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룰라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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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개월 안에 실시될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할 가능성이 큰 “볼리비아의 체 게바라” 에보 모랄레스와 그가 이끄는 사회주의운동당(MAS)이 좌우 양쪽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2001년 12월 당시 볼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는 모랄레스를 오사마 빈 라덴에 비유하고 그의 지지 기반인 코카 잎 재배농들(코칼레로스)을 “안데스의 탈레반”이라고 불렀다.
또, 2003년에 볼리비아 국방장관은 MAS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부한테서 돈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후 우파들은 그 주장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다른 한편, 지난해 볼리비아노총(COB) 지도자들은 모랄레스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COB에서 축출했고, 지난 5∼6월의 민중항쟁 기간에 엘 알토 지역노동자연맹(COR)은 모랄레스가 농민들의 동원을 가로막는 “배신” 행위를 했다며 그를 엘 알토 민중의 “적”으로 선언했다.
모랄레스의 전통적 지지 기반은 코칼레로스, 특히 볼리비아 중부 차파레 지역의 코칼레로스이다. 그들은 대부분 1980년대 중반 IMF가 볼리비아에 강요한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탄광이 폐쇄돼 일자리를 잃은 광부 출신이다. 광부노조의 전투적인 계급투쟁 기억과 전통을 잃지 않은 그들은 1980년대 말 강력한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들의 세력은 1990년대 중반까지 계속 증대하다가 1990년대 후반에 정부의 강압적인 코카 잎 재배 근절 정책 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MAS가 등장했다.
모랄레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오랜 배신 경험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정치 체제 전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995년 코칼레로스 전국대회에서 ‘민중의 주권을 위한 정치 기구’가 탄생했고, 이 조직은 1997년 선거에 MAS라는 이름으로 정당 등록을 하고 후보를 내보냈다.
MAS의 창립자이자 이론가인 안토니오 페레도 레이구에는 MAS가 “원주민들, 마르크스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모순된 결합체”라고 말했다.
MAS의 초창기는 원주민들이 주도한 계급투쟁의 전환기와 일치했다. 2000년 초에 코차밤바에서는 물 사유화 반대 투쟁이 분출했다. 그 뒤 저항은 라 파스 인근 고원지대의 아이마라 원주민들에게로 확산됐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모랄레스는 21퍼센트를 득표해, 2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1위와의 득표율 차이는 겨우 1.5퍼센트였다. 그 선거는 원주민들의 중앙 정치무대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원주민이 인구의 62퍼센트나 되면서도 정치 권력 구조에 참여하지 못하고 인종차별도 심각했던 나라에서 이것은 “상징적 혁명”이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성공 전후로 MAS는 우경화하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에서 모랄레스가 성공을 거둔 이후 MAS는 거의 모든 노력을 2007년 대선 승리와 집권을 위해 쏟아부었다. 이런 경향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2003년 10월 민중항쟁 때였다.
당시 MAS는 로사다가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뒤 새 정부 구성을 주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MAS는 부통령 메사가 대통령직을 승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사의 정책이 로사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MAS는 아래로부터의 민중 반란 물결에 떠밀려 집권할 경우 미국 제국주의와 정면 대결하게 될까 봐 우려했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혁명이 앞으로 더 나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면 미국이 개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 말했다.
MAS는 비록 메사 정부에 참여하지는 않겠지만 메사 정부를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AS와 다른 좌파들 사이의 틈은 2004년 7월 실시된 가스 국유화 국민투표에서 가장 크게 벌어졌다. 메사는 국민투표 용지에서 ‘국유화’라는 용어를 교묘하게 회피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원주민 정당 파차쿠틱원주민운동당(MIP)의 지도자 펠리페 키스페와 COB 지도자 하이메 솔라레스 같은 좌파들은 국민투표가 메사의 속임수라며 보이콧을 주장한 반면, MAS는 지지 입장을 밝혔고 이 때문에 모랄레스는 COB에서 축출당했다.
그러나 9월에 가스 국유화를 요구하며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오자, MAS는 좌경화하기 시작했다. 모랄레스의 말도 더 급진적으로 바뀌는 듯했다. 그는 메사가 “로사다와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런 좌경화의 핵심적 요인은 모랄레스 지지자들의 불만이 증대했다는 것이다. 그가 가스 국유화를 반대하는 등 기회주의적 과오를 범하거나 정치적으로 온건한 태도를 취한 것 때문에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12월 메사가 유류세를 인상하자 모랄레스는 메사야말로 “최대의 적”이라고 선언한 뒤 전국적인 시위를 호소했다. 올해 3월 가스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려 하자 모랄레스는 시위와 도로 봉쇄 투쟁을 호소했다.
한동안 MAS, COB, 엘 알토 지역위원회연맹(FEJUVE), 다른 좌파들이 다시 단결해 민중 운동 지도부를 재구성하고 전국적인 항의 시위를 조직했다.
그러나 이런 단결은 5∼6월 항쟁 동안 지속되지 않았다. 모랄레스는 처음에 국유화가 아니라 로열티를 50퍼센트로 인상할 것을 주장했으나, 민중항쟁이 계속되자 태도를 바꿨다.
의회 봉쇄와 메사 퇴진 요구를 둘러싸고 더 큰 분열이 일어났다. 급진 좌파들은 이런 요구를 지지했지만, 모랄레스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의회를 봉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또, 메사가 사퇴하지 말고 가스를 되찾고 제헌의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볼리비아 노동자와 민중은 의회를 봉쇄하고 결국은 메사를 퇴진시켰다.
모랄레스와 MAS의 지그재그를 보면 그들의 정치가 혁명적 사회주의와 개량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는 중도주의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본질은 아직 현실에서 입증되지 않았고 수많은 볼리비아 대중은 그들에게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다.
따라서 모랄레스와 MAS에게 그저 배신자 딱지를 붙이고 그 지지자들에게 경직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올바른 정치 전략·전술이 아니다.
볼리비아인들의 다수를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 쪽으로 견인하고 그들을 진정한 최종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혁명적인 조직이 필요할 것이다.
그들이 벌이는 투쟁들에 동참해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이 혁명적·민주적 사회주의를 미국 제국주의와 볼리비아 자본주의의 진정한 대안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면서 그런 조직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