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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씨 인터뷰에 부쳐: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함께〉 57호에 실린 인터뷰(‘반신자유주의야말로 정치적 분열선’)에서 장석준 씨는 반신자유주의가 현실 운동의 중요한 정치적 분열선임을 강조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동시에 스탈린주의와 ‘사회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좌파의 결집을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설정한 그의 주장은 급진 좌파가 충분히 동조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여러 쟁점에서 장석준 씨는 모순적이거나 모호한 주장을 폈다.

가령 그는 당 의원들의 중소기업 살리기 전술에 대해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중소자본과 신자유주의의 핵심 부분을 갈라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들 또한 신자유주의의 핵심 정책인 비정규직화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의 상당 부분이 중소기업 소속이다.

물론 노동자들은 주되게 신자유주의의 핵심 부분인 대자본에 맞서 단결해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중소기업들이 대자본의 ‘횡포’를 받고 있는 것도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중소기업 사장들은 노동자들을 더 강도 높게 착취하는 것을 통해 살아남으려 한다.

따라서 근본적 대립은 대자본가와 중소자본가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 전체와 노동자 계급 전체 사이에 놓여 있다. 이 때 중소기업 살리기 전술은 노동자 계급의 이해관계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비시킬 공산이 크다.

한편, 민주노동당 내 쟁점에 대한 장석준 씨의 주장은 절충적이다. 장석준 씨는 애초 당직‍·‍공직 겸직 금지 조항을 발의한 데에 앞장선 사람 중 하나였다. 당이 사회운동의 당이 돼야 한다는 훌륭한 취지였다.

그런데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당 지도부에 의원단 참여를 조금 늘리자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를 “당직과 공직 분리 틀을 기본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의원단 참여를 늘리는 것은 공직자와 비공직자 사이의 지도부 구성 비율을 정하는 문제로 전환돼, 사실상 겸직 금지 원칙을 훼손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한편, 장석준 씨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이 “시장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하고 말한다. 인터뷰 내용만 봐서는 시장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장석준 씨의 입장인지, 아니면 현실운동 내에 존재하는 입장을 소개한 것인지 모호하다.

그가 운동 내 쟁점에 대해 대체로 모호하고 절충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대립을 중요한 분열선으로 설정하면서 “개혁주의 대 혁명주의의 대립”을 기각하는 것과 관련돼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오늘날 급진 좌파에게는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대립’뿐 아니라 “개혁주의 대 혁명주의의 대립”도 중요하다. 이는 세 가지 점 때문에 그렇다.

첫째,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 내에 매우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운동 내의 다양한 이데올로기는 체제를 점진적으로 ‘인간화’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여전히 함축하고 있다.

둘째, 만약 체제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면, 점진적 방식이 필요한가 아니면 혁명적 방식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셋째,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는 현실의 개혁을 위한 투쟁에서도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전자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개량주의는 현실의 자본주의 기구에 압력을 가해 위로부터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후자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혁명가들은 자본주의 기구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 건설을 강조한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개혁의 물질적 토대가 매우 협소해졌다. 따라서 사소한 개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을 일관되게 건설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블레어, 슈뢰더 등의 사회자유주의는 ‘개량 없는 개량주의’의 표현이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던 룰라가 집권 후에 IMF의 요구를 수용해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는 상황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 내에서도 분열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급진 좌파는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의 결집을 추구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운동이 전진하기 위한 정치적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장석준 씨는 21세기에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주의가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듯함에도 한국이 “미일 동맹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하나의 독자적인 국가”가 됐다는 이유로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한 지지를 꺼린다.

그러나 저항적 민족주의가 반드시 식민지나 제3세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국이 아류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국익론 같은 친제국주의적 민족주의가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민중의 반미‍·‍반일 민족주의는 대체로 20세기 동안 한국 민중이 경험한 제국주의적 억압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석준 씨는 “미일 동맹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서 비롯한 반제국주의인지” 분명히 가려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명료한지 여부로 판단하자면, 급진 좌파가 지지할 수 있는 반제국주의 운동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급진 좌파는 주되게 민족주의로 표현되는 반제국주의 정서를 지지하면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더 나은 대안(국제주의와 계급 투쟁)과 만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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