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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문재인 정부와 노동운동, 그리고 좌파의 과제

이 글은 22개 좌파 노동단체가 2019년 1월 13일 공동 주최한 ‘2019 문재인 정부와 노동운동의 과제’ 토론회에 김하영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조직노동자운동 팀장)이 제출한 발제문이다. 이 글의 축약본을 보려면 ‘경사노위 참가가 아니라 대정부 투쟁을 해야 한다’를 클릭 하시오.

1. 2019년 한국 경제의 주변환경

2019년 세계경제 전망은 상당히 어둡다. 지난 몇 년간 잘나가는 것으로 인식됐던 미국 경제를 포함해 주요국들의 경제 성장률이 하강하고 있다. 최근 얼마 동안의 미국 경제 회복이 본격적인 상승 전환이 아니고 일시적인 반등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침체 속에서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각국 정부들이 경기를 부양하려고 이런저런 정책을 썼지만 효과가 없었다. 세계적인 이윤율이 회복되지 못한 탓에, 경기가 일시적으로 나아지는 듯하다가도 침체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또, 낮은 이윤율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저금리 같은 경기부양책으로) 부채를 증대시킨 결과, 세계경제의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 신흥국 위기와 금융 불안정: 저금리 상황에서 부채가 증대해 온 신흥국들은 세계경제 둔화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더 격심한 외환 위기를 연쇄적으로 겪을 수 있다. 1997년에도 타이 바트화 폭락을 시작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현재 터키, 아르헨티나, 브라질, 남아공, 인도 등이 위험국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위기가 벌어진다면 그것은 단지 신흥국들에서 끝나지 않고 신흥국에 돈을 빌려준 선진국으로 번질 수 있다.

2)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경착륙 우려: 중국 경제가 급속히 둔화하고 있다. 1월 6일자 〈뉴욕타임스〉는 “글로벌 경제의 고통이 중국에서 무르익고 있다”고 했다. 중국 경제가 더는 세계경제를 떠받치는 활력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중국의 막대한 부채는 세계경제의 위험 요인의 하나다. 중국 부채는 지난 15년간 15배로 증가했다. 지난해 부채 감축을 시도했던 중국은 성장이 둔화하자 다시 돈을 풀고 있는데, 이는 모순을 키울 뿐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이 급락할 경우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

3) 미중 무역전쟁: 이번 세계 경기 하강 속에서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더 격화될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무역 협정을 재조정하고 있는데, 일종의 ‘근린궁핍화(이웃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이다. 다른 나라 경제의 희생 위에서 자국 번영을 도모하는 것으로, 낮아진 세계적 이윤율 속에서 조금이라도 이윤을 더 차지하려는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트럼프의 대중 무역전쟁은 단지 무역적자 해소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첨단산업 성장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중국 정부의 산업 정책(“중국제조 2025”)을 중단하라는 요구이다. 그러나 첨단산업의 경제적 의미로 보나 군사적 의미로 보나 중국 정부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미국 정계에서도 이참에 중국 경제에 타격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하므로 미중 무역전쟁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전통적인 동맹국들인 독일·일본·한국 등도 향하고 있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이 미국을 “등처먹는다”고 비난한다. 미국의 제일 강대국 지위를 지키려는 트럼프 정부의 무역전쟁은 경제적 경쟁뿐 아니라 지정학적인 갈등과 불안정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계속 전진할 것이라는 전망은 희망이 앞선 관측일 것 같다. 북미관계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과 불안정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문재인 정부의 친기업 본색과 노동 배신 드러나다

위에서 보았듯이, 세계경제 상황의 악화는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부터 투자가 급감하고 고용 사정이 나빠졌고, 올해 경제성장률은 하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위에서 다룬 세계경제 불안정화 요인들은 하나같이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로 미국과 중국으로의 수출에 크게 의존해 온 한국 경제는 미국 경제와 중국 경제 모두의 둔화, 중·미 간 무역 갈등의 심화 등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가 수입 자동차에 25퍼센트 관세 폭탄을 부과하거나, 신흥국들이 더 심각한 연쇄 외환위기에 빠지거나,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는 경우에 한국 경제가 입을 타격은 막대할 것이다.

