부 임금 보전 등을 약속 받는 대신 탄력근로제를 수용했다. 그러나 이런 양보책은 조건 하락을 막지 못했다. 유연근무제의 확산은 주당 노동시간을 늘리는 결과를 내고, 파견 확대 등과 결합돼 오늘날 독일 노동자의 4분의 1이 저임금층으로 추락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런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노동자들의 임금·조건을 지키고 노동시간을 줄이려면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를 위해 단호하게 투쟁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조직 노동자들은 개악 추진에 제동을 걸 힘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노가 확대되고 있는 지금은 싸워 볼 만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