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의 연대임금 추진 중단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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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가 지난 2년간 추진했던 “하후상박 연대임금” 요구를 올해는 채택하지 않을 듯하다. “10년, 20년 지속 추진”하겠다던 연대임금 요구가 얼마 못 가고 좌초된 것이다.
집행부는 대신 전체가 동일하게 기본급 12만 원 인상을 요구하는 정액 임금 인상안을 내놓았다. 이는 최근 노조 중앙위원회를 통과해 2월 24일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다.
노동운동 내에 연대임금·연대기금론이 대두하고 있는 지금, 금속노조에서 연대임금 정책이 중단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대임금론은 상대적으로 나은 처지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양보해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끌어 올리자는 생각에 기초해 있다. 적잖은 노동자들은 저임금 노동자를 돕고 임금 격차를 축소하자는 좋은 취지에서 이 정책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연대임금 추진 경험은 대기업 정규직의 양보로 정부·자본(원청사)의 책임을 강제하고 중소·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조건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 비현실적이고,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음을 보여 줬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 자제의 역효과
금속노조가 2018~2019년에 채택한 연대임금안의 골자는 이랬다: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요구를 낮추는 대신 현대·기아차 사측에게 나머지 부품·하청사 노동자에 대한 임금 지원을 요구하자. 그러면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 격차를 줄이고 원청사의 책임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하후상박을 위한 연대는 노동운동의 훌륭한 전통이다. 그러나 그 정신은 대공장 정규직의 임금 양보가 아니라 상향 평준화를 위한 투쟁과 연대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런데 금속노조 지도부가 제시한 방향은 투쟁 강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금속노조의 연대임금 추진에 기둥 구실을 한 하부영 전 현대차지부장은 “현대차 노조 30년 투쟁은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며 노동자들의 투쟁 전통을 깎아내리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나 하 지부장의 주장과 달리, 역사적으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조건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리고 이런 동역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조건을 개선하면 중소·하청 노동자들의 조건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내며 동반 상승한다. 가령, 자동차 산업에서는 매년 현대차의 임금 인상률이 결정되고 난 다음에 그것을 가이드라인 삼아 나머지 부품사·하청업체의 임금 수준도 결정된다.
투쟁의 상호작용을 봐도 그렇다. 한 부문의 노동자들이 잘 싸워서 성과를 내면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싸울 자신감을 줄 수 있다. 반대로 현대차지부처럼 잘 조직된 노조가 투쟁을 회피하고 양보하면 다른 노동자들도 상당한 임금 자제 압박을 받기 쉽다.
그 점에서 〈노동자 연대〉가 이미 2018년에 지적했듯이,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요구를 자제하자는 연대임금론(양보론)은 나머지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오히려 역효과를 낼 공산이 크다.”
하청 노동자에게 도움 안 된 연대임금
그렇다면 실제 2년의 경험은 어떠했는가? 금속노조 집행부는 야심차게 추진했던 연대임금 요구를 중단하면서도, 그 배경과 평가를 내놓지는 않았다.
연대임금 정책 추진에 앞장섰던 하부영 전 현대차지부장의 임기 종료가 이 정책의 계속 추진에 어려움을 줬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충분한 설명은 못 된다. 금속노조 집행부가 연임한 상황에서 연대임금 요구를 중단한 것을 보면, 연대임금 정책이 목표로 제시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추진력을 잃은 듯하다.
실제로 금속노조 몇몇 간부들은 “성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조합원들의 불만이 꽤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 2년의 경험은 연대임금 정책이 현대·기아차 등 사용자들의 부담을 줄여 주는 반면, 노동자들 전반의 임금 인상은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는 점을 보여 줬다.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불만이 적잖았다.
첫째, 현대차지부가 임금을 양보하는 대신 얻었다던 현대차 사측의 부품·하청사 지원은 꾀죄죄했다. 특히 그 돈이 부품·하청사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나마 성과로 꼽혔던 2018년 현대차 노사의 특별합의는 사측이 하청업체 지원을 위한 ‘상생협력기금’ 500억 원을 내고 저금리 대출 1000억 원을 출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직접 지원금 500억 원조차 2~3차 하청업체 1290곳에 평균 4000만 원씩 지급했을 뿐이어서, 하청업체들도 대놓고 “생색내기식 쇼”라고 불평을 했다.
게다가 하청업체 사용자들이 이 돈을 받아서 자기 노동자들에게 지급했을 리도 거의 없다.
금속노조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현대차가 돈을 내기는 했는데, 솔직히 그게 누구에게 흘러 갔는지 모른다. 상생기금을 연대임금 요구의 성과로 내세운 것은 좀 민망하다.”
하향평준화 압박 커져 불만을 사다
둘째, 현대·기아차지부의 임금 양보로 부품·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이 약간 올랐다는 일각의 평가도 억지스럽다.
지난해 5월 민주노총은 임금 투쟁 모범 사례의 하나로 현대·기아차지부의 연대임금 요구를 꼽았다. 이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당시 현대·기아차지부장은 2018년 금속노조의 임금 협상 결과, 현대·기아차보다 나머지 115개사의 임금 인상액이 1만 1000원가량 높았다며 “작지만 격차를 해소했다”고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미미한 수준일지라도 대공장 노동자의 임금 양보 효과로 중소영세 사업장의 임금이 올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품사 노조들은 일명 “양재동 가이드라인”(현대차 임금 가이드라인)에 가로막혀 임금 투쟁이 더 어려워졌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금속노조 몇몇 간부들은 “양재동 가이드라인에 걸려 싸우기 어렵다고 부품사 지회들이 말이 많았다”, “(부품사 노동자를 위한다던 연대임금에 정작) 부품사 노조들의 기대가 없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사업장 전반의 임금 인상 수준이 떨어졌고, 현대기아차의 경우 임금 총액이 거의 동결 수준이었다는 점이 사태의 정확한 그림일 것이다. 연대임금 요구는 그것이 기대하는 효과와는 정반대로, 전반적인 임금 수준을 끌어내리는 하향평준화 압박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금속노조의 “하후상박 연대임금” 요구가 결국 “하박상박”이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셋째, 지난 2년의 경험은 연대임금 추구가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을 고취하기보다 오히려 해칠 위험이 크다는 점도 보여 줬다.
현대·기아차지부 지도부는 연대임금 요구를 명분으로 임금 투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부영 전 현대차지부장은 자기 조합원들의 임금 투쟁을 자제시키면서 “귀족노조 프레임,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려면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고 훈계했다.
그러나 노동운동 내에서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투쟁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주장이 커질수록 노동자들은 싸울 자신감을 잃고 위축될 수 있다. 연대 투쟁의 힘을 발휘해야 할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낼 뿐인 것이다.
진정 필요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양보가 아니라 연대 투쟁을 건설하려는 노력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 사이에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연대해서 싸울 때 모두의 조건을 개선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