이처럼 성장률이 둔화하고 고용 상황이 악화한 데다 경제 전망이 어두워지자 문재인 정부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기업 투자에 도움을 주려고 친기업 행보를 더 노골화했다. 지난해 9월, 민주당 스스로 박근혜 정부의 적폐이자 ‘대기업 청부 입법’이라 불렀던 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켰다. 10월에는 〈최근 고용·경제 상황에 따른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에서 기업들에 금융·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2019년 경제 정책 방향〉에서도 경제 활력을 위한 기업 지원을 거듭 밝혔고, 2019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연설에서도 이 점을 재확인했다. 혁신, 4차 산업혁명, 신산업 육성 등이 규제 완화의 명분이 되고 있다.

“노동 존중” 하겠다며 제시했던 노동정책들은 후퇴했거나, 실체가 드러나면서 실망과 배신감을 줬다.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폐기를 선언하고, 산입범위 확대 법제화부터 결정구조 이원화까지 개악을 거듭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전환 제외, 자회사 상용직 전환 방식, 전환자 노동조건 개선 미비 등으로 엄청난 불만과 만만치 않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노동기본권 문제조차 문재인 정부 3분의 1이 지나도록 전혀 진척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그럴듯한 말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이 지난 반년 새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드러났다.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실상은 문재인 정부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 줬다. 제조업 구조조정은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기는커녕 기업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괜찮은 일자리에서 쫓아내고 있음을 보여 줬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설파했지만, 소비 증가가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이론이 틀렸음은 제쳐두고라도(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과소소비 때문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이윤율 하락 경향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소득을 전혀 증대시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말이 아니라) 실천은 기업 투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포용”, “공정”의 대상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지, 노동자들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자본주의 축적의 특정 형태, 즉 박정희식 개발독재에서 찾으면서 재벌개혁과 공정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비재벌 기업들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가 재벌에 덜 친화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라는 축적 법칙 때문에 자본주의 정부는 친대기업으로 기울게 돼 있다. 김대중 정부도 벤처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했지만, 도도한 실제 흐름은 자본의 대규모화였다.

3. 올해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 거세질 것

한국 자본주의를 효율화하려는 문재인 정부는 특히 지금처럼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개혁을 제공하기 어렵고 그럴 의사도 없다.

최근 의료영리화나 민영화 추진 뜻을 밝히고, 국민연금 개악안을 내놓은 것에서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 양극화를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 문제로 치환하면서 저임금 해소, 사회안전망 구축, 일자리 창출의 재원 마련을 명분으로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강요하려 한다. 낮은 수익성에 직면한 사용자들은 임금 억제, 노동비용 감소를 무엇보다 바란다.

2019년에는 이런 정책들이 더 본격화할 것이다. 최저임금 후퇴에 이어 임금체계 개편이 예고되고 있다. 직무급 중심의 공공기관 보수체계 전환이 그것이다. 직무급제 도입의 주된 목적은 연공에 따라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호봉제를 없애 임금 상승 폭을 제한하는 것이다. 직무급제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차별 시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다. 무기계약직이 된 노동자들은 대부분 정규직과 똑같은 호봉제를 원한다.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무기계약직 전환자에 적용되는 직무급제(임금표준모델)를 서둘려 마련한 것은 기존 정규직과 같은 임금 인상을 꿈도 꾸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광주형 일자리는 임금 격차 해소 방안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있지만, 저질 일자리이자 임금 공격 모델이다. 기존 완성차 노동자 임금의 절반을 주고 소형차 생산 공장을 돌린다는 계획으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떨어뜨리려는 정책이다. 올해 정부는 탄력근로제 적용 단위기간의 확장을 추진하려 하는데, 이는 장시간 노동체제의 연장인 동시에 임금 삭감 공격이기도 하다. 한국노총은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 실질임금이 약 7퍼센트 감소한다고 계산했다(노동정책이슈페이퍼, 2018. 11. 16).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불만을 자아낼 만한 위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사회적 대화와 다양한 수준의 교섭에 그들을 참여시켜, 불충분한 개혁 또는 개악에 합의를 이끌어 내어 정당성을 확보하고, 노동자들이 반발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구상이 아직까지 성공적이지 못했음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에 아직 민주노총을 참가시키지 못한 데서 잘 드러난다. 물론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지난해 9월 정책대대 유회 이후에도 경사노위 참가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고, 이 의지는 집요할 것이라고 봐야 한다.

