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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 여경 논란’ 이용한 경찰력 강화
‘여성 혐오’ 프레임이 놓친 것

최근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림동 여경 논란’의 진정한 수혜자는 경찰이 되는 듯하다.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언론들이 일부 온라인 상 논란을 ‘여성 혐오’ 프레임으로 보도했고, 페미니스트·진보 진영 일부도 그 프레임으로 이 논란에 가세했다.

반면 경찰은 논란에 신속히 개입해 여경을 옹호하고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 권위가 무시되는 게 문제라고 쟁점을 정리했다. 그러더니 경찰의 대응 수위를 높이는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 제정안’을 전광석화처럼 내놨다. 언론과 짜고 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강화된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 일반 취객 시비에도 강경대응을 할 수 있다 ⓒ출처 경찰청

경찰이 내놓은 물리력 행사 기준은 경찰에 대한 직무 방해 행위를 5단계로 나눠 그에 맞는 대응 수위를 매뉴얼화한 것이다. 경찰의 기준에 따르면 ‘대림동 사건’은 3~4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는 관절 꺾기, 조르기, 넘어뜨리기 등이 가능하고 심지어 분사기, 경찰봉 이용 가격, 전자충격기 사용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공개된 사건 현장 동영상을 보면, 상대는 경찰에게 시비를 걸지만 막상 경찰이 제압을 시작하자 곧 제압당할 정도로 만취한 사람이었다. 이런 일반 취객의 시비에 위와 같은 강경 대응을 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 대응이다.

‘고 장자연 사건’버닝썬 사건에서 권력층과 유착해 그들의 범죄를 덮어주기 바빴던 경찰이, 평범한 사람들의 길거리 술주정 시비에는 이런 초강경 대응을 부르짖다니 참으로 계급 차별적인 이중잣대다.

진정한 속내

경찰의 이중잣대는 경찰과 우파가 말하는 ‘공권력 권위 바로 세우기’가 보통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매뉴얼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가 억압 기관들의 권위를 높이려는 시도는 전반적인 사회 통제를 강화해 사회적(계급적) 세력균형을 우파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경찰 같은 권력기관들의 성격과 기능이 지배계급 입장에서의 ‘공안’(체제 수호와 기존 질서 유지)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개인들의 악행을 부각해 공포를 부추기고 경찰력 강경 집행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 대림동 사건의 경우, 상대가 폭력적이라는 편견에 시달리는 중국 동포(이른바 조선족)였던 것도 시사적이다.

공포 부추기기 자체가 사람들의 자유로운 활기 표출과 교류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경찰의 간섭이 늘어나면 상황이 더 악화된다. 결국 이를 통해 좌파들의 투쟁, 파업, 시위에 강경 대처하기도 쉬워지고, 파업 노동자나 좌파 활동가들을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해치는 집단으로 매도하기도 더 쉬워진다.

이 방면으로 유명한 것이 영국의 대처 정부인데, 한국도 만만치 않다. 노태우 정부가 1987년 이후 활성화된 투쟁 물결을 탄압하려고 조폭을 핑계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일선 파출소에까지 M16 소총이 지급됐는데, 결국 시위 진압에 위협용 총을 쏘다가 지나가던 행인이 총탄에 맞아 죽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임기 말 레임덕에 빠진 이명박도 생뚱맞게 “술 마신 사람에게 매 맞는 경찰은 우리 나라뿐”이라며 경찰력 강화를 추진하고 사회 분위기를 냉각시키려고 했다. 이는 바로 그 시기에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대선 개입 정치 공작을 벌이기 위한 포석이었음이 훗날 드러났다.

박근혜는 취임 연설에서부터 “법과 질서”, “4대악 척결” 운운하며 사회 곳곳에서 경찰 단속을 강화했다. 이는 박정희 시절에 향수를 가진 지지층을 결집하고 우파적 통치 스타일을 정당화하려 한 것이었다.

