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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류가 바뀌고 있는 듯한 한반도 상황

4월 11일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 회담의 주요 현안은 단연 ‘북핵 문제’가 될 것이다. 방위비 분담, 자동차 관세 등도 논의되겠지만 말이다.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나면서, 지금까지 북·미 관계는 경색돼 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올바른 합의”가 필요하다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좋은 관계”는 입발림 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2월 22일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침입 사건 배후에 미국 정보기관이 있음도 폭로됐다.

ⓒ출처 청와대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으로 협상의 불씨를 살려가려는 것 같다.

그러나 상황은 만만치 않다. 3월 30일 로이터 통신은 2월 하노이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빅딜 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 문서가 트럼프가 처음으로 김정은에게 비핵화 정의를 직접 명확하게 밝힌 것이었다고 했다.

‘빅딜 문서’에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이 주장해 온 “리비아 모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의 미국 이전, 핵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생물무기·화학무기 폐기, 생화학무기 개발로 전용될 이중 용도 시설 폐기, 핵과학자·기술자 상업 활동으로의 전직 등등.

이것은 일방적으로 북한한테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요구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 부시 정부를 상대할 때부터 “리비아 모델”을 줄곧 거부해 왔다. 일각에서는 이 문서가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최종’ 상태를 정리한 문서였을 뿐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한다. 그러나 30년 북핵 협상의 맥락 속에서 보면 ‘빅딜 문서’는 북한한테 “모욕적이고 도발적”(로이터 통신)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행정 쿠데타?

트럼프 정부가 북한이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정상회담에서 꺼낸 배경에 “행정 쿠데타”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불안하게 여긴 행정부 고위 관리들(폼페이오, 볼턴 등)이 트럼프가 북한과 “충동적으로” 타협하지 못하게 제어한다고 여긴다.

이런 주장에는 트럼프가 볼턴, 폼페이오 같은 인사들과는 달리 북·미 관계 개선에 진지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물론 트럼프는 미국의 주류 정치권 인사들과는 다른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다. 그의 집권은 우익 포퓰리즘의 세계적 부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 점은 그가 매우 위험한 인물임을 가리키는 증거다.

트럼프가 2017년에 한반도에 “화염과 분노”를 위협했던 자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협이 단순히 허세는 아니었다. 긴장이 쌓이다 보면, 시간이 지나 진짜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북한과의 협상에 임한 후에도 지금까지, 트럼프는 ‘북한의 선 비핵화’ 요구에서 물러선 적이 없다. 오히려 그 와중에 미국의 대북 제재는 조금씩 강화돼 왔다. 따라서 트럼프의 “최대한의 압박” 기조는 지금도 지속된다고 봐야 한다.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은 그 기조 하에 상황 관리를 위해 전술적 유연함을 발휘한 것일 수 있다.

3월 29일 미국 해안경비대 버솔프 경비함과 한국 해경이 제주 인근에서 “마약 운반 의심선박에 대한 정밀검색” 훈련을 했다. 버솔프함은 사실 대북 제재 위반 여부를 해상에서 감시하려고 일본으로 파견된 함정이다. 따라서 이 훈련은 북한과 거래하는 선박에 대한 해상 검문 훈련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기류가 바뀌다

트럼프 정부 하에서도 미국의 대북 정책이 근본에서 달라지지 않았음이 분명해지자,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당당하게” 요구해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적어도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정도는 얘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문제에서 주된 플레이어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자신도 미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의 관계가 한반도 문제의 핵심임을 인정한다. 문재인 정부의 “중재”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남북 관계보다 한미동맹을 중시한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이 미국에 보낸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김현종은 대북 특사 파견은 미국과 의견을 조율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 스스로 “한미동맹의 결정”이라는 틀 안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추진하려 한다.

지금 한반도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해관계 충돌이 심화하는 맥락 속에 놓여 있다. 아니, 그 한복판에 얽혀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갈등이 낳는 국제 정세의 불안정은 한반도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어 왔다. 이 점은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기류가 급작스레 뒤바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 그 기류가 바뀌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따라서 좌파는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상황이 급변한다면, 반제국주의적 평화 운동 건설은 좌파의 당면 과제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