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노동당의 한계에 맞닥뜨린 코빈
〈노동자 연대〉 구독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에서 탈당한 하원의원들이 ‘독립 그룹’을 결성했다. 이는 브렉시트 쟁점이 가하는 압박으로 영국의 양당 중심 정치 체제가 삐걱거리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다. 필자는 [본지 276호에 실린] ‘영국 노동당 우파 의원들의 탈당 ─ 새로운 중도 정당의 시작?’ 글에서 보수당 의원들이 추카 우무나 등 블레어 지지파 무리에 합류하지는 않을 듯하다고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틀렸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틀릴 각오를 하고 또 다른 예측을 해 보려 한다: ‘독립 그룹’이 앞으로 미칠 파장으로 영국 정치에 새 세력이 창출되지는 않겠지만, 이 한 줌도 안 되는 의원들이 각각 떨어져 나온 기성 양당에 영항을 미칠 것이다. ‘독립 그룹’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각 정당에서 탈당하지는 않은 사람들이 ‘독립 그룹’ 덕에 각자의 당내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보수당 의원 3인의 탈당은, 총리 테리사 메이가 ‘노 딜 브렉시트’를 거부하도록 압박하는 수많은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메이가 자신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반대하는 당내 우파를 꺾는 데에 이번 탈당이 결국엔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반면 ‘독립 그룹’이 노동당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분명하다.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는 당내 우파 의원들의 연이은 사임 협박에 밀려 브렉시트 [여부를 다시 묻자는] 2차 국민투표 요구를 수용했다.(비록 여전히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말이다.) 한 술 더 떠, 노동당 부대표 톰 왓슨은 “유대인 증오를 받아들이는 좌파”를 색출하는 마녀사냥꾼 노릇을 자처하고 나섰다.
“좌파들의 유대인 증오”를 공격하는 캠페인의 의도가 코빈 개인을 몰락시킬 뿐 아니라 급진 좌파를 타격하고 주변화시킬 것임은 명백하다. 국제주의 원칙에 입각한 팔레스타인 연대는 지난 20년 동안 [영국] 운동의 핵심 기치였다. 왓슨과 그 동맹자들은 이를 나치의 만자(卍字) 상징을 몸에 두르는 것과 같은 차원의 일로 만들고자 한다.
이는 노동당 안팎의 좌파 모두에 치명적 위험이다. 그런데 노동당 밖에 있는 좌파들은 노동당 내부 논쟁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당내 우파가 탈당으로 그 논쟁에 영향을 미쳤듯이, 좌파들도 영향을 미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큰 틀에서 답은 ‘당연히 가능하다’이다. 바로 코빈 자신이 혁명적 좌파들이 발의했던 반전·반파시즘 운동에 참가하며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안타깝지만 대규모 노동자 투쟁이 부재한 상황에서, 반전·반파시즘 운동은 새 세대의 사회주의자들이 자라날 토양이 돼 왔다.
하지만 이런 운동의 영향력은 노동당 안에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노동당이 “광교회파”* 성격의 정당이라는 것은 [영국에서] 상식이 돼 있다. 이 말이 실제로 뜻하는 바는, 노동당이 의회주의자들, 노동조합 활동가들, 선거 승리를 바라는 활동가들이 모인 연합적 정당이라는 것이다. 노동당 역사 내내, 선거 논리는 사회 세력의 영향력과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압도해 왔다.
코빈이 보수적 통념에 맞서 이만큼이나 오래 버틴 핵심 이유도, 코빈이 선거 논리를 만족시키는 성과를 낸 것이다. 2017년 6월 조기 총선 당시 코빈이 이끈 노동당은 메이가 이끈 보수당와 박빙으로 맞붙어, 2001년 이후 최고의 선거 성적을 거두고 보수당을 과반 정당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그러나 노동당 우파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전술을 점점 더 강하게 펴 왔다. 당내 좌파가 장악력을 굳히는 꼴을 보느니 보수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노동당에서 탈당해 ‘독립 그룹’을 결성한 추무나 등은 그런 속내를 감추지 않아 왔다. ‘독립 그룹’ 결성 직후 쏟아져 나온 여론조사 ─ ‘독립 그룹’이 전국 정당이 될 가능성을 점쳐 본다는 다소 요상한 시도였다 ─ 결과를 보면, ‘독립 그룹’은 노동당의 표를 갉아먹어 보수당의 집권 유지에 기여할 듯하다.
코빈이 [당내 우파와] 타협하는 것은 그런 위협을 무마하려는 시도다.(노동당 예비내각 재무장관 존 맥도널이 종종 그런 타협을 부추긴다.) 문제는 코빈과 맥도널의 그런 행보 때문에 그들의 지지자들이 사기저하되고, 코빈이 노동당 주류와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대변한다는 코빈 주장의 신뢰성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코빈 충성파를 자처하는 ‘모멘텀’이 “유대인 증오를 받아들이는 좌파” 마녀사냥 논리를 수용하는 것을 보면, 노동당 내 좌파적 의견그룹 ‘모멘텀’에서도 선거 논리가 작동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모멘텀’ 지도부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 같은 광범한 운동을 건설하는 것보다 선거 유세와 당내 쟁투를 우선시해 왔다. 그 후과가 이제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코빈 지지자 일부가 절망해 말하는 것과는 달리) 다 끝장 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빈은 선거 정당이라는 노동당의 본질 때문에 생기는 벽에 맞닥뜨리기 시작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