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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호르무즈해협 파병 시사:
평화 염원 배신하고 중동의 화약고에 뛰어들려는 문재인

미국이 문재인에게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공식 요청할 것이라는 소식이 돌고 있다. 7월 11일 외교부는 이에 관해 미국과 물밑 접촉 중임을 시사했다. 공식 요청이 오면 수락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한·일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백악관에 다녀온 청와대 안보실 차장 김현종은 미국의 파병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중동에 대한 미국의 계획과 전략을 물었지만 파병 얘기는 하지 않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여론을 의식해 파병을 전면으로 드러내길 꺼리는 것일 수 있다. 2003년 이라크에 파병한 노무현도 파병 계획을 발표하기 직전까지 마치 그런 계획이 없는 듯이 굴었으니 말이다.

호르무즈해협은 미국의 이란 압박으로 긴장이 팽팽한 곳이다. 지난해 트럼프가 이란과 맺은 핵협정을 탈퇴하고 이란을 강력하게 제재하는 가운데, 그곳에서는 올해 5월부터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졌다. 유조선들이 공격당했고 이란이 미군 드론을 격추했다. 7월 10일에는 영국 유조선을 나포하려는 무장 선박과 영국 구축함이 대치했다. (영국은 이란이 나포를 시도했다고 했지만 이란은 이를 부인했다.)

6월 말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에서 상선을 호위하는 연합 함대를 꾸리겠다고 했다. 그곳에 더 많은 무장력을 배치할수록 상호 충돌 위험은 커질 것이다.

문재인은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 군대를 보내어 트럼프를 도우려 하는 것이다.

문재인은 박근혜 퇴진 촛불이 보여 준 개혁 염원을 줄곧 배신하며 환멸을 샀지만, 평화를 추구한다는 환상만큼은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사실 문재인은 한·미 공조를 계속 중시했다.

한미 공조

집권 전 “우리는 미국에게 ‘아니오’를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던 문재인은 집권 초부터 사드 문제에 직면했다. 결국 문재인은 성주 주민을 짓밟고 사드를 배치했다.

2017년 북한 “완전 파괴” 운운한 트럼프의 호전적인 유엔 총회 연설을 두고 문재인은 “강경한 발언이 북한[의 태도]을 바꾸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대부분의 언론은 문재인이 연설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30번 넘게 입에 올렸다는 것만 부각했지만 말이다). 문재인 말고 당시 트럼프의 연설을 칭찬한 서방 지도자는 트럼프만큼이나 호전적인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뿐이었다.

2018년 한반도에서 극적으로 유화 국면이 시작된 후에도 문재인은 사드 기지 공사를 강행했다. 최첨단 미국 전투기 F-35를 도입한 대북 전쟁 연습인 한미연합훈련도 지속했다. 정부는 훈련 규모를 축소했다고 하지만, 한미연합훈련 규모는 이미 지난 7~8년 동안 줄곧 확대됐으니 그 축소가 진정한 축소인지도 의문이다.

올해 6월 30일 판문점 회담에서 문재인은 트럼프와 더 노골적으로 보조를 맞췄다. 트럼프를 “피스메이커”로 추켜세웠고,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중국을 의식해 이 전략을 명시적으로는 지지하지 않던 데에서 더 나아간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은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증강해 왔다. 문재인은 2018년 국방예산을 6.9퍼센트 늘렸다. 전임 우파 정부들보다도 증가율이 높다. 문재인이 추진하는 ‘국방개혁 2.0’을 위해서는 2023년까지 국방비를 연평균 7.5퍼센트씩 올려야 한다. 문재인은 첨단무기 개발에도 열을 올린다.

대외 정책의 근간을 한미동맹에 둔 이상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패권 전략에 타협하며 평화 염원에 일관되게 부응할 수 없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트럼프에게 협조해야 하므로 파병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하면서 내세운 근거도 북핵 문제 해결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협조와 무관하게 한반도 정세는 갈수록 악화됐고 북한은 결국 핵무기를 만들었다.

먼 곳의 전쟁을 도와 한반도 평화를 도모한다는 발상은 성공할 수 없었다. 한반도 정세는 언제나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경쟁과 갈등에 따라 요동쳐 왔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번 호에 실린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은 한반도 평화에 해로웠다’를 보시오.)

얼마 전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난 지금은 트럼프와 협조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좀 더 그럴싸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불안정을 일으킨 강대국 간 갈등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갈등은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더 치열해지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는 결국 동아시아에 다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해상 석유 수송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이다. 바다를 통해 거래되는 석유의 3분의 1이 거기를 통과한다. 이 중 80퍼센트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로 가며 이 나라들은 중동 석유에 가장 많이 의존한다.

호르무즈해협 인근에는 세계적 금융 허브로 성장한 걸프 연안국들이 있다. 여기서 일어난 사건의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이 나라들은 단지 석유 수출에만 의존하는 가난한 나라들이 결코 아니다. 중동 강국들은 독자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이런 점이 중동 상황을 더욱 복잡하고 불안정하게 한다.

한편 중국도 중동에서 영향력 확장을 도모해 왔다. 중국은 미국처럼 지금 당장 세계 곳곳에 군사력을 투사할 형편은 아니지만 중동에서 여러 나라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걸프 연안국들이 국제 무역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중국은 이란과 이웃한 파키스탄 과다르항에 군함을 배치하고 기지를 건설하려고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 함대가 중동의 요충지를 감시하는 것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곳의 불안정을 부추기고 미·중 갈등을 더 첨예하게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파병 논의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은 한반도 평화에 해로웠다 — 문재인의 호르무즈해협 파병도 마찬가지일 거다”를 읽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