4. 민주노총 집행부가 내놓은 사회대개혁 프로그램의 문제점

촛불 덕분에 집권한 문재인이 촛불의 진보개혁 염원을 저버리면서 그의 지지율은 1년 반만에 두 동강 났다. 그러자 우파가 사기를 회복했고, 공식 정치 영역에서 우파 정당들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은 진보 염원 정서를 가지고 있는 대중에게 당혹감을 주고 있고,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이를 이용해, 자신에 대한 불만을 여야 대결 프레임 안으로 흡수하려 들고 있다. 그러나 애초 문재인 지지율 하락이 진보 염원을 저버린 탓임을 생각하면, 문재인 정부를 우파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중을 무장해제 시키는 일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추락하면서 공식 정치 영역에서 우파 정당들이 수혜를 얻고 있지만, 이것이 정치 현실의 전부는 아니다. 진정한 개혁을 제공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증가하고 그중 일부는 투쟁에 나섰다. 특히, 지난해 여름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해 적잖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는 등 노동운동의 회복 탄력성을 보여 주고 있다. 박근혜 퇴진 투쟁을 통해 우파 정권을 무너뜨린 경험 덕분에, 노동자들은 문재인의 배신에도 사기 저하되지 않고 저항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좌파들은 문재인을 유보 없이 비판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대하려 해야 한다. 우파가 반사이익을 얻을까 봐 노동운동이 문재인 비판을 삼간다면 오히려 우파의 사기 진작을 도울 뿐이다. 노동운동이 문재인을 독자적으로 비판하고 그에 맞서 싸워야 문재인 지지 이탈층의 다수라는 20대 청년층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가 2019년 계획으로 내놓은 방향은 문재인 정부와 협력(개입)해 사회대개혁을 이룬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사업장 수준의 경제 쟁점에만 관심을 갖지 않고 사회와 국가 수준의 변화를 위해 나선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추구하는 변화(사회대개혁)의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수단으로 그것을 쟁취하느냐다. 김명환 집행부는 이렇게 주장한다. “한국사회 대개혁 과제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과제와 부분적으로 공존한다.” 또, “민주주의 진전 및 한반도 평화체제 진입 과제도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와 부분적으로 공존한다.” 복지, 민주주의, 평화 문제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재벌체제 개혁”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진보 포퓰리즘, 즉 민중주의의 개혁 프로그램이다. 그 요체는 민주주의, 한반도 평화, 반재벌(반독점)을 목표로 한줌밖에 안 되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모든 계급·계층의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요즘 말로는 ‘을들의 연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급을 가로지르는 국민적 연합은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이익을 그 연합에 종속시킨다. 그리하여 아래로부터의 투쟁적 노동운동을 마비시키기 십상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노동자들과 중소상공인 간의 이해 갈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직후 김대중 정부가 좌파적·전투적 노동운동을 억제한 전략도 민중주의였다.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사회대개혁을 위한 광범한 연대를 추동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체 운동이 “[문재인]정부에 대한 기대냐 규탄이냐를 넘어” 한국사회 대개혁 실천 전략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부에 기대와 규탄을 모호하게 흐리는 것은 운동을 확대하는 데 장애가 된다. 온건한 개혁운동가들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부의 공격에 대한 광범한 저항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 경향이 있다. 민주노총의 사회대개혁 안을 (문재인 정부를 사실상 지지하고 있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만든다는 계획도 마찬가지로 문제다.

