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삭감에 이어 밥값 인상 시도:
서울대·생협 당국은 노동자·학생에게 적자 책임 전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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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 사측이 지난 달부터 식당 운영시간을 단축했다. 이는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으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임금 인상을 쟁취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사측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식당 운영시간 축소 뿐 아니라, 생협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선택적 보상휴가’1를 강제로 사용하게 하고, 시차근무2를 강요하는 등 노동시간 유연화로 시간외근로수당을 대폭 삭감했다.
특히, 동원관식당과 학생회관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월급이 파업 전보다 오히려 삭감됐다! (생협 사측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생협 사측은 주 52시간제 도입을 이유로 들며 임금 삭감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노동시간 유연화 확대로 인해 노동조건과 강도는 오히려 악화됐다.
이러한 시차근무제, 보상휴가제 같은 유연 근무는 문재인 정부가 주 52시간제 도입에 대한 산업계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장려한 ‘보완책’이다. 서울대 생협의 반격은 정부·여당의 이런 노동개악 시도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한편, 생협 식당 축소와 임금 삭감에 대한 노동자와 학생의 불만도 높다.
12월 4일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과 서울대 총학생회, 대학노조 서울대지부는 기자회견을 열어 ‘생협 식당 운영시간 축소 반대 서명운동’의 결과를 발표했다. 서명운동에는 서울대 학부생·대학원생 1687명, 서울대 노동자 122명, 서울대 교수·강사 34명 등 총 2005명의 개인과 24개 단체가 참여했다.
서명에 참여한 학생들은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임금이 그다지도 아깝습니까? 저는 따뜻한 밥 먹으며 학교 다니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파업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결정을 하십니까?” 하고 학교 당국을 비판했다.
답정너
학생 다수의 여론이 이런데도, 생협 사측과 서울대 당국은 운영시간 단축안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12월 1일, 생협 사측은 노동자 60명을 인사발령 했다. 동원관식당 저녁 급식 중단과 학생회관식당 단축 운영을 전제로 한 인사발령이었다. 사실상 축소 운영을 ‘굳히기’한 것이다.
생협 사측은 노조가 위법 소지를 제기한 시차근무제와 보상휴가제도 폐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황당하게도 생협 사측은 동원관식당의 식자재 창고를 노동자 휴게실로 개조하다 보니 식자재 보관 공간이 없어서 저녁 급식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 공간은 휴게실로 쓰기에 매우 비좁아서 노동자들도 원하지 않았던 곳이다. 12월 4일 학생처장과의 면담에서는 생협 사측과 학교 당국이 노동자들이 제시한 다른 공간들은 검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학생처장은 다른 공간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동원관식당 저녁 급식 재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식당 운영 축소라는 결론은 정해 놓고 허울 좋은 명분만 끼워 맞추려던 ‘답정너’인 것이다.
비용 논리가 아니라 학생 복지
학생처장은 생협 식당의 판매 식수가 줄어 식당 사업이 적자라면서, 식당 운영시간 단축은 “자구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식수가 줄어드는 경영 상황에 노동자들이 협력해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식당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구내식당, 카페, 매점 등의 운영은 학교 구성원들의 복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비용’이 아닌 ‘복지’라는 관점에서 서울대 당국이 마땅히 제공해야 한다.
특히 서울대는 지리적 조건 상 학교 바깥에서 식사를 하기 어렵다. 식당은 1975년부터 항상 적자였지만 학교 당국이 재정을 일부 책임져 온 까닭이다.
더구나 서울대는 법인화된 이후에도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가장 많은 재정지원(2018년 기준 지원액 5403억)을 받는 대학이다. 국·공립대학 중 등록금이 가장 비싸고 발전기금도 가장 많이 쌓아 두고 있는 대학이기도 하다.
이런데도 ‘매출이 안 나온다’며 복지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순 엄살이다.
