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차 일자리위원회의 알맹이 없는 일자리 창출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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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위원회가 12월 14일 9차 회의를 열고, ① 사회서비스원 설립 운영방안, ② 의료 질 향상을 위한 보건의료 일자리 창출방안, ③ 지역일자리 사업의 지역자율성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를 얼핏 보면 꽤 개혁적인 일자리 창출 방안이 나온 듯한 인상을 준다. 보건의료인력 특별법이나 시도별 사회서비스원 설립 의무화 등이 언급돼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보건의료노조가 요구해 온 것이고, 후자는 공공운수노조 등이 최근 ‘최소한’의 조처로 요구해 온 것인데 이를 전문위원 다수 의견으로 명시했다.
또,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위 방안들이 의결된 것도 꽤 개혁적인 일자리 방안이 도출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데 한몫했다. 사회적 합의의 효과인 것이다.
그러나 위 방안들의 내용을 뜯어 보면 진전된 알맹이 없이 기존 발표들을 재탕한 수준인데다, 그런 내용조차 실행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일자리위원회의 합의 결과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 내놓은 정책들에 예산이나 재원도 분명히 반영돼 있지 않다.
즉, 실제 시행되려면 어차피 정부 부처의 결정이나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하는데, 최근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 — 민영화, 규제 완화, 최저임금 인상 속도 완화,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 확대 등 — 에 비춰 볼 때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회서비스원 설립 운영 방안 - 대폭 후퇴한 정책 그대로
공공인프라를 확충하고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문재인의 대선 공약은 누더기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번 발표는 가장 후퇴한 최근의 안을 그대로 반복했다.
첫째, 일자리 창출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 사회서비스공단으로 일자리 17만 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6만 3000명만 고용할 계획이다. 그런데 당장 내년에 시행하는 시범사업으로 몇 명을 고용할지 계획도 없다. 시범사업 예산도 애초 계획보다 8억 원 삭감됐다.
둘째, 민간 위탁 시설은 그대로 유지되고 신규 국공립시설과 위·불법 발생, 평가 결과가 저조한 시설만 사회서비스원에 포함된다.
신규 국공립시설 확충 규모도 부족하다. 그조차 중앙정부의 지원 비율이 절반밖에 되지 않아 지방정부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투자를 미루면 실제 국공립 보육시설이 얼마나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이미 국공립 보육시설 신축은 예정보다 한참 늦춰지고 있다.
셋째, 사회서비스원은 추가 재정 지원 없이 현행 수가 등 자체 수입으로 운영하고, 운영 효율화를 통해 절감된 비용으로 처우 개선을 추진한다. 사실상 민간 운영 방식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하겠다는 경영실적과 업무성과 평가 등은 수익성 압박을 더욱 부추겨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것이다. 사회서비스원에 고용된 노동자 임금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표준임금제를 도입하고 직무급제와 연관시키려 한다.
이런 이유로 일부 노동자들은 “도대체 민간 위탁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하고 불만을 토로한다.
문재인 정부는 좋은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늘리고 서비스 질을 향상시킬 의지가 없다.
보건의료 일자리 창출 방안 —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의료 질 향상을 위한 보건의료 일자리 창출 방안’은 종이가 아까울 정도로 내용이 없다. 알맹이가 없다고 평가받은 기존 정책들을 나열하거나, 심지어 보건의료 일자리와 별 관계없는 정책도 늘어놓았다. 예컨대 금연구역을 확대하고 퇴직경찰 등을 금연지도원으로 충원하는 계획을 보건의료 일자리 창출 방안에 담아 놓은 것을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간호사 인력 대책은 올해 3월에 발표한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대책’을 재탕한 수준이다. 당시 본지는 물론 보건의료노조, 의료연대본부 등도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한 바 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나 호스피스서비스 확대 등은 보호자나 보호자가 고용한 간병인 없이 간호사와 간호보조인력만으로 환자를 돌보는 제도로, 의료 서비스도 개선하고 일자리도 늘리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 서비스들이 환자와 노동자들에게 모두 도움이 되려면 인력이 충분히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현재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간호인력 기준이 너무 낮아 오히려 노동강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민간 병원이 압도적(95퍼센트)인 한국에서, 이를 강제할 인력 기준 등도 마련하지 않은 채 인력을 늘리겠다는 약속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오히려 정부는 영리병원 허용, 원격의료 추진, 제약·의료기기 임상시험 완화 등 의료 영리화로 나아가고 있다.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에 비해 고용 규모가 적다는 것은 비교적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그동안 보건의료노조가 요구해 온 ‘보건의료인력 특별법’이 거론된 것 정도이다. 보건의료인력 특별법은 정부가 병원의 인력 기준을 정하고 일정하게 규제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조차 보건의료인력 전담기구 마련 “검토”라고 해,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 뒀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조차 다수가 이 법에 동의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자신들이 추진하는 의료 영리화와 정면 충돌하는 조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되는 동안 한 차례도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에서조차 논의된 적이 없다. 두 주류 정당이 의도적으로 배제해 온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와 의료연대본부 등 병원 노동조합이 투쟁 기조를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