5. 경사노위 참가: 소심하고 결함투성이인 전략

김명환 집행부는 또한, “방관보다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면서 경사노위 참가를 강조한다. 대안을 제시해서 문재인 정부를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를 대화 테이블에서 설득해서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위에서 봤듯이, 문재인 정부는 규제완화나 탄력근로제 추진 등에 확고한 본성과 의지가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압도적인 힘으로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김명환 집행부는 그동안 노동운동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저지)투쟁 또는 규탄투쟁”만 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쟁이 필요한 수준에 못 미치며 불충분했던 게 문제이지, 그 반대는 아니었다.

가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자회사 방안이나 최저임금 개악 문제를 보자. 문재인 정부가 자회사 방안을 강력하게 고수하는 상황에서 이를 저지하려면 단위노조 차원의 투쟁에 내맡기지 말고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으로 확대돼야 했다. 노조 지도자들이 이렇게 하지 않고 잡월드 투쟁을 경사노위 중재에 의존한 것은 문제였다. 그런데도 ‘투쟁해 봤자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이다. 게다가 ‘자회사 방안 반대’가 대안 없음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직접 고용이 대안이기 때문이다. ‘자회사 방안 반대’를 대안 부재로 본다면, 그것은 자회사 방안을 일단 수용하고 어떤 자회사인가를 협상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민주노총은 ‘좋은 자회사 방안’에 관해 노정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 개악 저지도 대안 부재가 문제는 아니었다. 최저임금 1만 원은 문재인 후보는 물론 우파 야당들조차 공약한 정책이었다.

김명환 집행부는 경사노위를 산업 정책 등 정부 정책에 개입해 사회대개혁을 이루는 수단으로 본다. 김명환 위원장은 경사노위가 양보 압박을 목적으로 했던 옛 노사정위와는 다르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국내외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정부가 친기업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는 지금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국제적 경험을 봐도 사회적 협약이 체결되게 하는 추진력은 언제나 경제 위기였다. 그런 때 정부는 임금과 복지 삭감 등 인기 없는 정책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고자 사회적 대화를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도 사회적 대화의 추진 목적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내 왔다. 경제 위기에 직면한 한국 자본주의를 (생산성과 효율 지향적으로) 개혁하는 데 노동자들이 협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첫째, 임금억제 등 조건 삭감 양보를 얻어내려 한다. 둘째, 노사갈등을 줄이고 ‘산업 평화’를 이루고자 한다. 실제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임금 수준이 오르면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할 국면이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도 “임금 스펙트럼 가운데 중간 어디쯤으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또, 그는 “노사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공멸”한다면서 계급협조주의를 촉구했다.

국제적으로 보자면, 특히 그 출생지인 유럽에서 사회적 협약은 쇠퇴하고 있다. 1970~80년대에는 노동조합이 협력한 대가로 알량하게나마 복지가 제공됐지만, 1990년대 들어 점점 일방적 양보만 강요됐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협력한 대가가 공공정책 결정에 (별로 영향도 못 미치며) 참여하는 것 정도인 경우도 있었다. 2010년 유로존 재정 위기 이후로는 이마저 후퇴했다.

그래서 보수적 개혁을 추구하는 국제노동기구(ILO)의 〈ILO보고서〉(2018. 10)조차 이렇게 조언할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사회적 협약 체결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대신 조직이나 노동자의 이익과 권리를 방어하는 기본적인 노사관계 업무에 그들의 에너지와 자원을 집중시키는 것이 차라리 현명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 회복을 위해 친기업·반노동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고, 2월 탄력근로제 강행마저 예고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마땅히 경사노위 불참을 결정하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런 개악이 예고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한다면, 설사 김명환 지도부가 투쟁-대화 병행론에 따라 투쟁 계획을 내놓아도 그 목적이 협상을 위한 압박용임을 아는 조합원들은 투쟁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협상 중인 지도부는 투쟁이 자기 통제 하에 있기를 바라고, 자기 운신의 폭이 줄어들까 봐 대중의 독자적인 운동을 자제시키는 경향이 있다.

