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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 게이트:
경찰 부패와 검찰의 비호, 그 속에서 방조되는 성폭력

고급 클럽 소유주와 검경 유착 속에서 여성들이 성범죄에 희생됐다

‘버닝썬 게이트’의 핵심에는 클럽 소유주들이 마음껏 돈 벌 수 있게 온갖 비리를 뒤봐주고 뇌물을 받은 썩어빠진 경찰이 있었다. 클럽 내 온갖 범법 의혹들(성범죄, 마약 유통, 폭행 묵인, 탈세, 불법 건축 등)은 부패한 권력의 뒷배가 없었다면 가능치 않았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이 손님 접대상에 오르는 성적 물건으로 취급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집중 단속하겠다”지만, 새로운 사실이 폭로될 때마다 경찰 자신이 묵인·방조·증거 인멸·봐주기 등에 연루돼 있다는 게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 부패 고리가 국제 범죄조직인 삼합회로 연결돼 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SBS〉 ‘그것이 알고싶다’).

경찰은 가수 정준영의 단체 카톡방에서 “경찰총장”으로 언급된 사람으로 윤규근 총경을 지목해 조사 중이다. 윤 총경과 그의 아내는 버닝썬 전 대표와의 유착 의혹도 받고 있다.

한편 검경 수사권 조정(분산) 문제로 경찰과 경쟁 중인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 권한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러나 김학의 사건 등에서도 알 수 있듯 검찰의 고위층 유착과 부패도 만만찮다.

버닝썬 사건에서도 검찰은 결코 믿을 만한 제3자가 아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정준영이 불법 성관계 영상 관련 수사를 받았을 때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반려했고, 올해 2월 말에는 유착 의혹의 고리로 지목된 전직 경찰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반려했다.

애초에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 얘기가 나온 것도 “떡검”, “섹검” 등 검찰이 부정부패의 대명사가 돼 대중의 불신을 크게 샀기 때문이다.

검경의 본질

검찰과 경찰이 재벌 등 대기업, 유흥업계, 유력 정치인과 유착해 범죄의 일부가 되는 일은 하도 흔하고 뿌리 깊어서 영화의 단골 소재가 돼 버렸다.

줄줄이 무혐의를 받은 김학의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고 장자연 사건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검경은 여성 차별을 진정으로 뿌리 뽑을 의지와 능력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재생산하는 구조의 일부다. 그들이 내세우는 “법과 원칙”은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 질서’는 노동계급이 착취와 억압을 꾹 참고 성실하게 일하도록 강제하고, 지배계급의 재산과 특권을 보호하기 위한 질서다. 검경은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비행과 달리 권력자들의 ‘통 큰’ 범죄들은 눈감아 주기 일쑤면서, 기존 사회 질서에 항의하는 노동자 등 차별받는 사람들의 정당한 움직임은 폭력적으로 탄압한다. 부패와 불의는 자본주의의 붙박이장이다.

문재인은 2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특권층의 불법 행위와 부실 수사에 대한 국민 분노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총장”으로 지목된 윤 총경은 2017년 문재인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다.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문재인 정부도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

역사적으로도 민주당 정부는 결코 부패의 예외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민주당 정치인들은 한국당 뺨치는 부패를 드러냈다.

버닝썬 게이트는 꼬리 자르기와 봐주기 수사로 끝나선 안 된다. 철저하게 수사해서 고위급을 포함한 모든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김승주)


‘강간 문화’·‘남성 카르텔’론의 난점

버닝썬 사태는 부패가 일상인 자본주의 권력층의 속살을 드러낸 사건이다. 따라서 우리가 규탄해야 할 “카르텔”은 바로 기업주와 부유층 손님, 범죄조직이 연루된 각종 범죄를 눈감아 준 경찰과 검찰, 정치인 등 권력자들의 부패 고리다.

그런데 여성운동 내에서는 (검경 유착을 규탄하면서도) 이 사건의 본질을 “한국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와 “남성 카르텔”로 보는 주장들이 많다. 좌파 노동단체 일각에서마저 별 문제의식 없이 이런 견해를 수용한다.

페미니즘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남성 연대의 문제’가 아닌 ‘권력층 문제’로 보는 접근법 자체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는 오롯이 (자본주의 체제와의 연관성 속에서가 아닌) 성별의 문제로만 볼 때 여성 차별의 독자적 중요성이 강조된다는 급진 페미니즘의 접근법을 나타낸 것이다.

