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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 트럼프에게 베네수엘라 개입 촉구하다

베네수엘라 우파 야당들의 반정부 운동이 10주를 넘긴 4월 6일, 베네수엘라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들이 맞붙어 세를 겨뤘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지지 시위와 외세 개입 반대 시위에 각각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했다. 과이도의 반정부 운동(“자유 작전”)은 곳곳에서 ‘맞불’ 시위에 부딪혔다.

이 시위 하루 전날인 4월 5일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 압박을 확대·강화했다.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는 베네수엘라 석유 관련 제재를 확대해 “정권의 명줄”을 틀어쥐겠다고 으름장 놨다. 그 발언 직후 미국 재무부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 석유를 운송하는 선박 34척을 제재했는데, 베네수엘라 석유를 쿠바로 운송한 그리스 선박회사 두 곳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미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4월 11일부터 칠레·파라과이·페루·콜롬비아를 순방하며 베네수엘라 압박 동참을 조직하고, 4월 15일 콜롬비아에서 열릴 리마그룹 회의*에 참가할 예정이다.

트럼프 정부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공세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 개입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4월 8일 메이저리그와 쿠바야구연맹 사이의 협약을 무효화해 마두로 정부를 돕는 쿠바를 압박했다. 쿠바가 “진정한 제국주의”라면서 말이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미국의 압박은 경제 제재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미국 상원 표결을 앞둔 베네수엘라 제재 관련 법안들 중에는 베네수엘라 ‘지원’ 목적의 국제 경제 기구 수립, 과이도 지지자들에 대한 선별적 제재 해제뿐 아니라 러시아 개입 저지를 위해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의 베네수엘라 개입을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뉴욕 타임스〉는 4월 3일자 사설에서 명료하게 주문했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에 대해] 더 공세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쿠데타든 내전이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두로 정부를 축출해,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실히 제고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지배계급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간섭의 피해는 이미 94퍼센트가 빈곤 상태로 추산되는 베네수엘라인들이 가장 크게 보고 있거니와, 미국 제국주의의 뜻이 관철되면 “난민이 약 800만 명 [추가] 발생할 것”이다.(미국 외교전문잡지 《포린 어페어스》).

‘미니 트럼프’라 불리는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뱀의 혀처럼 굴고 있다. 보우소나루는 3월에 방미해 “베네수엘라 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의 군사적 역량을 신뢰한다”고 했고, 4월 8일 “베네수엘라를 제2의 쿠바, 제2의 북한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미국과 긴밀히 공조하겠다”고 했다. 이미 보우소나루 정부는 장성급을 미국남부사령부(미군의 라틴아메리카 개입 총괄)와의 연락 담당자로 둬 미국과의 군사적 연계를 강화한 바 있다.

문재인의 친제국주의

문재인 정부가 이에 동참해 300만 달러를 쓰겠다고 나선 것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는 베네수엘라 난민 지원을 명분으로 들었지만, 정작 한국에 온 난민들은 푸대접하는 문재인이 진정 지원하려는 것은 미국 제국주의다.(본지 웹사이트에서 관련 기사 ‘문재인 정부, 베네수엘라 진보 정권 전복 돕겠다고 300만 달러 쓴다’를 보시오.)

외세는 베네수엘라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간섭은 베네수엘라인들의 생존을 위협할 뿐이다. 서방의 ‘인도적’ 지원은 베네수엘라 우파 야당의 정권 전복 시도를 도울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간섭은 베네수엘라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는 투쟁에 나서기 어렵게 한다.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모든 제재·압박을 철회하라.

“제국주의는 베네수엘라에 간섭 말라!” 4월 6일 수도 카라카스를 메운 ‘반제국주의 시위’. 참가자들은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압박을 규탄했다 ⓒTelesur (트위터)

러시아의 개입도 ‘진보적’이지 않다

미국의 압박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미국 개입에 어깃장 놓는 러시아는 달리 보는 사람들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러시아(와 중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을 경계하는 것 때문에 ‘적의 적은 친구’라고 봐서 그런 듯하다.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미국 제국주의에 강경하게 반대했던 차베스는 집권 이후 점차 중국과 거리를 좁히면서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제국주의 점령도 지지했다. 차베스는 ‘적의 적’이라는 이유로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와 시리아 독재자 아사드도 지지했다.