민주노총의 일부 중앙집행위원들은 경사노위 조건부 참가를 주장하기도 한다. 탄력근로제 추진 중단, 최저임금 개악 중단, ILO 핵심협약 비준 등이 그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문제 등은 지난 수개월 동안 경사노위 참여 판단의 기준으로 언급돼 왔지만, 바로 그 기간에 문재인 정부는 이를 완전히 무시하며 보란듯이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관련 개악을 거듭해 왔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개악과 탄력근로제 강행 입장이 확고한 상황에서, 경사노위 참가를 대가로 개악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완전히 무망한 일이다.

게다가 조건부 참가론은 지도부가 싸우겠다는 것인지 경사노위에 들어가려는 것인지 모호해서 노동자들에게 혼란을 줄 뿐이다. 김명환 위원장도 처음에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의 잣대로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노동시간)을 제시했지만, 둘 모두 누더기가 된 상황에서도 노사정대표자회의로 직진했었다.

한편, 문재인 정부와 경사노위는 민주노총의 조건부 참가 입장을 이용해 온갖 책략을 부리면서 노동운동 진영에 혼란과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혼란은 탄력근로제 개악 등에 맞서 싸워야 할 때 시간을 허비하는 나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불참을 결정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경사노위에 들어가지 않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투쟁을 해서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다. 경사노위 바깥에서 뒷짐지고 있는다면 사회적 대화를 내세운 개악을 막을 수 없다. 우리 좌파들은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탄력근로제 등 개악에 맞서) 투쟁을 명령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6. 노동운동의 전진을 위한 좌파의 몫

앞서 지적했듯이, 노동운동은 회복 탄력성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얻은 자신감 덕분에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절망하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경제 위기가 악화하는 조건에서도 올해 노동자 투쟁이 꽤 역동적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 좌파는 (위에서 다룬 것 외에) 노동자 운동이 전진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구실을 해야 한다.

첫째, 우리 좌파는 문재인 정부와 협력(또는 타협)해 사회 개혁을 이룬다는 전략의 비현실성과 치명적 약점을 드러내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가령, 운동 내 온건파 지도자들이 개별 투쟁들을 문재인 정부에 대한 광범한 저항으로 발전시키지 않으려는 것에 맞서서 그런 확대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임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좌파는 온건파 지도자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 운동을 크게 키울 뿐 아니라 좌파의 방법이 더 효과적임을 보여 줘야 한다. 단지 온건파들의 배신과 비효과적 전략을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지도와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대중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

또, 반재벌, 한반도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계급을 가로질러 동맹을 추구하는 민중주의에 대해서도 좌파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 경제의 문제를 자본주의의 특정 조직 형태(재벌체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서 찾는 반자본주의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고, 한반도 불안정을 미국과 중국 간 제국주의적 갈등 문제로 보는 반제국주의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을 통한 개혁)에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노동자들이 단순히 급진적 노동조합주의로 기울지 않고 좌파적 정치 대안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온건파들은 기업 수준의 경제적 이슈와 사회 대개혁과 관련된 정치적 이슈를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우리 좌파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불만을 정치적 이슈와 연결시켜야 하고, 정치 투쟁에서도 노동자들이 경제 투쟁에서 사용하는 산업적 힘(파업)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주장해야 한다.

둘째, 우리 좌파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조건 방어에 일관되게 나서야 한다. 올해, 특히 조선소나 자동차 부품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직면할 수 있다. 이미 지난해에도 GM 군산공장 폐쇄와 조선업 구조조정이 있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을 강요하며 노동자들을 내쫓고 임금을 삭감했다. 경사노위가 중재한 ‘성동조선해양 상생 협약’은 2년반 무급휴직에 더해 인수합병과 경영정상화를 위해 협력한다는 거의 백지 위임에 가까운 희생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했다.

지난해 구조조정 투쟁에서 민주노총과 산하 노조들의 대응은 너무 미흡했다. 민주노총은 ‘좀더 지켜보자’면서 정부에 맞선 투쟁을 피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직면한 경우, 노동운동 좌파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안은 정부가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 재정지출을 하라는 것이다. 공장폐쇄나 대량해고가 예고될 때는 일자리 보호를 위해 해당 기업의 국유화를 요구해야 한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퍼뜨린 대표적인 거짓말이다. 실제로, 많은 정부들이 전면적인 불황을 막고자 경제에 개입했고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원했다. 이런 돈을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쓰라고 해야 한다.

