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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조 집행부, 이 와중에 외주화 합의라니!

지난 12월 11일, 기아차 사측과 노조 집행부가 피디아이 방청 공정을 외주화 하기로 합의했다. 화성·소하리 공장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광주 공장에서는 내년 말까지 외주화를 완료하겠다고 한다.

자동차 제조업에서 방청 공정은 독한 유기용제를 이용해 금속 표면에 부식을 방지하는 작업으로, 심각한 유해업무에 해당한다. 그런 만큼 마땅히 원청의 직접 책임하에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기아차에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년 이상 이곳에서 일해 왔는데, 현재 화성 공장에만 50여 명 정도 된다. 이들을 즉각 정규직으로 전환해 안전을 기하고, 임금·노동조건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 이 공정은 이미 불법파견 판결도 받았다. 법원이 1, 2심 모두 정규직 공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기아차지부 강상호 집행부는 이 노동자들을 지금이라도 전원 정규직 전환하라고 요구하며 투쟁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공정 외주화를 합의했다. 그렇게 되면, 이 일은 공장 밖(바로 인근)으로 빠져 나가고 온전히 하청업체(혹은 하청의 하청업체)에 넘겨지게 된다. 노동자들은 법원 판결까지 받고도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평생 비정규직 신세에 몰리게 된다.

사측과 노조 집행부가 외주화 합의를 하면서 댄 이유도 참 가관이다. ‘지역민의 민원 해소와 종업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서라고 한다.

이게 웬 황당한 얘기인가. 유해 공정을 외주화하면, 영세한 기업이 최저가 입찰을 받거나 또 그 기업이 재하청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청 사용자의 책임 회피 속에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유해물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지역 환경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김용균을 만들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외주화를 통한 ‘종업원의 건강권’ 운운하는 것은 완전히 눈가리고 아옹 하는 것이다. 기아차 사측이 일은 다 맡기면서, 그 일을 하는 노동자가 안전·건강을 위협 받아도 그저 형식적으로 기아차 종업원만 아니면 된다는 것인가?

이번 합의는 사측에게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책임을 면할 수 있게 해 준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고용불안을 안긴 것이기도 하다. 외주화 과정에서 공정 축소(해고)나 전환 배치가 벌어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합의는 고(故) 김용균 씨의 사망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지는 시점에서 이뤄졌다. 강상호 집행부는 외주화 중단,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항의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운 것인가? 이번 합의는 특별히 더 퇴행적이다.

그동안 기아차를 비롯해 곳곳의 작업장에서 노조 지도자들은 야금야금 시도되는 사측의 외주화 공격에 자주 타협해 왔다. 적잖은 활동가들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여기거나, 한 번만 눈을 질끔 감자며 그것을 수용하거나 침묵하곤 했다.

그러나 작은 구멍 하나가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는 지렛대가 되고, 그것이 결국 큰 구멍을 만들어 댐을 무너뜨릴 수 있다. 현대·기아차 사측은 지난 몇 년간 외주화를 확대해 왔다. 이번 외주화 합의를 그냥 보아넘긴다면 엔진을 비롯한 파워트레인 부문 외주화를 막기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활동가들은 더이상 외주화와 공정 축소가 낳을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침묵해선 안 된다. 집행부의 배신적 타협을 비판하고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비정규직지회도 외주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조합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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