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용(기아차지부 소속 금속노조 중앙위원)
박노자 씨는 〈레디앙〉에 기고한 ‘서구 민중에 대한 낭만적 꿈 버려라’라는 글에서 ‘다함께’ 회원들을 “대체로 도심 중산계층의 가정에서 곱게 커 배고픔 한 번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혁명’을 이야기할 때에 과연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머리가 아닌 피부로 아는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썼다. 나는 이것을 읽고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박노자 씨의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박노자 씨가 정말로 “‘혁명’까지 외치는 다함께 분들의 열정을 존경”한다면 최소한 사실관계는 알아 보고 이런 주장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함께의 고참 활동가 대부분은 20여 년 가까이 사회변혁 운동에 헌신해 온 사람들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탄압(국가보안법)으로 투옥됐던 사람들도 있다.
신념
또 다함께 회원 중 절반 이상이 노동자고 그 중 상당수가 노동조합원이다. 나처럼 20년 가까이 대공장 노동자로 노동조합 운동과 사회변혁 운동의 결합을 주장하며 싸우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경험이 있는 노동자 회원들도 있고,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는 회원도 다수 있다.
물론 젊은 청년과 학생 회원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박노자 씨의 주장처럼 ‘배고픔을 모르고 살아온 중산층의 자녀’라고 단정 지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중산층의 자녀들은 머릿속으로만 혁명을 느낀다’는 주장을 맑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 같은 ‘중산층’ 또는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혁명가들이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혁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급진적 개혁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박노자 씨의 주장에 나는 이견이 있지만 그렇다고 박노자 씨를 ‘중간 계급 교수이자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박노자 씨의 강연도 들어 본 적이 있고, 저서도 한두 권 읽어 본 바 있다. 해박한 지식과 민중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명쾌한 비판을 듣고 읽으며 내심 존경해 왔다.
박노자 씨가 주장하는 급진적 개혁의 요구들도 지지하며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 그러나 박노자 씨가 다함께 회원들을 함께 운동하는 동지라 생각한다면 근거도 없이 비방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