이런 일들은 우파 정부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도 정권 초부터 지지율이 폭락하고 집회와 시위가 증가하자 “강력 범죄 100일 소탕 작전”을 펼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친 자본주의 우파 언론들은 이번 경찰 방침을 환영하면서, 민주노총의 시위 사례를 각별히 언급했다. 이런 ‘공권력 도전 행위’를 더 세게 때려잡을 권한을 경찰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결국 여경 논란은 핑계일 뿐, 진정한 속내는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군대와 경찰이 남초인 이유

따라서 경찰의 ‘직무 집행’ 대응이 전반적으로 강화되는 것은 노동계급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해로운 일이다. 여경이라 해서 이 점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찰이라는 국가기관의 성격 때문에, 여성이라도 경찰 제복을 입고 경찰의 업무를 수행할 때는 남자 경찰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에 대한 몽둥이” 구실을 한다.

5월 24일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고 장자연 사건’의 진상규명을 외면한 검찰이 “공범”이라고 규탄하며 검찰청 항의 행동을 벌였는데, 이를 일선에서 가로막은 것도 여경이었다.

결국 경찰 내 여성 비율이 크게 낮은 것은 본질적으로 경찰이 보통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억압 기관이라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경찰과 군대가 남성 위주인 이유다.

그러므로 지배자들의 입장에서 군대나 경찰 기구 안에서 여성의 비율을 전폭적으로 늘리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한편, 이런 억압 기관들에서 여성 비율을 더 줄이자는 것은 물리적 억압성을 강화하자는 것으로 귀결되므로 아예 반동적이다.

여경도 경찰의 계급적 본질을 공유한다 5월 24일 '고 장자연 사건'의 진상규명을 외면한 검찰에 항의하는 여성단체 시위 통제에 나선 여경들 ⓒ출처 한국여성의전화 SNS

‘여성 혐오’ 프레임의 한계

이런 맥락에서 보면, 페미니즘과 진보 일각에서 대림동 여경 논란을 ‘여성 혐오’의 전형으로 보고 여경을 옹호하거나 여경의 사기 진작과 ‘당당한’ 법 집행을 응원한 것은 본질을 한참 놓친 것이다.

성평등에는 무관심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뒷받침하는 경찰이 이를 약삭빠르게 이용해 경찰력 제고에 나섰기에 더더욱 씁쓸하다.

사실 여경 논란의 발단이 된 일은 그저 길거리에서 흔히 있을 법한 경찰과 취객의 시비에 불과했다. 누군가 그 동영상을 올리며 여경의 대응을 가당찮게 트집 잡았다 해도, 그저 한 개인이 올린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상업 언론들은 선정적으로 이를 남 대 여의 갈등 구도로 크게 부풀렸다. 이들은 자극적인 기사로 조회수를 높여 돈을 버는 데 맹목적이다.

무엇보다 친자본주의 언론들은 남 대 여의 이분법이 노동계급의 단결을 방해해 지배자들에게 이득이 됨을 잘 안다. 문재인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을 남녀 대결, 페미니즘 찬반 논쟁으로 엉뚱하게 환원한 그간의 언론 보도들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경찰은 이번 여경(및 여혐) 논란을 ‘버닝썬 사건’으로 실추된 경찰의 위신을 바로 세울 절호의 기회로 봤을 법하다. 무엇보다 이 논란을 경찰력 강화의 지렛대로 적극 활용했다.

따라서 ‘여성 혐오’ 대 ‘여경 옹호’라는 비본질적 프레임에 동조한 진보 일각은 그 허점을 돌아봐야 한다. 비록 성차별적 편견에 반대해야 한다는 선의에서 비롯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모든 문제를 남 대 여의 구도(또는 여성 혐오의 문제)로 환원할 수는 없다. 그 남성과 여성들이 계급이라는 집단적 이해관계의 맥락 속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효과적인 여성해방 전략을 추구하는 데서도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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