여성을 몰래 약물로 기절시켜 VIP 손님 유치에 이용한 것은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남성 일반이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다. 남성의 극소수가 저지르는 범죄다. 특히 버닝썬 같은 강남의 고급 클럽에서 든든한 경찰 “빽”이 있는 자들이 저지른 짓을 남성 전체로 확장시키는 것은 비약이다.

성범죄를 묵인·방조한 검찰과 경찰은 노동계급을 억누르는 국가 권력의 일원인 반면, 노동계급 남성들은 이런 권력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남성 카르텔”, “남성 연대”라는 말로 모든 남성을 한통속으로 취급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일각에선 ‘정준영 동영상’이 검색어로 올라오거나, 일부 남성 카톡방에 불법촬영물이나 여성 몸매 품평 등이 올라오는 일을 ‘강간 문화’론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이런 문화가 “사회에 만연하”고 버닝썬 사태는 그 일환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도 남성 일반을 “공범”으로 싸잡아 매도할 수는 없다. 훨씬 많은 남성들은 이에 비판적이다. 이런 일이 종종 폭로되는 것도 그 카톡방에 속한 남성의 양심 고백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일부 남성 개개인의 성차별적 언행과 국가권력이 유착된 버닝썬 사태를 인과관계로 곧장 연결시키는 것도 비약이다.

무엇보다 ‘강간 문화’론은 여성 차별의 근원과 해결책을 찾기 어렵게 한다.

남성이 여성을 일상적으로 지배하고 이것이 성폭력과 여성 차별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급진 페미니즘의 전제다. 가부장제나 ‘남성 권력’ 등으로 표현되던 것이 최근에는 ‘여성 혐오’, ‘강간 문화’로 용어가 추가된 셈이다.

하지만 이는 여성 차별의 물질적 근원을 설명하지는 못하기에, 결국 그 원인을 남성의 생물학적 본성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러나 《젠더, 만들어진 성》의 지은이 코델리아 파인은 이런 생물학적 성차론이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밝혔다.

여성 차별의 근원은 남성 개개인들에게 내재된 여성혐오 본성이 아니다. 여성 차별은 명백히 그 물질적 토대가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현재와 미래의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일의 부담을 개별 노동계급 가족(특히 여성들)에게 떠넘긴다. 지배계급은 여기서 막대한 이득을 얻는다.

여성 차별은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젠더로 이간시키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이런 점들이 자본주의에서 체계적으로 여성 차별이 유지·강화되는 핵심 이유다.

여성 차별의 근원을 남성 일반에서 찾으면 차별을 체계적으로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그로부터 이득을 얻는 진정한 수혜자들이 아니라 노동계급 남성 개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된다. 그리되면 여성운동은 노동계급의 투쟁과 분리된다.

또한 남성을 싸잡아 매도하면 도덕주의적 태도가 득세해 여성운동의 내향화·파편화를 부추기게 된다.

성폭력의 근원을 생물학적 본성에서 찾게 되면 전망이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남자들은 원래 그래”라고 전제하면, 여성운동은 해 봤자 소용없거나, 남자들이 자기 본성을 거슬러 깨우치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남성에게 차별 의식이 유전자화돼 있다면, 이게 가능할까?)

이런 주장과는 달리, 여성과 남성은 여성 차별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고, 특히 노동계급의 경우 그럴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 나아가 노동계급 가족에게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전가하는 체제를 전복할 잠재력도 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함께 싸우는 과정에서 성 의식이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올해 민주노총이 세계 여성의 날 집회를 남녀 조합원 모두의 참가를 독려하는 의미에서 전국노동자대회로 치른 것은 그 최신 사례다. 건설노조, 공공운수노조 등 여성과 남성 조합원들이 전체적으로 비슷한 규모로 참가해 단결의 잠재력을 보여 줬다. 좌파와 노동운동이 젠더 이분법적 페미니즘을 따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와 그 수혜자들인 지배계급에 도전하는 전략을 발전시킬 때만 여성해방이라는 전망도 실현 가능하다. 이를 위해 좌파와 노동운동 투사들은 여성 차별에 맞서 남녀 노동계급의 단결된 투쟁을 구축하려 애써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성차별에 단호히 반대하면서도 “강간문화”론의 위험성과 비효과성을 이해하고, 대안적 이론과 전략을 발전시켜야 한다.

(최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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