셋째, 우리 좌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도 방어해야 한다. 노동운동 내 온건파들은 민간부문 정규직 노동자들, 공공부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이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임금도 높다며, 이들의 노동조건 방어 노력은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한다. 또, 이런 투쟁은 임금 격차만 증대시킬 수 있다면서 오히려 격차 축소를 위한 요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심지어 임금을 양보하고 노동이사제나 경영 참가를 얻는 게 낫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수당 공격과 임금체계 개편), 탄력근로제 확대 같은 공격에 직면해 있다. 만일 대공장 정규직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자기 조건을 방어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본다면, 기업과 정부의 각종 삭감 공격을 방관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부문 정규직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삭감 공격이 성공하면, 계급간 세력관계가 불리해져서 다른 노동자들도 공격받기가 더 쉽다.

기업과 정부는 대공장 정규직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임금 양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공무원의 낮은 기본급 인상률(2.6%)을 근거로 교육청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거부했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말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임금 격차 해소 방안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있지만,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임금 삭감 정책일 뿐이다. 노동계급의 가장 잘 조직된 부분들이 양보를 강요받으면서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면, 나머지 노동자들이 그렇게 하기는 더 어렵다. ILO가 지적했듯이, 정규직의 ‘과보호’가 공격받은 곳에서는 한결같이 비정규직의 처지도 더 어려워졌다.

노동운동 좌파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방어하기 위해 싸우고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우리 좌파는 조직 노동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의 연대를 중시해야 한다. 남녀 노동계급의 단결, 성소수자 방어, 이주노동자와 난민 방어 등이 그것이다.

지난해 몰카에 항의하는 대규모 여성 시위(불편한용기)가 벌어졌다. 조직 노동운동은 여성차별에 대한 분노에 공감해 이런 운동을 지지하고, 노동조합 안에서도 임금 차별, 보육시설 제공 등이 의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급진적 페미니즘이 대유행을 하면서 노동운동 안에서도 ‘여성 대 남성’ 젠더 이분법이 지배적인 경향이 됐다. 노동운동 좌파는 여성 차별과 해방의 문제들을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분리주의적으로 다루도록 놔 둔 채 노조 쟁점들(임금과 노동조건)에만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 남녀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하면서 노동자 투쟁과 차별 반대 투쟁을 하나로 통일시키려 해야 한다.

일자리 부족이 심각해지면 지배자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국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난민 공격이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됐다. 출입국관리소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도 더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우려할 일은 민주노총 산하 일부 조직이 출입국관리소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에 협조하거나 이주노동자의 현장 출입을 막는 것이다. 고용이 악화되면 이런 일은 더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체제의 희생자일 뿐인 이주 노동자들을 비난하지 말고 체제를 비난해야 한다.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과 반목은 노동자 전체의 힘을 약화시킬 뿐이다. 건설노조가 건설업체와의 교섭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공격을 이용하는 것이 심각한 실수인 이유다. 노동운동 좌파는 여기에 타협하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인기 없는 주장일지라도, 이주노동자들을 방어하라고 내국인 노동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운동 좌파는 진보파 노동자들에게 선거 대안을 제공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물론 대중 투쟁을 가장 중시해야 하고, 투쟁을 선거에 종속시켜서는 안 되지만, 선거정치를 간단히 일축해서도 안 된다. 그동안 노동운동 내 정치세력들은 후보 단일화 논의를 통해 선거에 대응해 왔다. 그러나 지난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듯이 정의당이 압도적 우위이므로 이런 노력이 (주로 정의당 측의 이해할 만한 무관심으로) 잘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는 좌파 선거연합을 시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노동당과 변혁당이 1~2명이라도 후보를 내고 좌파들이 힘을 모아서 반자본주의적 선거운동을 한다면, 진보파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