서울대 당국이 책임져야 한다
서울대 당국은 생협이 “별도 법인”이라는 점을 내세워서 생협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외면해 왔다. 또한 “별도 법인”이라는 이유로 재정 지원도 충분히 하지 않고, 생협 식당을 야금야금 축소해 왔다.
서울대 당국은 생협으로부터 해마다 4억 5000만 원가량의 임대료를 받고 있으며, 생협이 거둬들인 이익금 중 매년 수억 원을 발전기금을 통해 기부받고 있다(2016년 22억 4000만 원, 2017년 6억 4000만 원, 2018년 4억 9000만 원).
서울대 당국은 생협 식당 적자를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반대 논리로 내세우거나 학생들의 복지를 후퇴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해 왔다. 그 결과 생협 식당은 점점 줄어서 2015년에는 학생회관식당 저녁 마감 시간을 단축했으며, 2018년에는 감골식당을 민간 위탁으로 전환했다.
1989년 서울대학교 소비조합(생협의 전신)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임금 인상과 퇴직금 누진제 등을 쟁취했을 때도, 학교 당국은 바로 이듬해 식대를 14~25퍼센트 인상함으로써 그 부담을 학생들에게 전가했다.3
직영식당을 점차 위탁경영 방식으로 전환해 일자리도 줄었다. 급기야 “적자난을 해결”한다며 소비조합을 생활복지조합(1990년), 생활협동조합(2000년)으로 전환해 학교 책임을 외면해 왔다.
서울대 당국은 구성원들의 필요를 위해 책임지고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생협을 직영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처우와 학생들의 복지를 직접 책임져야 한다.
임금 삭감도 모자라 밥값도 인상하려는 서울대·생협 당국
생협 사무처는 식당 운영시간을 축소하는 것도 모자라 밥값(식대) 인상까지 추진하려고 한다. 사무처는 12월 20일로 이사회를 소집해 ‘식대 조정안’을 상정한다고 이사들에게 공지했다.
십중팔구 식대를 인상한다는 내용일 텐데, 아무런 설명이 없다.
현재로서는 학교 측 이사들이 표결로 밀어붙여 식대 인상안을 졸속으로 통과시킬 공산이 크다.
식대 인상은 학교 당국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복지의 부담을 직원·학생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학생처장(생협 부이사장)도 시인했듯이 식대 인상은 “특히 저소득층 학생들한테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오세정 총장은 ‘장학금은 형편상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 한다’면서 성적 장학금을 없애고 가계 곤란 장학금을 늘렸는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식비 부담을 올리는 건 괜찮다는 말인가?
또한 서울대는 2018년부터 학생들이 식당에서 1000원에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천원의 식사’를 진행해 왔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적자는 발전기금 재원에서 충당된다. 똑같은 방식으로 학생과 교직원 등 구성원들의 식대를 학교 측이 부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노조 서울대지부는 학교 측이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식대 인상의 명분으로 악용하려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 서울대 당국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며 노동자와 학생을 이간질하려는 것이다.
대학노조 서울대지부는 학생들에게 식대 인상을 전가하지 말고 학교가 지원하라고 요구한다.
생협과 학교 당국은 구성원들(학생·직원 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대 인상안 날치기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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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임금과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유급휴가로 부여하는 제도. 예컨대, 전날 1시간 연장근무를 했다면 다음날 근무시간에 1.5시간 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근무시간에 노동자들은 제대로 쉴 수 없다. 게다가 잠깐 쉰다 해도 전체적인 업무량은 그대로이므로, 결국 동료의 일을 돌아가면서 떠안아서 맡게 된다. 사실상 ‘선택적’ 보상휴가제는 일이 많을 때 특근을 시키고도 일이 없을 때 강제로 쉬게 해 수당은 주지 않아도 되는 탄력근로제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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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근로시간(예: 하루 8시간)은 그대로 두되, 출·퇴근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해서 시간외수당을 주지 않는 근무제도. 사측 마음대로 불규칙하게 출퇴근 시킬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활이 더 불안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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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대 14~25% 전면인상’, 『대학신문』 1990년 3월 5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