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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타항공 파산 위기에 노동자 책임 없다:
정부가 일자리 보장하라

7월 23일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2019년 12월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이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한 뒤로 8개월 만에 무산된 것이다.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이스타항공은 법정관리를 신청할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에선 기업 청산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노동자 16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위험이 큰 상황인 것이다.

7월 4일 공항항공노동자 정리해고, 구조조정 분쇄!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 ⓒ이미진

노동자들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고용불안과 조건 악화에 시달려 왔다. 특히 지난 3월 코로나19로 여객 수요가 급감하자 이스타항공은 국제선뿐 아니라 국내선 항공기 운항마저 중단했고, 그 직후 이스타항공 사측은 전체 노동자 1680명 중 절반 가량인 750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했다.

수습부기장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약 해지되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희망퇴직’을 당하며 3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남은 노동자들도 임금 삭감과 체불로 고통 받아 왔다. 무려 6개월 가량 임금이 체불돼 생계 위기가 심각하다.

이스타항공의 실소유주인 민주당 의원 이상직은 자기 일가족이 가진 회사 지분을 다 내놓겠다고 했다. 이스타항공 측은 “통 큰 결단과 헌신”이라고 추켜 세웠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말처럼, 이는 위선적인 책임 회피일 뿐이다. 이스타항공 측은 ‘매각이 성사돼도 이상직 의원 일가가 가져갈 차익이 거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매각 무산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이상직 일가가 포기한 지분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고용과 체불임금에 대해서는 그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발 빼기에만 급급하다. 사측은 매각 실패의 탓을 노동자들에게 돌리며 무급 휴직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책임

문재인 정부는 이스타항공을 매각하려고 제주항공에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었다. 인수 성사 시 제주항공에 17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국내외 기업결합심사가 신속히 이뤄지도록 힘썼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임금 체불 해결을 위해 정부의 지원을 요구한 것을 외면했다.

매각이 실패로 돌아가자, 정부는 이제 이스타항공이 내놓는 구조조정과 회생 계획(자구안)을 보고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체불된 임금 지원도 불가하다고 사실상 선을 그은 것이다. 정부는 뒷짐지고 시장의 선택에 노동자와 그 가족 수천 명의 생존을 내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스타항공 파산 위기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정부는 저비용항공사 설립을 부추기며 위기의 씨앗을 키워 온 장본인이다. 2000년대 이후 항공 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정부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며 저비용항공사를 육성하는 정책을 펴 왔다. “경쟁 촉진”을 이유로 신규 항공사 면허를 내주고 지원해 왔다.

그러다가 저비용항공사 수익이 악화되자, 이제는 ‘시장 중심 구조조정’을 추구하면서 애먼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해 왔다. 이스타항공 매각도 이런 과정의 일부였다.

더구나 이스타항공의 실소유주인 이상직은 대표적인 친문 인사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이 해고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 역겹게도 ‘일자리 전도사’를 자처하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스타항공 위기에 책임을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반면, 실소유주인 이상직의 책임과 비판에는 침묵하거나 두둔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제주항공 인수를 추진해 온 당사자이기도 하다. 지금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은 계약 파기의 책임을 놓고 서로 갈등하고 있지만, 인수합병 추진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데서는 한통속이었다. 제주항공은 인수 조건으로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압박했다. 정부는 이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적극 지원해 왔다.

일자리 보호를 위한 국유화

지금으로선 제 3자 인수 가능성이 희박하기도 하지만, 설사 제주항공의 인수 포기를 되돌리거나 새로운 인수자를 찾는다 해도 그것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 경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인수합병은 노동자 희생을 통한 비용절감, ‘시장 경쟁력’ 회복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으로의 매각 과정에서 구조조정, 임금 체불 등 노동자 고통이 증대해 온 점이 이를 보여 준다.

그 점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제주항공 측에 인수를 촉구하고 나섰던 것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아니다. 일자리 보호를 위해 정부가 이스타항공을 국유화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정부는 심각한 경제 위기, 기업의 파산 위기에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할 책임이 있고, 그럴 만한 자금력이 있다.

정부는 최근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기업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런 돈의 일부만 지원해도 이스타항공을 국유화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 현재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재원은 기업들의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데 쓰여야 한다.

이스타항공의 위기에 노동자들은 책임이 없다.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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