현 마두로 정부도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4월 8일 베네수엘라 외교부장관 호르헤 아레자는 “아프리카·유럽·아랍”에서 반미 정부들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 중심에 러시아가 있다. 아레자는 러시아를 “위대한 동맹”이라고 불렀다. 러시아는 지난 두 차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베네수엘라 제재 문제를 두고 미국과 갈등했고, 베네수엘라와 군사 공조를 강화했다.

러시아의 ‘반미’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베네수엘라 대중의 자결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인들의 시체 더미를 딛고 권좌에 오른 자이며, 지금도 강간·고문·학살로 체첸을 탄압하는 자다. 체첸만이 아니다. 푸틴이 조지아를 침공·점령한 것이 고작 10년 전이다. 그 몇 년 뒤인 2014년에도 푸틴은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무력 점령했다.

러시아가 지금 미국에 어깃장을 놓는 것은 또 다른 제국주의적인 행동이다.

물론 지금의 러시아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얼마 안 남은 교두보마저 사라질까 조바심 내는 처지이지, 20세기 후반 미국과 세계를 양분했던 소련 제국주의와 같은 처지는 아니다. 미국 지배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푸틴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드문 동맹국[베네수엘라]을 돕고 미국에 반항하려 안달하지만, 지구 반대편까지 진지하게 힘을 투사할 수도 없고 상황 악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도 없다.”(〈뉴욕 타임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의 재현’ 운운은 과장이다.

환상의 배신

그럼에도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해 ‘진보적’ 제국주의에 기대를 가졌다가 배신당한 사례는 세계에 넘쳐난다.

포화 속에 갈기갈기 찢긴 시리아가 그 한 사례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중동 개입에 맞서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진보적’ 구실을 할 것이라 믿었지만, 러시아는 조기 종전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려고 뛰어든 것이었다. 러시아는 아랍 혁명의 적이었던 아사드 정권을 비호했고, 더한층 유혈낭자한 전쟁을 벌였다. 수많은 시리아인들이 난민이 됐다.

한반도에서도 ‘진보적 제국주의’ 환상이 처참하게 무너진 사례들이 있다.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직후 조선공산당은 소련은 물론이고 미국도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보고 미군정과 협력을 추구했다.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열강을 해방자라고 본 조선공산당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운동을 자제시켰다.

이런 환상은 같은 해 말에 불거진 신탁통치 문제에서도 이어졌다. “소련의 스탈린 동지가 지도한 삼상회의 결정이 조선 민중의 이익에 반할 리가 없다”고 본 공산당은 즉각 독립을 원하는 대중의 바람과 달리 신탁통치안을 지지했고, 일제 부역자를 비롯한 우파가 애국자를 자처하며 회생할 수 있었다. 공산당은 이후 때늦은 저항에 나섰지만 처참하게 학살당했다.

학살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 제국주의 간 전쟁에 ‘진보적 제국주의’는 없었다. 한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환상 때문에 한반도에서 더 나은 대안을 실현할 가능성이 절멸했고, 세계적으로도 냉전 갈등이 높아졌다.(한반도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한규한·김동철·김현옥, 《마르크스주의로 본 한국 현대사》(책갈피)를 보시오.)

오늘날에는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는 ‘균형추’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진보·좌파 안에 있다. 그러나 중국 제국주의가 항공모함을 증설하고 일본·미국과의 갈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고 해서 그것이 동북아 평화로 이어질 리 만무하다. 제국주의는 특정 국가의 지배인 것만이 아니라 다수 국가들이 경쟁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체제 전체가 우리의 적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 노동자 소비에트와 볼셰비키가 보여 준 바처럼, 노동계급의 자력 행동으로 제국주의와 그 본질인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