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해협 파병을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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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이 출항했다. 국방부는 소말리아 아덴만에 파견하는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으로 보낼 수도 있다고 말해 왔다.
정부는 “아직 미국의 공식 요청”이 없었으며 아직 “파병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둘러댄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미국은 이미 여러 차례 파병을 촉구했다. 8월 9일 한국에 온 미국 국방장관 에스퍼가 호르무즈해협에서 국제사회의 협력을 기대한다고 한 것은 최근의 한 사례일 뿐이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6월부터 파병을 준비해 왔으며 강감찬함의 무기체계를 보강하고, 무인기 대응 훈련 등 호르무즈해협 상황을 염두에 둔 훈련을 했다.
국방부는 “우리 선박 보호를 위해 파병을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며 마치 파병을 결정해도 그것은 미국과 무관한 결정이라는 듯한 인상을 주려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래 미국의 전략에 줄곧 협조해 왔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라던 사드는 결국 배치를 강행했고, 6월에는 트럼프 정부의 새 아시아·태평양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지했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에서 다국적 연합 함대를 꾸려 이란을 압박하려 한다. 함대를 꾸리는 명분은 그곳을 드나드는 상선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그곳의 불안정은 사실 미국이 자초한 결과다. 지난해 트럼프가 이란 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해 이란을 제재하고 군사적으로 압박하면서 그곳의 긴장은 급격히 높아졌다.
연합 함대는 다소 더디지만 천천히 꼴을 갖추고 있다. 현재까지 영국과 이스라엘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스라엘처럼 호전적인 나라가 이란의 코앞에 군사력을 배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 동참하면 연함 함대 추진에 더 힘이 실릴 것이다.
이란은 러시아와 몇 달 내로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연합 훈련을 하기로 했다. 그 좁은 해협에 온갖 강대국들이 동원한 군함들이 모여 나란히 무력 시위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파병은 미국의 대對이란 위협을 정당화하고 중동 불안정을 부추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불안정하게 하는 데에도 일조할 것이다. 머나먼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파병을 요구하는 것에는 이란을 압박하기 위한 군사적 부담을 분담한다는 측면도 있다. 이 점은 미국이 해상 안보 위협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나머지 참가국들이 군함으로 상선을 보호하는, 미국이 7월에 밝힌 연합 함대의 형태에서도 드러난다.
중국
미국 지배자들은 현재 중국의 부상을 가장 중요한 위협으로 여긴다. 그래서 이미 오바마 정부 때부터 미국은 중동의 수렁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하려 했다. 트럼프 정부가 내놓은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동맹국들을 연결해 중국을 포위하는 매우 공격적인 대중국 전략이다.
그러나 중동은 여전히 중요한 곳이기에 미국은 중동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없다. 중국의 중동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중동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 한편 이란은 미국이 이라크 점령에 실패한 이후로 꾸준히 중동에서 영향력을 강화해 왔다. 반면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예멘 내전에 개입했다가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수렁에 빠졌다. 그래서 미국 지배자들은 이란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낀다.
트럼프가 이란을 위협하고 전쟁 위험을 키우면서도, 이란 폭격을 직전에 취소하는 등 사태가 격화하는 것을 막는 것은 중국에 집중하고 싶어 하지만 중동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이런 처지를 반영한다.
중국에 대한 공세는 무역 전쟁을 포함해 군사적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했다. 1987년 러시아와 맺은 이 조약은 중거리와 단거리 미사일 전력을 폐기하는 조약이다. INF 탈퇴가 중국을 겨냥한 것임은 트럼프가 ‘새로운 조약에는 중국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INF 탈퇴 직후 미국 국방장관 에스퍼는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동맹국에 배치하고 싶다고 했다(당연히 한반도도 그중 하나다).
호르무즈해협 연합 함대 구성이 성공적일수록 미국은 중동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도 한결 수월하게 중국에게 이런 공세를 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시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아베 정부가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고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추구하는 것을 우려하는 한국의 노동자·민중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아베의 그러한 행보는 미국이 일본을 대중국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위상을 제고하는 것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 전략 하에서 한국은 하위 파트너로서 일본과 묶여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에 효과적으로 반대하려면 미국의 패권 정책에도 반대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 파병에 반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주류 언론들은 정부가 국익을 토대로 파병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러나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응해 이라크에 파병했을 때에도 명분은 국익과 실리였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으로 북핵 문제에서 미국의 협조를 얻어내려 했다. 미국은 노무현 정부의 이런 태도에 코웃음쳤다. 이라크를 점령하며 기고만장해진 미국은 대對북한 압박을 강화했다. 이라크 민중의 피로 실리를 챙기겠다는 노무현의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반도 긴장이 완화한 것은 미국이 이라크 내의 격렬한 저항과 국제적인 반전 운동으로 어려움에 처하고 나서부터였다. 제국주의가 약화할 때 우리는 평화에 더 가까워졌던 것이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